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 현대소설

최인호 단편소설 『타인의 방』

by 언덕에서 2011. 2. 24.

 

최인호 단편소설 『타인의 방』 

 

 

최인호(崔仁浩. 1945 ~ )의 단편소설로 1971년 [문학과 지성]지 봄호에 발표되었다. 작가의 대표 단편소설로 현대문학상 신인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최인호는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63년에 <벽 구멍으로>라는 단편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가작으로 입선되고부터 창작에 전념한다. 그 후 1966년에 <견습 기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정식 작가로 등단한다. 그는 1972년 9월부터 [조선일보]에 1년 동안 <별들의 고향>을 연재했는데, 이 작품에서 빼어난 문장과 감각적 언어로 현대 산업 사회의 모습을 그려내어 70년대 우리 소설 문학의 새로운 장을 개척했다고 평가 받는다.

 이 『타인의 방』은 현실에 대한 도전과 물질사회에의 비판을 그린 작품이다. ‘그’라는 주인공의 의식세계를 통하여 삶에 내재한 개인적 고독 내지는 단절된 현대적 삶의 의미를 보여주며, 이를 하루 저녁의 생활을 통하여 적절히 서사화하였다. 작가는 이러한 작품을 통하여 비친숙성(非親熟性), 즉 낯선 의미를 발견하는 데 성공하고 있으며, 의식추구의 문학이라는 새로운 장을 이루어놓고 있다.

 한 사내가 자기 아파트로 돌아온다. 그러나 아무리 벨을 눌러도 대답이 없어 열쇠로 열고 들어간다. 방안에는 ‘친정아버지가 위독하니 다녀오겠다.’는 아내의 쪽지만이 딩굴 뿐 아무 것도 없다. 그는 이제 빈 방뿐인 아파트에서 분노를 느낀다. 그 분노는 방 안에 가득한 온갖 사물에 대한 분노로 나타난다. 욕실, 욕실에서 들리는 물소리, 욕실 속의 거울, 면도칼, 그리고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그릇들.

 그는 마치 그들 모두가 예기치 않게 혼자가 되어버린 자신을 놀리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라기보다 의식의 집중, 이른바 핵가족화한 현대의 풍속에서 소외당한 한 개인의 절규이다.

 

영화 [타인의 방], 1980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그’라는 한 사내가 저녁 늦게 직장에서 귀가하여 아내가 문을 열어 줄 것을 기대하고 초인종을 누르나 아무런 대답이 없자, 그는 아내가 잠들어 있는 줄 알고 문을 세차게 두드려 아내를 깨우려 한다.

 그러나 아내는 끝내 응답이 없고, 오히려 이웃 사람들이 잠옷바람으로 나와 그 집주인이 없는 모양이니 돌아가라고 하며, 소란통에 잠이 깬 것을 불평한다. 그가 이 집이 자신의 집이라고 주장하자, 이웃집 사내는,

 “이 아파트에 거의 삼년 동안 살아왔지만 당신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고 말하며 그를 의심하자, 그도,

 “나두 이 방에서 삼년을 살아왔는데도 당신 얼굴은 오늘 처음 본다.”

고 응답한다. 이러한 말싸움 끝에 그는 열쇠로 문을 열고 방에 들어가, 형광등의 불을 켰으나 낯선 곳에 온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아내의 화장대 위에서 그녀의 친정아버지가 위독하여 시골을 다녀오겠다는 쪽지를 발견한다. 그는 아내가 없는 방에서 식은 음식을 먹고, 목욕하고, 음악을 듣고, 일상적인 생활의 흐름대로 지내지만, 방안의 물건들 하나하나가 그 독자적인 의미를 띠고 있음을 새삼스레 인식한다.

 즉, 일상적 삶의 감각이나 지각에서 인식하였던 사물의 익숙하고 순종적인 의미는 사라지고, 물건 자체의 독자적인 의미를 발견하게 되어, 그 스스로는 고독을 느끼고 거울 속에서 ‘늙수그레한 남자’인 자신을 타인으로 발견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사물의 인식을 통하여 일상적 삶의 인식과 사물 자체의 의미 사이의 격차가 분명히 드러나게 된다.

 

영화 [타인의 방], 1980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이 아파트 문을 따고 들어가 보니, 아내가 거짓 쪽지를 남겨 놓고 집을 비운 데서 오는 소외감을 그린 소설 <타인의 방>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으로부터 고립감을 맛보는 현대인의 의식 일반에 대한 풍유(allegory)로 읽힐 수 있다.

『타인의 방』은 현대인의 소외 의식을 표현한 초현실주의적 기법의 작품이다. 출장에서 돌아온 주인공은 자신의 방임에도 불구하고 우울하고 고독해 한다. 마침내는 주인공의 불안 심리가 자신의 방 내부의 모든 사물들에 투영되어 사물들을 움직이게 한다. 그의 주변에 있는 모든 사물은 이제 어제의 사물이 아니라 낯설고 불편한 것일 뿐이다. 즉, '타인의 방' 인 것이다. 그는 환경에 대하여 주인이 되지 못하는, 따라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으로부터 외면당하는 비애를 느낀다.

 소설의 말미에서 그의 아내는 '새로운 물건'을 발견한다. 그것은 그녀의 남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낯선 어떤 물건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집안의 존재들은 그저 '물건'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주인공과 가구 집기들과의 관계가 그러하듯이 아내와의 관계도 인간적인 관계가 아닌 낯선 관계, 불안한 관계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가장 두려운 것은 이러한 상황이 반복된다는 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