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진 장편소설 『차가운 밤(寒夜)』
중국 소설가 바진(巴金. 1904∼2005)의 장편소설로 1945년 발표되었다. 바진은 루쉰, 라오서와 함께 중국 3대 문호로 꼽히는데 본명은 이비감(李芾甘.리페이간)으로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 출생이다. 성도 외국어학교를 졸업한 그는 신문물을 배우기 위해 파리에 유학하였다. 허무적인 경향이 강하여 바쿠닌과 크로포토킨에게 경도되고, 필명 파금(巴金)은 두 사람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소설월보]에 처녀작 <멸망>(1929)을 발표하여 일약 유명해졌다. 귀국 후 1931년 최초의 단편집 <복구(復仇)>를 내고, 1934년 북경에서 심종문(沈從文) 등과 [수성(水星)]을 주재하였다. 이어서 상하이의 문화생활사에서 [문학총간(文學叢刊)]을 간행하고 1936년 [문학월간]을 창설하였다. 그 동안에 <멸망>의 속편 <신생(新生> <서리(霧)> <죽은 태양> <사정(沙丁)> <전의(電椅)> <장군(將軍)> 등을 계속해서 썼다. 허무적인 색채는 차츰 없어지고, 평이하고 유려(流麗)한 표준적인 백화(白話)로 대중을 매혹시켜 많은 독자를 가졌다. 항일전쟁 중에는 구망공작(救亡工作)을 그린 <불(火)> 3부작을 비롯하여 <게원(憩園)> <제4병실> 『차가운 밤(寒夜)』 등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봉건 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바진은 일찍이 허례허식으로 똘똘 뭉친 상류층과 억압과 착취 속에 신음하는 노동계급의 극명한 대비를 몸소 체험했으며, 이때의 경험은 바진 평생의 신념을 정립하는 데 토대가 되었다. 『차가운 밤』은 바진의 마지막 장편소설이다. 태평양 전쟁의 여파로 아시아 전역이 포화 속에 잠긴 1940년대의 중국이 배경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대외적으로는 전쟁, 대내적으로는 구습과 신문화의 대립으로 격동하던 당시 중국사회의 모습을 날카롭게 그려낸 작품이다. 우리는 격동하는 중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바진 최후의 역작을 통해 하루하루가 극심한 고통의 나날을 보낸 당시 중국인들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나는 소설을 입신을 위한 방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소설을 내 생활의 한 부분으로 여길 뿐이다. 나의 창작 여정은 삶과 일치한다. 내 작품은 직접 독자에게 호소하는 것으로, 널리 읽혀서 광명에 대한 사랑과 암흑에 대한 증오를 일으키기를 바란다. 그리고 사명을 다한 후 시간이 흐르면 잊히길 바란다. - 바진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왕원쉬안은 전시에 필요한 것은 자신과 같은 지식인이 아니라 상인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나약한 가장이다. 그에게는 그와 마찬가지로 대학교육을 받은 아내와 가부장제의 전통을 뼛속까지 간직한 어머니, 그리고 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있다. 한때는 중국의 밝은 미래를 꿈꾸며 교육사업을 설계하던 그였지만, 전쟁은 그에게서 꿈과 희망을 앗아가 버렸다.
전쟁이 치열해질수록 집안의 생계를 짊어진 왕원쉬안의 어깨는 점점 무거워진다. 반면, 신여성인 아내와 가정에만 충실한 어머니의 갈등은 점점 깊어만 간다. 왕원쉬안은 두 사람 사이에서 전전긍긍하며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우유부단한 자세로 일관한다. 매일같이 울리는 경계경보와 계속되는 가정의 다툼 속에서 그의 몸과 마음은 나날이 여위어 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아내는 다니던 은행의 인사발령을 이유로 다른 지역으로 가버린다. 마지막까지 가족을 위해 안간힘을 쓰던 왕원쉬안은 아내와의 이별로 결국 쓰러지고 만다. 1945년,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종전이 선언되던 바로 그때, 왕원쉬안은 자신의 미약한 숨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는다.
바진은 20세기 초 중국 사회에 내재된 후진성과 사회적 불평등의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막스주의와 아나키즘을 꼽았다. 1919년 5·4운동을 계기로 혁명운동에 눈떴으며, 2년간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중국에 돌아와 신문화운동을 주도했다. 1936년 루쉰이 이끄는 혁신적인 문청집단에서 활동한 그의 작품은 뛰어난 문학성을 잃지 않으면서 착취계급을 명징하게 고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애국심도 남달랐던 바진은 숱한 전쟁을 치르는 동안 아나키즘을 포기하지만, 문화혁명기에는 ‘아나키즘에 경도된 작가’로 몰려 심한 고초를 겪었다. 자신의 신념을 거짓으로 가려야 했으며 살기 위해 거짓을 말해야 했다.
문화혁명이 끝난 뒤에 대부분의 학자나 작가는 악몽 같던 과거를 덮어두려 했지만, 바진은 “나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던 지식인”이라고 소리 내어 고백했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양심을 복원하기 위해 부단히 반성하고 부단히 노력하며 한 줄 한 줄 써내려갔다. 문화혁명이라는 괴물은 그에게 불치의 병을 남겼지만, 그의 고결한 정신까지는 앗아가지 못했다.
♣
이 소설의 의미를 굳이 이야기하자고 하면 격동하는 중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바진 최후의 역작이라는 점이다. 『차가운 밤』은 태평양 전쟁의 여파로 아시아 전역이 포화 속에 잠긴 1940년대의 중국. 대외적으로는 전쟁, 대내적으로는 구습과 신문화의 대립으로 격동하던 당시 중국사회의 모습을 날카롭게 그려내었다.
바진에 회고에 따르면, 당시 그는 국민당 정부가 피난 와 있었던 충칭(重慶)에 머물면서 이 작품을 구상했다. 항일전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당시 많은 문인들은 충칭에 결집하여 항일 대열에 참가하고 있었으나, 문인 및 일반 민중에게는 하루하루가 극심한 고통의 나날이었다. 치솟는 물가, 팽배해진 염전(厭戰)사상, 국민당의 실책과 가혹한 통치 등은 항일전 초기 열정적으로 구국 대열에 투신했던 많은 작가와 지식인들 사이에 패배감과 무력감, 그리고 허무주의적 사조를 뿌리내리게 했다. 『차가운 밤』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풍조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는 기념비적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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