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 단편소설 『달밤』
월북작가 이태준(李泰俊. 1904∼?)의 단편소설로 1933년 [중앙(中央)]에 발표되었다. '나'와 '황수건'이라는 사내가 엮어내는 이야기인데, 우둔하고 천진한 품성을 지닌 '황수건'이라는 남자가 각박한 세상사에 부딪혀 아픔을 겪는 모습이 중심을 이룬다. 이 작품은 이태준 문학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는데 소설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성북동으로 이사 온 뒤 우연히 알게 된 황수건의 내력이고, 다른 하나는 장사에 실패하고 또 아내마저 달아난 뒤 실의에 빠진 황수건에 대한 나(화자)의 동정과 연민의 태도이다. '못난이'로 불리는 황수건은 과연 이 세상에서 살아 나갈 수가 없을까 하는 부분이 이 소설의 감상 포인트이다. 그와 관련된 여러 에피소드와 이를 바라보는 '나'의 태도, 그리고 애상적 분위기가 돋보인다.
이태준의 문학은 언어 예술이라는 자각에 투철했고, 그래서 그런 의도를 감각적 분위기와 소설적 형상을 통해서 제시한다. 희미하게 달이 비추는 밤,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라는 유행가를 부르면서 담배를 ‘퍽퍽’ 빨고 비틀거리는 황수건의 모습, 이태준 소설이 갖는 중요한 매력의 하나는 이렇듯 정교한 묘사를 통해서 독특한 분위기와 풍경을 창출한 데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성북동으로 이사 온 '나'는 시냇물 소리와 쏴아 하는 솔바람 소리 때문에, 그리고 황수건이란 사람을 만나고부터 이곳이 시골이란 느낌을 받는다.
우둔하고 천진한 품성을 지닌 황수건은 아내까지 거느리고 형님의 집에 얹혀살면서 학교 급사로 일하던 중 일 처리를 잘못하는 바람에 쫓겨난다. 그는 현재 정식 배달원이 떼어 주는 20여 부의 신문을 배달하고 월 3원 정도의 보수를 받는 보조 배달원으로, 그의 유일한 희망은 원 배달원이 되는 일이다.
그는 '나'와 가깝게 지내면서, 집을 구하는 것에서부터 우두를 맞지 말라, 개를 키우지 말라는 등 여러 가지 실속 없는 참견을 한다. 그러나 그의 순진한 성격을 아는 '나'는 그의 참견을 끝까지 받아 준다.
그런데 성북동이 따로 한 구역이 되었으나 정식 배달은커녕 '똑똑지가 못하니까' 보조 배달원 자리마저 떨어지고 만다. 황수건은 '나'에게 하소연을 한다. '나'는 그의 처지가 하도 딱해서 참외 장사라도 해보라고 돈 3원을 준다. 한동안 그는 참외도 가져오고 포도도 훔쳐 오는 등 '나'의 집에 잘 들렀으나, 참외 장사도 실패하고 끝내는 동서의 등쌀을 견디지 못한 그의 아내마저 달아난다.
어느 늦은 밤, 그는 달만 쳐다보며 서툰 노래를 부른다. 전에 볼 수 없던 모습으로 담배를 피우면서……. '나'는 그를 부를까 하다가 그가 무안해할까 봐 얼른 나무 그늘에 몸을 숨긴다. 쓸쓸한 달밤이다.
'나'는 문 안에서 성북동 시골로 이사 온 후에야 사람다운 삶의 체험을 하게 되어 더 큰 보람을 느낀다. 그것은 '못난 이'가 눈에 잘 띈다는 사실 때문이다. 문 안에는 말하자면 '잘난 사람'들만 살기 때문에 '못난 사람'은 밖으로 나올 수도 없고, 또 있어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골은 '못난 사람'도 자신을 감추지 않고 사는 곳이다. '못난 사람'이 자기 나름의 서툴고 어수룩한 생각을 통제 없이 표현한다는 것은 시골에는 그러한 사람이 살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북동에 작은 집을 사서 이사 온 '나'에게 "왜 이렇게 죄고만 집을 사구 와겝쇼. 아, 내가 알었더라면 이 아래 큰 개와집도 많은 걸입쇼."라고 첫 대면부터 황당하게 면박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못난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그러나 '나'는 바로 이런 인물에게 정을 느낀다. '나'가 '반편'에 해당하는 '황수건'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재미를 느끼고, 또 이야기의 뒤끝이 깨끗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늘 복잡하고 뒤끝이 깨끗하지 못했다는 것과 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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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작가가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은 두 인물의 관계가 아니라, '황수건'이라는 인물의 사람됨과 그러한 인간이 살아갈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인식이다. 즉, 이 세계는 약삭빠르고 경쟁에서 이기는 '잘난 사람'만이 살 수 있는 곳이기에 '황수건' 같이 신문 배달 자체만을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는 사람, 그래서 도중에 어느 집에서 지체되면 밤이 되어서까지 배달하는 사람은 도시적 경쟁에서 도태되기 마련이다. 작가는 이러한 인물을 통해서 '반편' 같은 존재도 하나의 인격체로서 살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음'을 보여 준다.
이태준의 대표작, 예를 들어 <까마귀>, <밤길>, <복덕방> 등은 일상적인 사소한 것들에 패배당하는 인간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패배주의자들에 대하여 독자가 연민을 느끼는 것은 서술자, 또는 작중에 뛰어든 관찰자 '나'의 동정적인 태도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나'가 '황수건'을 대하는 태도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그와 같은 동정심은 휴머니즘 정신에 기반을 둔 것은 사실이지만, 회고 취향의 나른한 서정성이 너무 짙게 배어 나온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의 마지막 대목인 "달밤은 그에게도 유감한 듯하였다."는 문장은 이태준 문학 성향의 농축이며, 그의 문학이 '역사' 또는 '미래'와 거리가 먼 것임을 입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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