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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기영 대하소설 『두만강(豆滿江)』

by 언덕에서 2011. 2. 18.

 

 

이기영 대하소설 『두만강(豆滿江)』

 

 

월북작가 이기영(李箕永.1896∼1984)의 대하소설로 북한 역사소설의 시발점으로 평가되는 대작이다. 이기영이 1930년대 초부터 카프의 중심인물로 활동하다 월북 후 <땅>에 이어 두 번째로 발표한 작품으로 19세기 말엽부터 1930년대까지 두만강 지역에 살던 주민들의 반봉건, 반일투쟁을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은 전 3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1951년부터 10년간 집필한 대작으로 1954년에 1부를, 1957년에 2부를 발표하고 1961년에 3부를 완성하여 발표하였다. 원고지 1만 매가 넘는 대장편으로, 1954년 1부를 발표한 이래 1961년 완결되었다. 발표 후 북한당국으로부터 [인민상]을 수상하였으며, 북한의 문학사에 ‘근세 우리 인민의 반침략ㆍ반봉건 투쟁역사를 전개, 화폭 속에서 폭넓게 형상한 데서나 역사소설의 면모를 갖춘 데서나 해방 후 소설문학이 거둔 의의 있는 수확의 하나’라고 기록되었다.

 1부는 19세기말에서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는 1910년까지,

 2부는 1910년부터 3ㆍ1운동까지,

 3부는 1920년대 초부터 민족해방투쟁이 무장투쟁으로 발전하는 1930년대 초에 이르는 시기를 배경으로 하여, 1부(1900년 초∼10년 전후), 2부(국권피탈∼3·1운동), 3부(20년대∼30년대)로 구분되었다.

 

 

월북작가 이기영(李箕永.1896&sim;1984)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충청도 송월동의 지주 한길주와 농민 박곰손의 두 집안을 중심으로 해서 소설이 전개된다.

 ●제1부는 서울에서 벼슬하던 수구당 한길주가 러일전쟁 시기 일본의 세력이 거의 완전히 조선을 장악하게 되자 송월동으로 낙향면서 시작된다. 한길주의 낙향은 송월동 농민들에게 길 닦는 부역으로 시작해서, 진펄 개간공사 부역, 그리고 마침내는 농민들이 힘들여 일군 농토가 약탈되는 것으로 귀결된다. 한길주는 때로는 지주의 위세로서 작인들에게 경제 외적 강제를 강요하고 때로는 근대적인 법령에 뒷받침된 소유관계에 따라 소작인들을 수탈하기도 한다. 이미 송월동 농민들이 일궈놓았던 땅들까지 모두 소유권을 주장하며 소작료를 물라고 강요한다. 한길주는 일본인들과 친해야만 재산을 늘리고 새 시대에 영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챘기에 철도 부설 공사에 인부를 모집하러 일본인들이 찾아왔을 때 그들을 적극 환영한다. 그리고 자기의 아들 한경식을 읍내에 새로 생긴 일어강습소에 다니게 한다. 그러나 일어를 배우라고 보낸 읍내에서 나약한 귀염둥이로 자랐던 한경식은 방탕한 생활만을 배워서 낭비를 일삼는다.

 이러한 지주의 횡포에 저항하는 송월동 농민들은 박곰손을 중심으로 저항한다. 경부선 철도 공사장에서 대한제국 정부가 아닌 일본인이 강제로 부역을 시키고 가혹한 노동을 강요하는 것에 저항하여 곰손이는 부역꾼들을 선동한다. 또한 한길주가 자신이 개간한 경지를 강탈하려는 데 저항하다가 곰손이가 옥에 갇히자 송월동 농민들은 민란을 일으키는데 곰손이는 옥 속에서 다른 죄수들을 선동하여 파옥으로 호응한다. 그러면서 곰손이는 일제에 대한 적개심에 불타서 의병들에게 협력하여 제사공장에 폭발물을 던지고 결국은 간도로 이주할 것을 결심한다. 이처럼 곰손이는 지주와 일제에 대한 송월동 농민들의 저항의 최전선에 서 있다.

 이진경은 송월동 농민들의 존경을 받으면서 그들의 인식을 제고하는 매개 역할을 하는 우리 근대 초기 가장 선진적인 양반 출신 지식인의 모습을 보인다. 즉 한길주와 같은 수구파 관료도 아니고, 화이론적 세계관 속에서 반외세 의식은 투철하나 반봉건 의식은 미약했던 위정척사파도 아니고, 새로운 근대적 문물을 접하면서 반봉건 의식은 강렬했으나 근대화를 앞세운 제국주의의 본질에는 무감각했던 개화파도 아니다. 그야말로 반외세 반봉건 의식을 분명하게 가지고 그것을 현실에서 행동으로 실천하는 인물인 것이다.

 ● 제2부는 박곰손 일가가 송월동을 떠나 북간도로 향하면서 소설의 무대가 서울과 북간도로까지 넓어진다. 북간도로 가는 길에 곰손이는 함경북도 무산에 터를 잡고 아들 씨동이만 의병부대를 찾아 두만강을 건너갔다가 용정의 명동학교에 다니면서 독립운동가들과 연계를 맺게 된다. 곰손이의 딸 박분이도 얼마 후 오빠를 찾아 명동학교로 간다. 송월동에서는 한길주가 완전히 몰락하고 새로운 지배자로서 친일파인 김진해가 등장한다. 한길주와 같은 봉건양반은 결국 식민지 자본주의에 적응하지 못하여 패가한 대신 타산적이고 사리에 밝은 친일파 김진해가 식민지 부르주아로 성장한 것이다.

박씨동은 간도로 가서 안무를 만나고 명동학교에 입학하여 투철한 민족주의자 테러리스트로 성장한다. 그는 국내에 몰래 들어와 김진해의 환갑잔치에 폭탄을 던지는 일을 꾸며 조선민족의 독립정신이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보여주었고, 간도에서는 명동학교 학생들이 용정의 일본영사관에 몰려가서 시위하는 데에 주도적 역할을 한다. 박곰손은 무산에서 3.1운동을 주도했다가 체포되었고 일제의 가혹한 고문으로 죽게 된다.

 ● 제3부는 박곰손의 아들 박씨동과 딸 박분이, 한길주의 서자 한창복 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3.1운동 후에는 사회주의 운동이 활발해진다. 분이는 명동학교가 일제의 간도 대토벌로 불타버린 후 서울로 와서 고학당에 다니면서 사회주의적 의식을 갖게 된다. 박씨동은 안무가 죽은 후 연길 감옥에서 만난 최혁으로부터 새로운 사회주의 사상을 배우고 반제동맹에 관여하면서 신흥탄광의 파업을 주동하는 인물로까지 성장하게 된다.

 송월동에 사는 농민들은 세상이 개명하면서 새로운 물건이 새록새록 나와서 생활이 편리해지는 대신 그것들을 사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묵은 양반에다 새 양반에다 일제까지 가세한 착취는 더 가혹해져서 옛날보다 더 여유가 없어졌다. 농민들은 노동자로, 한창복은 유학생으로 일본으로 갔다가 관동대지진을 겪고 돌아오면서 계급의식을 가지게 된다.

 이처럼 소설의 무대가 간도, 무산, 서울로 확대되고 중심적인 인물도 지식인이며 전위활동가로서 행동반경이 넓어지면서, 소설은 1910년대와 1920년대의 현실을 그야말로 ‘총체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서울 중심의 사회주의 운동가들에 실망한 씨동이와 분이가 김일성의 항일유격대를 찾아 나서는 데서 제3부 1권이 마무리 되고 그 이후는 발표되지 않았다.

 

 

 

 이 소설은 북한의 전후 복구건설, 사회주의 기초건설 시기에 쓰인 리얼리즘 소설이다. 옥녀봉전설(선녀와 나무꾼)ㆍ김장자전설(장자못전설) 등 2개의 전설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빈농 박곰손과 씨동부자가 봉건양반과 일제의 수탈을 뚫고 혁명적 투사로 변신해가는 과정을 19세기 말에서 1930년대에 걸친 역사적 사건들과 접합시켜 그렸다.

 양반관료의 탐학, 지주와 자본가의 수탈, 일제의 침탈, 사회적 모순 등은 현실에 대한 한탄으로 이어지나, 빈농계급의 질긴 생명력을 상징하는 씨동부자는 투쟁을 통하여 무산계급의 유토피아를 찾고자 한다. 이 작품에 나타난 계몽성·집단성·목적성 등은 곧 김씨 왕조를 찬양하는 북한문학의 특성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이기영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농민들의 계급적 성장과정이다. 농민들의 성장과정을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묘사하여 그려내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의 결말을 김일성이 활동하고 있다는 항일무장투쟁 근거지로 향하게 하고 있다. 이는 김일성의 혁명투쟁을 농민들의 계급투쟁 속으로 끌어들이면서 그 승리의 역사적 필연성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논란의 여지가 많다.

하지만 19세기말부터 전개된 농민봉기와 의병운동, 애국계몽운동, 독립군운동, 3ㆍ1운동,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 광범위한  민족해방운동의 총체적인 현실을 실감 있게 보여주고 있어 민족해방운동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기영은 제3부를 쓰기 위해 만주 일대를 답사하고 이전에 창작된 제1·2부를 제3부와 연계지어 검토하면서 몇 가지를 수정했다. 그 과정에서 김일성이 활동하고 있다는 항일무장투쟁의 근거지로 향하는 씨동이 일행의 모습이 결말로 제시되는 점은 역사적인 실체의 측면에서 논란의 여지를 제공한다. 그러나 농민봉기, 의병운동, 애국계몽운동, 독립군운동, 3·1운동,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 광범위한 민족해방운동의 총체적 현실을 실감 있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기념비적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