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과의 재회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까지를 포함해서 존경하는 스승님이 딱 한 분 계신데 그분은 고 3때의 담임 선생님이시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의 일이다. 한번씩 고등학교 3학년 반창회가 열리는 모양이었는데 나는 야근이 많은 관계로 거의 참석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퇴근 무렵에 반창회 총무로부터 전화가 왔다.
“야, 오늘이 반창회날인데 무슨 일이 있어도 참석해야 한데이. 담임 선생님이 오시기로 했다. 몇 십 년 만에 친구들 얼굴도 한 번 봐야제?”
모임 장소는 선생님께서 사시는 아파트 입구의 작은 횟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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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때 담임선생님을 생각하면 온유하신 성품과 선비 같은 인품에 아버지 같이 푸근한 모습이 항상 떠오른다. 경남 거제 출신인 선생님은 국어 고문(古文)을 담당하셨는데 시조 시인으로도 알려져 있으시다. 한없이 존경하는 분이지만 반면에 약간의 섭섭한 감정도 나는 가지고 있었다. 29살 때의 결혼식 며칠 전, 주례는 존경하는 분이 맡아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던 터라 선생님께 찾아가 결혼식 주례를 부탁드렸다. 그해 선생님은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사학재단의 여중학교로 전근 된 상태였다. 그런데 기뻐하시며 흔쾌히 수락하실 줄 알았던 선생님은 냉정하게도 일언지하에 거절하셨다. 이렇게 잘 자란 제자의 결혼식에 여중학교 1학년 선생 따위가 주례를 설 수는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몇 십 년 동안 주로 고3 담임만 맡으셨던 선생님의 중학교 발령은 좌천(左遷)의 의미로 청천벽력과 같은 충격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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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창회 총무의 전화를 받은 그 날, 마침 고3때 단짝인 A가 옆 빌딩의 증권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지라 함께 전철역에서 만나 선생님이 사시는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다. 그날 계산해보니 선생님의 연세는 칠순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임시간을 저녁 7시로 알고 정시에 둘이 도착했으나 횟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반창회 총무에게 전화를 해보니 8시인데 잘못 전달했다고 미안해했다. 별 할 일이 없던 A와 나는 먼저 회 한 접시와 소주를 주문하여 마시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한 병을 마시고 그래도 급우들은 오질 않아 또 한 병을 시켜 둘이서 인당 한 병씩 마셔서 제법 알딸딸해져 있었다. 그때 횟집 밖에서 왁자지글한 소리가 들려 왔다. 열 명 정도의 중년 사내들이 서로 악수를 하고 있었다. 20년 훨씬 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이 사십이 넘어 그때의 친구들을 만나니 그 감회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다들 중년이 되었지만 어린시절의 모습들은 얼굴에 조금씩 남아 있었다. 나는 친구들과 일일이 포옹하고 악수를 했다.
“인마! 반갑다. 너무 오랜 만이네…….”
그런데 밤이라서 그랬는지 머리에 포마드1를 짙게 바르고 청바지를 입은 한 친구는 전혀 이름을 기억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일단 힘차게 포옹을 하고 말없이 악수를 했다. 그런데 순간, 그러는 나의 모습을 다들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것이었다.
아뿔싸! 머리에 기름을 바른 그는 바로 담임 선생님이었다. 밤이어서 그랬는지, 모임을 기다리다가 마신 소주 때문인지, 많이 늙으셨을 거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선생님을 못 알아보았던 것이다.
잠시 후, 나는 선생님 옆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자초지종을 말하며 용서를 빌었다.
“하이고! 선생님, 죄송합니다. 너무 젊으셔서 설마 선생님이시리라고는 생각을 전혀 못했습니다.”
선생님은 아주 밝은 웃음을 지우며 대답하셨다.
“허허, 괜찮다. 자네 때문에 내가 몇 십 년 젊어지고 얼마나 좋으냐? 오늘은 참 기쁜 날이다.”
그렇게 겨우 용서를 받으니 어이없게도 서운했던 지난 기억이 되살아났다. 인간은 원래 이기적인 존재이지 않는가. 선생님이 주례를 거부하시는 바람에 결혼식 전날까지 주례를 구하러 동분서주했던 기억 때문이었다.
“그때 제 결혼식 때 선생님께서 주례를 안서주신 것, 기억하십니까?”
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선생님은 깜짝 놀라시며,
“그랬구나. 내가 무슨 이유로 주례를 안서준다고 하더냐?”
하시며 오히려 궁금해 하셨다. 그래서 당시 ○○여중으로 발령 나서 주례를 못서겠다고 하셨던 것을 상세히 이야기하니 선생님은 기억을 되찾으셨다.
“아하, 그랬구나. 그때 내가 참으로 생각이 어렸구나. 어쩌겠느냐? 이미 그렇게 된 것을. 다시 한 번 결혼해라. 이번에는 꼭 주례를 서주마!”
하하, 내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결례를 범하고, 선생님은 그 실수를 제자의 귀여운 애교로 받아들여 잘 안아주시며, 그럴 수도 있는 당신의 과거지사를 미안해하시며 사과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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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고3 반창회는 일년에 서너 번씩 열리고 있는데 작년 연말에는 모처럼 선생님이 참석하셨다. 1934년 생이신 선생님은 15년 전에 상처(喪妻)하신 후 예전의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계시는데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셔서 그런지 기력이 많이 떨어지고 목소리는 눈에 띄게 가늘고 힘이 없어보였다. 술도 소주 2잔만 드시고 나머지는 거절하시며 제자들의 이야기를 주로 듣기만 하셨다. 그러시다가 주머니에서 삼만 원을 꺼내어 총무에게 주시더니
“내가 동네 문화원에서 발간하는 회지 원고 교정을 하고 있어 약간의 수입이 있다. 너희들 이 돈 가지고 노래방에서 노래라도 한 곡 부르거라. 나는 이제 집에 가서 자야겠다.”
하시며 자리를 뜨셨다.
자리에서 일어서시는 선생님을 붙잡고 A와 나는 식당 복도에서 큰 절을 올렸다. 선생님의 노쇠한 모습에 눈물이 핑돌며 왠지 꼭 절을 해야만 될 것 같은 생각이 이심전심으로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선생님은 둘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댁으로 가셨다.
“내년 연말 반창회에는 선생님께서 못 오시겠지?”
내가 A에게 물었다.
“그래, 오늘이 어쩌면 선생님과의 마지막일지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의 우려와는 달리 선생님께서는 내내 건강하셔서 작년에는 모 재단이 주최하는 '이은상 문학상'을 수상하셨다. 제자들을 친자식처럼 사랑하시고 어린 우리들에게 꿈과 사랑을 주셨던 선생님. 저희들을 생각하시는 선생님의 마음은 언제나 태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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