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 시드니 폴락 감독의 영화 <추억>
이 영화는 시드니 폴락이 1973년에 감독하고 제작한 작품이다. 2008년 별세한 시드니 폴락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 <투씨>, <추억> 등 70, 80년대 주옥같은 작품들을 선보였던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감독이다. 40년이 넘는 영화인생에서 그는 배우, 감독, 제작자 등으로 활동하며, 로버트 레드포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워렌 비티, 폴 뉴먼, 더스틴 호프먼, 해리슨 포드, 톰 크루즈, 배리 레빈슨, 마이크 니콜스 등의 수많은 할리우드의 거물급 영화인들과 함께 대중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굵직한 작품 활동을 해왔다.
1985년에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등 5개 부문을 휩쓸었으며, 1969년 작 〈They Shoot Horses, Don’t They?〉와 1982년 작 <투씨>로 감독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그는,
2008년 5월 2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자택에서 가족들이 임종을 지켜보는 가운데 향년 73세로 사망했다. 그의 주옥같은 영화 작품 중에서 아무래도 첫손가락으로 꼽는다고 한다면 오늘 소개하는 영화 <추억>이 아닐까 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남녀가 만나서 서로 친밀해진다는 건 서로를 구속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원하는 시간에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 영화에서 남자는 처음의 모습처럼 그녀를 사랑하지 않지만 사랑은 원했다. 그러나 그가 사랑을 찾았을 때 조차 자신이 원하는 것이 뭔지, 자신이 원하는 때가 언제인지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모든 인간들은 삶의 어떤 한 시점에서 벗어나길 원한다. 하지만 진정 고민한다면 그 이유를 자신에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
이 영화의 원제는 <The way we were>이다. '우리가 있었던 길' 정도로 번역해 보자. 이 영화가 상영된 후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부른 주제곡 <The way we were> 역시 전 세계적인 히트곡이 되었다. 마빈 햄리쉬가 맡은 음악들도 영화와 무척 잘 어울리는데 전성기 때의 로버트 레드포드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연기는 그야말로 보는 이로 하여금 안광을 눈부시게 만든다. 그러면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대학 캠퍼스에서 마주친 캐티(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허블(로버트 레드포드), 한 여자는 정치 활동가이고, 한 남자는 소심한 공부벌레이다. 그 둘은 서로에게 열정적으로 이끌리나 함께 있으면 성격과 정치적 가치관 차이로 끊임없이 부딪친다. 졸업 후 캐티는 정치 활동가로, 허블은 해군 장교로 근무하다 다시 만나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함께 살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들의 달콤한 사랑은 잠시 뿐이고, 또다시 정치적인 이슈로 다투고 결국은 헤어진다. 따로 헤어져 살아가는 사이, 남자와 여자는 끊임없이 서로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리워하여 다시 함께 살게 된다. 캐티는 정치 활동을 접고, 허블은 해군 생활을 그만두고 작가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 동창 모임에서 결국 이들은 친구들 사이에 불붙은 정치적 논쟁을 피해가지 못한 채 캐티는 또다시 흥분하게 된다. 떨어져 있으면 그리운 이 두 남녀는 그러나 서로 갈 길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헤어져 각자의 길을 간다.
한참의 세월이 흐른 후, 허블은 거리에서 정치 선전 전단을 나눠주며 목청을 높이는 캐티를 발견한다. 캐티 역시 허블이 어떤 여자와 함께 가는 것을 전단을 나눠주며 바라만 본다. 이 장면은 피천득의 수필 <인연>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두 사람은 여전히 사랑하고, 그리워하지만, 함께 살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저 바라만 보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그들은 함께 한 그들의 시절을 그리워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인 견해나 성격차이가 긴 인생이라는 강물에서 볼 때는 아주 사소한 바람같은 것임을 깨달을 것이라는 암시가 영화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쓸쓸하고 서글픈 영화다.
당시에는 심각했겠지만 결국은 헤어질 필요가 없었던 인간관계, 특히 이성관계나 부부관계를 생각하면서 양보가 결국은 이기는 것이라는 동양의 미덕을 생각케 했던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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