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외국 현대소설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 장편소설 『인도로 가는 길(A passage to India)』

by 언덕에서 2011. 3. 30.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 장편소설 『인도로 가는 길(A passage to India)』 

 

영국 작가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Edward Morgan Forster.1879∼1970)의 소설로 1924년 간행되었다.  포스터의 마지막 장편소설이자 대표작인 『인도로 가는 길』은 1984년 데이비드 린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타임>지 선정 '현대 100대 영어소설', 모던 라이브러리 선정 20세기 영문 소설 100선에 선정되는 등 영국 소설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 작품의 공간적 배경인 인도는 3세기 반 동안 영국의 식민지였다. 다양한 인종과 언어, 카스트 제도로 인해 사회ㆍ경제ㆍ정치면에서 후진을 면치 못하고 있으나, 불교의 탄생지로 인류 4대 문명의 근원지 중의 하나다. 또한 현대 서구문명의 폐해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저력을 갖고 있는 나라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이 소설은 민족과 정치적 이념의 차이를 초월한 우정은 가능한지, 남녀ㆍ부모와 자식간의 진실한 관계는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할 계기를 마련해 주는 대작이다.

영화 [인도로 가는 길], 1984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영국의 통치 아래 있는 인도의 한 가상(假想) 도시 챈드라 폴에서 엉뚱한 사건이 발생했다. 인도인 의사 아지스가 이 마을에 사는 영국인 판사의 약혼자 아데라를 동굴로 불러내어 능욕하려 했다는 것이다.

 의사는 체포되어 곧 재판에 회부되었는데, 이 일로 사람들의 가슴 속에 응어리져 있던 민족 감정이 일시에 폭발, 이 사건은 지배 민족과 피지배 민족간의 집단적 대립 양상을 띠게 된다.

 그 사이 아지스의 무죄를 믿고 동분서주하는 대학장 필딩의 초조감, 판사의 모친이면서 아지스를 가장 잘 이해하는 무아 부인의 서먹서먹함, 힌두교적 세계관으로 사건을 관망하기만 하는 고드볼 교수의 태도, 이외에도 이 마을에 사는 많은 영국인들과 인도인들의 생각과 행동이 선명하게 부각된다.

 이 사건은 모든 것이 자신의 환각이었다는 아지스의 말과 판사의 고소 취하로 끝을 맺는다.

영화 [인도로 가는 길], 1984

 

『인도로 가는 길』은 출간 즉시 영국은 물론 미국에서까지 선풍적인 반향을 일으키며 포스터의 대표작이 된 소설이다. 포스터가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었다. 실제로 두 차례에 걸쳐 인도를 방문하기도 하였으며 양국의 관계와 식민통치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 왔던 포스터는 영국령의 인도의 한 도시라는 응축된 사회적 상황을 배경으로 영국인들과 인도인들 사이에서 빚어지는 첨예한 대립과 이를 초월하여 화합으로 나아가려 하는 개인들의 모습을 치밀하게 그려 내고 있다.

 이 작품은 20세기에 씌여진 소설로 저자가 두 번에 걸쳐 여행한 인도에서의 산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구성에만 12년이 걸린 이 작품은 문화적, 정신적 가치관에 의해 대립과 투쟁이 일어난다면 이해와 관용만이 평화적 화합을 이룰 수 있음을 전달하고자 각기 다른 문화인물을 등장시켜 주제는 풀어 나가고 있다. 아지즈와 피리링이라는 두 인물의 결합을 시도하며 이들의 결합을 통해 인도와 영국, 한걸음 더 나아가서는 동양이 서양의 서로 상반되는 문화, 관습, 정신적 괴리를 이해와 관용으로 화합할 수 있다는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작품의 주제는 민족간 융합의 어려움보다도 작자가 일관하여 추구한 인간 상호간의 이해의 본질에 있으며, 동양의 신비적인 사상에 대한 관심도 깊게 표현하였다.

 이 작품에서 하나의 사건은 판사의 고소 취하로 끝을 맺지만, 오히려 이러한 싱거운 결말이 오히려 독자들에게 사건의 진상을 깊이 고찰하도록 만든다. 인도인과 영국인 사이에서 벌어진 한 사건을 통해 동ㆍ서 문명의 대립상과 인간 상호간의 이해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주인공 아지스는 정열적이지만, 경박하고, 필딩은 진지한 휴머니스트이지만 속물(俗物)이고, 무아 부인은 경건하고 인정 많은 크리스천이지만 바보스러울 정도로 감상적이다. 따라서 독자들은 희극도 아닌 작품의 이러한 인물들에게 별 애착을 갖지 못하게 된다.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사건의 발단이 된 수수께끼의 동굴 ‘마라발’이다. 그 안에 들어가 성냥을 켜면 돌 거울이 그 불꽃을 비추지만, 두 불꽃은 결코 융합될 수 없다.  또, 누군가가 동굴 속에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려 해도 동굴의 울림 때문에 결국에는 ‘오우 보움’이라는 무의미한 중얼거림으로 끝나버리고 만다. 그 안으로 들어간 인간의 마음 상태에 따라 동굴은 비밀을 알고 있는 예언자처럼 일종의 계시를 내리고, 그에 대한 해석은 인간 각자가 내려야 한다.

 이 작품이 걸작으로 일컬어지면서도 끊임없이 다양한 작품 해석을 낳고 있는 것은 동굴 속에서 일어난 사건의 진상이 모호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