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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인화 단편소설 『시인의 별』

by 언덕에서 2011. 2. 22.

 

이인화 단편소설 『시인의 별』

 

소설가·문학평론가 이인화(류철균, 1966~ )의 단편소설로 2000년 [문학사상]에서 발간되었다. 이인화는 필명으로, 이효석 연구의 권위자로 알려진 경북대학교 류기룡 교수의 아들 류철균이다. 서울대 및 동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한 그는 이미 고교 시절 [계단문학동인회]라는 동아리 활동으로 문학의 외곽을 다졌으며, 20세를 전후하여 문학청년으로서의 치열한 습작 시절을 보냈다.

 1988년 [문학과 사회]에 <유황불의 경험과 리얼리즘의 깊이(양귀자론)>라는 평론을 발표하여 등단했으며, 1992년 그는 이인화라는 필명으로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소설을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변신한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속하는 이 소설은 제목에서부터 작가의 이름, 그리고 문장 하나하나까지가 이미 쓰인 다른 작품들의 혼성모방으로 이루어져 표절 시비까지 불러일으킨 바 있다.

 장편소설로 <영원한 제국>, <인간의 길>, <초원의 향기>, 평론으로 <한국 문학의 근대성과 유토피아>, <한국 근대 문학 일반 이론 서설> 역서로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등이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시인 안현은 한미한 집안의 출신이기는 하나 착실한 성격에 뛰어난 글재주를 타고나 장래가 촉망되는 인재였다. 그러나 급변하는 사회 현실이 배경 없는 안현을 관직에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 홀어머니 봉양을 위해 차운시(次韻詩:명시를 흠모하여 그 운을 따라 짓는 시. 당시에 유력한 인사의 시를 차운하여 추켜줌으로써 벼슬을 구하는 수단으로 삼기도 했음)를 짓기도 했으나 고생을 모르고 순탄하게만 벼슬길에 오른 동료, 선배들은 이에 대해 선비의 자질에 인격과 학식이 먼저인데 안 현은 경박하고 비루하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또 다른 동기 이세화는 안 현과 같이 한미한 집안 출신이기는 하나 급변하는 세상살이에 잘 적응하여 그만의 방법으로 출세를 하였다.

 안현이 세상을 원망하며 절망 속에 빠져 있을 때였다. 박연폭포로 유명한 천마산 밑에서 추밀원 부사를 지낸 박씨 노인에게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자기의 딸이 원나라 공녀로 끌려갈 것을 두려워하여 시를 좋아하는 안 현을 데릴사위로 맞는다. 안 현은 생활이 안정되면서 출세한 친구들을 부러워하기보다는 시 공부를 열심히 하여 세상이 나를 알아줄 때를 기다리며 살겠다고 아내에게 맹세를 해 본다.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처가의 가세는 기울어 의식을 걱정할 형편이 되자, 안현은 자존심을 버리고 서해의 대청도로 나아가 일개 수역의 역참 관리가 된다.

 안현은 시도(詩道)를 그리워하며 시와 삶이 온전히 하나가 되기를 꿈꾼다. 앉으나 서나 노래를 듣고 살던 시인 안 현은 이곳에서 아버지조차 그의 흉포성을 저주했던 이아치를 만난다. 그는 직속상관을 때리고 유배생활을 하러 온 이아치에게 아내를 빼앗기고 철퇴를 맞아 바다에 던져진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안 현은 겨우 몸을 추스른 후, 아내를 찾아 황야로 떠난다. 들쥐까지 잡아먹는 고통을 겪으면서 천신만고 끝에 아내를 만났으나 이미 그녀는 지다이라는 영주의 아내 아수친이 되었고, 또 우량카이라는 아들을 낳아 어머니가 되어있었다.

 그녀의 도움으로 둔영에서 서기 일을 보게 된 안 현은 지다이가 죽고 난 뒤, 그녀에게 박연폭포가 떨어지는 고모연에서 채련가를 부르던 일을 상기시키면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제의했다. 그러나 그녀는 한번 끊어진 인연은 다시 잇기 어렵다고 거절한다. 거의 무한한 고독이 그의 기력을 앗아갔고, 그는 자신의 인생이 헛되이 흘러갔다는 것을 느끼며 황야는 오직 자신의 가슴속에만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해가 바뀌고 아수친의 아들 우량카이의 성인식이 치러지는 날, 안 현은 술에 취해 잠들게 된다. 악몽을 꾼 안 현은 꿈에서 깨어 아수친을 살해하고 옥중에서 채련기를 남기고 산채로 매장된다.

 

 이 작품은 시대를 초월한 사랑을 그린 이인화의 소설이다. 2000년 제24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고려 충렬왕 때의 사람인 안현에 대한 역사적 기록과 1997년 8월 앙카라대학 교수가 발견한 17세기 필사본에 실린 ‘고려인 비칙치(서기) 안의 이야기’를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하여 안현과 비칙치 안을 동일 인물로 상정하고 한 편의 소설로 재구성한 것이다.

「시인의 별」, 주석의 형식을 빈 이 작품에는 ‘채련기(採蓮記) 주석 일곱 개’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주석1에는 안현이라는 시인을 소개하고, 주석2에서는 안 서기를 소개한 후, 정확한 근거 없이 단순한 상상력만으로 두 인물을 하나로 연결한 것이다.

 작가는 1993년에 발표된 작품 <영원한 제국>에서 종래의 역사 소설이 가지는 사담(史談)적 한계를 극복하여 이야기꾼의 자율성과 구성력으로 가장 새로운 형태의 현대적 플롯에 담겨진 역사 소설을 의도했다고 했는데, 이 작품도 당대의 감각으로 재현된 일종의 현대적 전사(前史)로서의 역사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주석3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이 작품은 액자 소설이다. 이 작품은 2000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이다. 이른바 인문학적 상상력의 소설적 완성이라는 평가를 받은 소설이다.

 

 

 드넓은 초원을 무대로 사랑을 찾아 헤매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문헌적인 주석이라는 말 끼워 넣기 방법이라는 특이한 기법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 소설은 모두 일곱 개의 삽화를, 마치 옛 문헌에 주석을 달듯이 풀어 가고 있다. 평론가 권영민은 역사 속에 한 줄의 기록으로 남아 있는 이야기의 흔적을 찾아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치밀한 상상력으로 거기에 주석을 붙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수법은 이 작가만이 가진 역량이라고 하였다. 작가 자신은 이 작품이 사마천의 열전 문체, 사전체를 모방하여 씌어졌음을 밝히고 있다. 부제로 붙은 ‘채련기 주석 일곱 개’는 가장 복고적이고 보수적인 작업을 통하여 역사적 사실과 기록 속에서 시공을 초월한 삶의 원형을 발견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드러낸다.

 이아치 대목에서 안 현이 처를 빼앗기는 양상이 백제 개루왕 때, 도미 이야기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구성이 잘되어 단순한 설화라기보다는 하나의 문학 작품으로 볼 수 있는 이 도미 설화의 역점은 역시 도미 처의 정절에 주어져 있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도 불우한 식자들은 있다. 갑자기 열린 새 시대 속에 전통적인 문인 집단들이 소멸되고 그들을 대신할 신흥 사대부들이 아직 출현하지 않았던 과도기에 낡은 교육제도의 관성에 의해 만들어졌으되 새 시대의 물결에 적응하지 못하고 익사해버린 무수한 지식인들. 그들 중의 한 인물이었던 안 현은 작가 이인화에 의해 풍부하고도 섬세함이 깃들인 상상력으로 별로 다듬어져서 빛나고 있다.

 이 시대에도 오직 외길을 고집하는 지식인들은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는 세태와 불합리하고 모순된 제도 속에서 때로는 무능으로, 혹은 아집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이렇듯 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사라지고 마는 수많은 별들, 그들은 몇 백 년이 흐른 뒤, 또 누구의 풍부한 상상력으로 다시 한 번 빛나볼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