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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최인호 중편소설 『깊고 푸른 밤』

by 언덕에서 2011. 2. 19.

 

최인호 중편소설 『깊고 푸른 밤』 

 

 

 

최인호(崔仁浩.1945~2013)의 중편소설로 1982년 [문예중앙]에 발표되었다. 사회 현실에서 소외된 인간의 자의식을 다룬 작품이다. <깊고 푸른 밤>은 등장인물의 패배감과 절망감을 통하여 현대 사회의 절망, 패배와 싸우고 있는 개인의 처절한 의식을 다룬 작품이다. 소설가 최인호의 서울고, 연세대 2년 후배인 가수 이장희를 모델로 쓴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소설 공간을 미국으로 확대하여 현대 인간의 좌절과 그 개체에의 회복을 세계의 문맥 속에서 파악하였다. 작중 인물 두 사람이 조국에서 전개되는 사회 상황에 대해 불만을 품고 미국으로 건너가 망명생활을 하는 아픔과 슬픔을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로 뻗어있는 해안도로를 달리며 느낀 비극적인 여행경험을 통해 탁월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한 가수의 얼굴과 목청을 통해 보여준 뛰어난 묘사력, 풍부한 감성 그리고 예리한 비평 정신은 현대 휴머니즘의 서사시적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다. 1982년 제6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1984년 배창호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었다.

영화 <깊고 푸른 밤>, 1982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한때 유명 가수였으나 대마초 사건으로 가수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에 온 준호와 한참 이름을 날리던 작가인 그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여행한다. 그는 여행을 떠나온 길이었고, 준호 역시 여행 중이었으나 미국에 눌러살려는 생각이다.술과 마리화나 냄새가 지독한 어느 방 안에서 '그'는 눈을 뜬다. 어지러운 머리를 정리하며, '그'는 잠에 떨어진 준호를 깨워 차에 오른다. 한때 유명한 가수였던 준호와 한참 이름을 날리던 작가인 '그'는 우연한 만남 속에서 같이 여행하게 된다.

 대마초를 피웠다는 이유로 이곳 미국 땅으로 흘러 들어온 준호와 자신도 알 수 없는 '모든 것에 대한 분노' 때문에 망명의 길을 떠난 '그'는, 처음부터 준호에게 동료 의식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모든 그것에 관한 관심을 잃어버린, 그저 수치적인 감각만을 느낄 뿐이었다.

 정신없이 차를 몰아대면서 깊은 침묵에 잠겨 있던 준호는 아내가 보내 준 테이프를 튼다. 자동차가 쇠 난간에 충돌하여 멈추자 준호는 돌아가고 싶다며 흐느꼈다.

 모든 것에서 동떨어진 '그'는 마리화나의 짙은 냄새 속에서 준호의 걱정을 뒤로한 채 해변으로 내려온다. 무릎을 꿇고 돌 위에 주저앉은 '그'는 그제야 자신의 패배를 알게 되었고, 더불어 지금까지의 알 수 없던 '모든 것에 대한 분노'도 소멸하였다. 그러고 나서 '그'는 자신을 굴복시킨 모든 승리자에게 용서를 빌며, 돌아가야 한다고 다짐한다.

 

작품의 모델이 되었던 가수 이장희(1947~ )

 

 

 소설에서 작가가 말한 '모든 것에 대한 분노'는 무엇이며 자신을 굴복시킨 '승리자'는 누구일까그 분노는 1980년대 군사독재시대의 상황이며승리자는 육군 소장 전두환을 비롯한 정치군인들일 것이다.

 작가는 책 서두의 '작가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깊고 푸른 밤」은 내게 있어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1980년대 초, 나는 어느 날 도망치듯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에서 반 년 가까이 낭인생활을 하던 나는 그 곳에서 절망 속에 신음하며 망명객처럼 은둔하고 있었다. … 그렇게 낭인생활을 보내고 돌아온 후에도 나는 역시 거의 반 년 동안 글을 멀리하고 있었다. 한밤중에도 알 수 없는 불안에 빠져 형광등을 수술실처럼 환히 밝히고 잠자는 두려움 속에서 지내다가 어느 날 문득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느꼈다. 그 열정이 빚어낸 첫 작품이 바로 「깊고 푸른 밤」이다. 그런 의미에서 「깊고 푸른 밤」은 문학에 있어 제2기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그 첫걸음이다. 아마도 아스토리아 호텔에 틀어박혀서 이틀인가, 사흘 만에 완성시켰던 것으로 기억된다. 250매에 가까운 중편소설이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긴장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했던 기억이 있는데, 끝날 때까지 힘에 부치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1년이 넘는 낭인생활을 통해 에너지를 재충전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작품은 작중인물의 패배감과 절망감을 통하여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의 좌절과 소외감을 나타냈다. 단순히 1970년대라는 닫힌 사회적 상황 속에서 삶의 절망과 패배의식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현대사회의 병리적 상황에서 인간의 의식과 삶의 조건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소설이다.

 작가 자신의 의식이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 즉 그것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끝없는 갈등과 치열한 싸움을 전개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는 것으로서, 최인호 소설의 새로운 모습이다. 따라서, 『깊고 푸른 밤』은 우리가 살았던 그리고 살고 있는 현실의 단면을 서술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정면으로 규명하고자 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