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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 <옛날의 금잔디>

신부(神父)님과 냉담자(冷淡者)

by 언덕에서 2014. 11. 7.

 

 

 

 

 

 

신부(神父)님과 냉담자(冷淡者)

 

 

 

 

 


군 제대를 5개월 앞두고 사고를 당하여 석 달간 국군통합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병장과 단기하사의 싸움을 말리다 손목이 골절되어 수술을 받게 되는 변을 당한 것이다. 전화위복이란 말이 있듯이 나에게는 모처럼 갖는 휴식 시간이었고 특전사, 수방사, 해병대, 백골부대, 보안사, 정보사, UDT, 헌병대 등 특별한 부대 소속 병사뿐만 아니라 동양철학의 달인, 단전호흡의 대가, 유명 가수,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프로바둑기사 등 군대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인간유형을 만나게 된 값진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군기가 있어 병실 내 기합이 존재하는가 하면, 위생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실을 책임지는 간호장교의 보조 업무를 하는 환자 병사가 완장처럼 권력자로 둔갑해 있어 자신보다 계급이 높은 환자 사병들 위에 군림하고 있음을 목격하기도 했다. 인간이 모인 집단에는 어떤 형태로든 권력이 있고 부나비처럼 그곳에 기생하는 존재들이 있음을 재차 깨닫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수도권의 모 포병 부대에서 중형화기를 설치하다 발목 골절사고를 당한 한○○ 병장과 나는 같은 날 입원하게 되었는데 옆자리의 침대를 각각 사용하게 되어 3개월간 서로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다. 그곳에는 이른바 ‘입원 군기’라는 것이 있어서 계급이 낮은 병사들은 도착일로부터 고참 환자들로부터 이른바 '빳따'나 '원산폭격’같은 얼차려를 당하는 등 고초를 당했지만 한 병장과 나는 말년 병장이었기에 별다른 수모 없이 수술을 받고 무사히 부대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군 생활 내내 악화되었던 나의 건강이 획기적으로 좋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실의 내 자리에 50대의 수녀님이 찾아오셨다. 신상기록부에 적힌 나의 종교란을 보고 방문하신 것인데 수술한 내게 기도해주셔서 나는 그 답례로 병원 내에 위치한 성당을 방문하고 매주 일요일에는 미사를 보게 되었다. 당시 어머니는 내가 군대에서 다쳐서 국군통합병원에 입원까지 했다는 소식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걱정을 하셨다. 앞을 보지 못하고 홀로 사시는 내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수녀님은 우리 집에 전화하셔서 당신이 잘 보살피고 있으니 걱정 마시라는 전화를 주시기도 했다. 

 ○○시 변두리에 위치한 국군통합병원 내의 성당은 별도의 건물 없이 부대 내 개신교 예배당을 빌려 쓰고 있었는데 그곳은 예배용 강당과 별도의 사무실 겸 다용도실인 방 한 개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방에는 파티마수도회에 속한 할머니 풍의 예의 수녀님이 매일 출근하셨고 일요일에는 군종교구1 내 해당 군 위수2지역의 군종신부님이 그곳을 방문하여 미사를 집전하셨다.

 ○○국군통합병원 내의 성당은 종교시설이 없던 외딴 소규모 부대에서 복무하던 내게 신앙생활을 다시금 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지만 이해하지 못할 점도 많이 발견하게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사 후 티타임과 미사 때의 신부님의 강론3 내용이었다.

 티타임은 주일 미사 후에 이루어졌다. 하나 뿐인 방에서 이루어지는 간담회와 다과회를 겸한 그 행사 때마다 환자 병사들은 참석하지 못하고 밖으로 건물 밖으로 내몰려야만 했다. 이유는 미사에 참례하는 영관급의 군종신부와 병원에 근무하는 장교 및 간부들을 배려하기 위해서였다. 군종 신부나 병원 내 간부들이야말로 국가의 부름을 받고 복무하다 다친 병사들을 도우기 위해 존재하는 이들인데 환자들은 실내에서 차 한 잔 얻어 마시지 못하고 밖으로 내몰리니, 주객전도(主客顚倒)라는 말이 이런 경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내심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바른 말 잘하는 내가 이런 불만을 이야기하니 수녀님은

 “아픈 데가 많으니 불만도 많아요.”

하시며 사람 좋은 웃음만 지우실 뿐이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곳에서 대다수의 신자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서는 부대 내 간부들의 협조가 불가피한데 항상 원리원칙대로 운신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신부님의 미사 강론 내용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동물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신부님은 ‘하느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든가 ‘국가를 위해서 좀 다치면 어떤가’는 식의 가벼운 발언을 자주 하셨던 탓이다. 어쨌든 감사하게도 나는 무사히 퇴원을 해서 부대로 복귀할 수 있었고 몇 달 후 기대하던 전역을 할 수 있었다.

 전역 후 복학을 준비 중일 때 수녀님은 내게 친히 편지를 주셨다. 어머니를 잘 모시고 신앙생활 열심히 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는데 그때 느꼈던 감사함의 감동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결혼할 때 우리 동네 성당의 주임신부님이 관면혼배성사4를 거부했기에 결혼 후 교회에 대한 나의 실망은 깊어만 갔다. 결혼서약 반지를 준비하지 않아서 발생한 일인데 신부님의 행동을 나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신자들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이야기는 성당 내 신자들 사이에서도 곧장 회자(膾炙)되어 융통성 없는 신부님에 대한 대표적인 불신 사례로 불리곤 했던 모양이다.

 그 사이에 우리 부부는 냉담자5가 되어 갔다. 그러던 삼십 대 중반의 어느 날, 성당을 다녀오신 어머니로부터 새로 부임한 보좌신부6님이 내게 면담을 원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날은 화요일 저녁으로 기억하는데 성당 근처에 위치한 간이 일식집에서 신부님과 독대를 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자동차 공장의 총무 과장으로 근무 중이었는데 그곳에는 영양사 아가씨가 여럿 있었고 그 중의 한 명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오늘 신부님과 만나기로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라는 질문에 그녀는

 “준비랄 것이 뭐 있겠어요? 제가 알기로는 대부분의 신부님은 골초에다 초뺑이예요. 그러니 위를 보호하기 위해 우유나 든든히 드시고 가면 됩니다.”

라고 대답했다.

 삼십대 초반의 신부님과의 대화는 화기애애하기 짝이 없었다. 신부님은 전임(前任) 주임 신부님이 군종 신부로 오래 근무한 탓으로 권위 의식이 강하고 따스한 인간미가 부족하다며 자신도 부임 후 그 분에 대한 원성을 많이 들었노라고 이야기했다. 그날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지만 신학생 이후로 십 년 이상을 신학 공부에만 몰두한 것이 아니라 철학, 문학, 사회학, 심리학 등 제반 학문에도 상당한 식견을 갖추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신부님은 전임 신부님이 우리 부부에게 가혹했지만 하느님을 보고 성당에 오는 것이지 신부를 보고 오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하시며 냉담 생활을 청산할 것을 권유했다.

 “그 신부님이 우리 부부에게 직접 사과하기 전까지는 성당에 나가지 않을 겁니다.” 라고  결기를 세우니 신부님은

 “제가 대신 사과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라고 물었다.

 하하, 무슨 용가리 통뼈 심리였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그 신부님이 직접 사과해야만 합니다.”

라고 호기를 부렸다.

 

 

 

 


 항상 자주 하는 말이지만 ‘술이 원수다’라는 말은 불변의 진리다. 지금은 주량이 많이 약해졌지만 당시만 해도 나는 술깨나 마신다는 평을 듣던 터였다. 처음 독대를 시작할 때는 신부님, 형제님 하면서 깍듯이 예를 표했지만 술이 들어갈수록 예의를 다해야 한다는 경계가 쌍방이 동시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신부님은 나를 ‘형제님’에서 ‘형님’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나 역시‘신부님, 저를 형님이라고 그렇게 부르시면 안 됩니다’가 최후에는 ‘김형, 알았어' 로 바뀌어 버렸다. 급기야 떡실신이 된 둘은 가라오케라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미사 시간에 ‘천주의 어린 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여’를 그레고리안 풍으로 부를 줄만 알았던 신부님이 딴따라 가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때 했으니까 말이다.

 그날의 하이라이트인 사건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말술(斗酒)을 마신 나와 신부님이었지만 내가 신부님을 성당 사제관까지 모셔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사제관7까지 바래다 드리고 집으로 걸어갈려던 참이었다. 회사에서 몰고 온 내차가 성당 마당에 놓여 있는 것이 눈이 띄었다. 10년 전 운전면허를 취득한 후 단 한 번도 음주운전을 한 적이 없을 정도의 모범 시민이었던 내게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덮쳤다. 신부님과 마셨으니 음주운전을 하더라도 당연히 하느님이 나를 보호해주실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성당에서 집까지는 불과 1km 정도의 거리였으나 취기는 나를 정상적인 인간으로 만들지 못했다. 걷지 조차 힘들 정도로 취했지만 나는 운전대를 잡고 차를 몰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보니 전날 신부님과 말술을 마신 기억이며 그 상태에서 운전까지 한 장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차를 살펴보니 문짝이 많이 찌그러지고 사이드 미러가 파손되어 있었다. 조각조각 떠오르는 기억을 조합해보니 운전하면서 뭔가 툭툭 부딪쳤다는 느낌이었는데 커브를 돌면서 전봇대를 스친 것 같았다. 

 그렇다. 신부님과 술을 마셨으니 음주운전을 하더라도 하느님이 나를 보호해주실 것이라는 만용(蠻勇)이 만든 결과였던 것이다. 곰곰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게 만취되어도 큰 사고를 내지 않고 고만고만했으니 신부님과의 술자리가 효험이 있었음은 분명하다. 만약에 음주 상태에서 내가 사고를 당해서 다치거나 구속되거나 죽게 되더라도 그것은 누구를 원망할 수 없는 자업자득이다. 그러나 죄없는 사람을 다치게 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일 이후로 음주운전을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러니까 주(主)님은 주(酒)님을 마신 나를 신부님을 통해서 보호해주셨다는 기막힌 결론을 얻게 되었다.

 지난 달, 아버님 기일(忌日)에 성당에서 추모미사를 올리게 되었다. 주보(週報)지 귀퉁이를 보니 예의 그 보좌 신부님은 오십 대의 중견 신부님이 되셔서 옆 동네 성당의 주임 신부로 부임하셨음을 알게 되었다. 그 성당은 내가 출퇴근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그때 일은 어언 20년이 가까워 오지만 신부님은 나를 기억하실지 모르겠다. 행여 신부님을 다시 뵙게 된다면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깍듯이 예의를 다하고 술은 1차만 마셔야겠다. 신부님,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1. 군종 사목, 곧 군인 신자에 대한 사목을 위하여 특별히 설정된 교회 관할 구역. 군종교구는 속인적 성격의 교구로서, 속지적 성격을 지닌 일반 교구와 구별된다. 군인 사목 총괄 담당자를 군종교구장, 군종교구 소속 신부를 군종 신부, 군종 신부를 돕는 병사를 군종병이라 하고, 각 군에서 종교 업무를 총괄하는 군종병과의 최고 지휘관을 군종감이라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군종교구 [軍宗敎區, military ordinariate, Ordinariatus militaris] (미디어 종사자를 위한 천주교 용어 자료집, 2011.11.10,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본문으로]
  2. 위수(衛戍)『군사』: 부대가 일정한 지역의 질서와 안전을 유지하려고 장기간 머무르면서 경비하는 일. [본문으로]
  3. 가톨릭 성직자가 미사 등의 전례에서 신앙의 신비와 그리스도인 생활 규범을 성경 구절로 해설하는 것을 뜻하는 말. “강론은 설교의 여러 형식 중에서 탁월한 것으로 전례의 한 부분이며 사제나 부제에게 유보된다”(교회법 제767조 1항[네이버 지식백과] 강론 [講論, homily, homilia] (미디어 종사자를 위한 천주교 용어 자료집, 2011.11.10,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본문으로]
  4. 가톨릭 신자가 교회의 관면을 받고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과 하는 혼인. 가톨릭 신자의 혼인은 신자끼리 혼인성사를 받는 ‘성사혼’이 원칙이나,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과 혼인하려는 경우 혼인 당사자들은 교회에 대한 믿음, 자녀의 세례, 부부 생활, 혼인 예식들에 관해 서약을 하고 관면을 받은 다음 혼인을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관면혼 [寬免婚, marriage with a dispensation, matrimonium cum dispensatione] (미디어 종사자를 위한 천주교 용어 자료집, 2011.11.10,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본문으로]
  5. 냉담자(冷淡者), 냉담교우 또는 쉬는 교우는 실천적이지 않는(교회에 나가지 않는) 세례를 받은 가톨릭 교도를 가리키는 가톨릭 용어이다. 냉담자라고 하여 반드시 신앙심이 부족하다는 것과 연관하지는 않는다. 천주교에서는 판공성사 즉, 1년에 두 번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고해성사를 3년(6회) 이상 보지 않은 신자를 쉬는 교우 또는 냉담자라고 한다. 즉, 냉담자는 교회의 성사나 예배에 무관심한 신자를 가리키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본문으로]
  6. 가톨릭교회의 본당(本堂)의 단위에서 주임(主任)신부를 도와 성사(聖事)를 집전하고 기타 직무를 수행하는 신부. 한국의 경우, 보통 신부 서품(敍品)을 받고 몇 년 간은 보좌신부 생활을 하게 되어 있다. 대부분 개개 본당에는 주임신부 1명과 보좌신부 1명이 배치되지만, 신자들의 수나 성당의 규모에 따라 주임신부 1명 아래 여러 명의 보좌신부가 배치되기도 하고, 지방의 작은 교회 등에는 1명의 본당 신부만이 있어 공소(公所)까지 관리하게도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보좌신부 [curate, 補佐神父] (두산백과) [본문으로]
  7. 사제가 거처하는 집. 본당 신부는 성당 곁의 가옥에 상주해야 하는데 이 집을 사제관이라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사제관 [司祭館, rectory, paroeciali] (미디어 종사자를 위한 천주교 용어 자료집, 2011.11.10,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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