앤드류 포터 단편소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The Theory of Light & Matter)』
미국 소설가 앤드루 포터(Andrew Porter : 1972~ )의 단편소설로 2008년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작가의 처녀작으로 그해 단편소설 부문 플래너리 오코너상을 수상했으며, 스티븐 터너상, 패터슨상, 프랭크 오코너상, 윌리엄 사로얀상 최종후보작으로 뽑혔다. 당시에는 조지아 대학 출판부라는 작은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는데, 수상 후 2010년 랜덤하우스의 빈티지 출판사가 페이퍼백으로 재출간했다. 이후 프랑스와 네덜란드 등 십여 개 국가에서 번역되어 나오면서 작가는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게 되었다. 작가는 현재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에 살면서 트리니티 대학에서 문예창작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The strange theory of light and matter)은 '양자전기역학'에서 리처드 파인만은 낮에 램프를 켜놓고 빛이 유리창 표면에서 부분적으로 반사된다고 말한다. 실험에 따르면 100개의 빛입자 중 평균 네 개는 반사되어 돌아오고 96개는 유리를 통과한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빛입자가 자신의 경로를 선택하는 과정을 알지 못하며, 특정 입자의 경로를 예측할 수 없다.
이 단편소설은 사람의 마음이, 기억이, 기억이 현재에 미치는 영향이 그러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마음은 그 주인이 마음먹은 대로도, 마음먹고 싶은 대로도 움직여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하는 작품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브라운 대학에서 물리학을 강의하는 노교수(老敎授)인 로버트와 수업을 받는 여학생 제자인 헤더는 그저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사이라 느낀다. 로버트는 헤더의 아버지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남자다. 그래서 헤더는 교수의 숙소에 무상출입하는 특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로버트와는 육체적인 관계 외에는 모든 것을 다하는 연인관계를 형성한다.
헤더에게는 콜린이라는 결혼을 약속한 의대생 남자친구가 있었다. 표면적으로 삼각 관계였으나 헤더는 로버트 교수와 육체 관계를 갖지 않았기에 큰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로버트 역시 헤더를 육체적 관계의 대상으로 상대하지 않고 그냥 편한 감정을 공유하는 사이로 지내길 원하는 듯했다. 어느 날 오래된 주점에서 와인에 취한 헤더는 로버트의 손을 잡았고 무심히 고개를 돌려본 곳에 콜린이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헤더는 콜린과의 모든 것이 끝날까봐 겁이 났고 로버트와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다.
이후 헤더는 남들과 다르지 않은 결혼 생활을 하는 중이었고 그러던 어느 날 모임에서 로버트가 림프종으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날 헤더는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대성통곡을 했고 아마 남편이 숨어서 그 장면을 지켜봤을 지도 모른다.
세월이 흘러 문득 로버트를 생각하며 헤더는 다른 한쪽에 저장된 회상을 하게 된다. 로버트와 함께하는 상상, 하지만 그 생각은 결국 로버트를 떠나야한다는 것도 안다.
사실 나는 로버트가 우리 관계에 대해 나처럼 죄의식을 느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의 우정을 다음 단계로 가져가는 것에 대한 그의 양면적인 감정은, 그로 인해 훗날 내가 자신에게 분개할지도 모른다는 깊은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어느 날 저녁, 우리가 그의 소파에 앉아 있을 때, 나는 그에게 내 부모님의 새집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그다지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었고, 나는 잠시 후 그가 내 얘기를 듣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마침내 이야기를 끝마치자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슬픈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당신이 언젠가 이것 때문에 나를 미워하게 될까봐 두려워요, 헤더.”
“무엇 때문에요?”
“이런 만남.” 그가 말했다. “당신이 언젠가 이런 만남을 되돌아보며 나를 미워하게 될까봐 두려워요.”
나는 그를 보았다.
“내가 두려운 게 뭔지 알아요, 로버트?”
나는 그의 손을 만지며 말했다.
“나는 내가 당신을 미워하지 않게 될까봐 두려워요.”--- p.107~108
이 작품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마음속에 남아있는 죄책감일지도 모르는 그 감정들은 헤더의 생각을 현실과 다른 방향으로 몰아넣는다. 사라지지 않는 기억들, 그리고 상처와 실망도 영원히 영향을 미친다. 자신은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들이 또 다른 허구를 만들어낸다.
혹시 내가 구할 수 있었던 사람을 외면하지 않았을까, 부당함을 보고도 눈을 감았던 것은 아닐까, 진짜 사랑인 줄 알면서도 손을 내밀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작가는 섬세하고 투명한 문장을 통해, 현대 도시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일상을 담담히 묘사한다.
♣
이 작품이 수록된 소설집 속의 이야기들은 누구에게든 하나쯤 있기 마련인 '지워지지 않는 어떤 순간'을 회상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다음에도 그 기억에 아파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들을 편안한 언어로 그린다. 작가는 과거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에 관한 상처나 아픔으로 남은 기억이라고 해도 그 역시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소중한 과거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아무리 평범하고 무탈한 삶을 살아온 이라고 해도, 고개를 돌리고 싶었던 순간들이 있기 마련이다. 평범한 삶 속에 감춰진 상처들을 차분하게 감싸는 앤드류 포터의 단편들을 읽다 보면 언제 생겼는지도 알 수 없던 그 해묵은 상처들을 하나씩 이해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너그러운 체험을 하게 된다.
작품집에 수록된 다른 단편에 등장하는 젊은이들도 과거의 어떤 순간을 회상하며 공포를 느끼거나, 그리워하거나, 이유를 알 수 없는 죄책감에 괴로워 한다. 불같은 사랑이나 끔찍한 범죄, 드라마틱한 사건 같은 것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평범한 삶을 살고, 별 대단치 않은 사건을 겪을 뿐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 사건들이 그들의 삶에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남게 되는 것일까. 우리는 그 답을 알고 있다. 우리도 비슷한 순간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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