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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귄터 그라스의 장편소설을 영상화한 독일영화 - 슐렌도르프 작. <양철북>

by 언덕에서 2011. 1. 17.

 

 

 

 

귄터 그라스의 장편소설을 영상화한 독일영화 - 슐렌도르프 작. <양철북>

 

 

 

 

귄터 그라스의 장편소설을 영상화한 독일영화로 1979년에 제작되었으며 같은 해 칸영화제 작품상 및 아카데미 최우수외국영화상을 수상했다. 영화의 구성은 원작에 충실하여 소설의 전개와 대체로 유사하다.

 

 

 

  이야기는 폴란드의 카슈비아족 농부의 딸인 아나 콜리아이체크(배역: 티나 엥겔)가 도망병을 치마폭에 숨겨 주었다가 그에게 겁탈당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 사내는 곧 뒤쫓던 군인들에 의해 사살되고 그녀는 아비 없는 자식을 잉태하여 딸 아그네스를 출산하게 된다.

 아그네스(앙겔라 빙클러)는 성장하여 사촌 얀 브론스키(다니엘 올브리크스키)와 사랑을 나누지만 그가 입대한 뒤 단치히에서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는 독일계 남자 알프레트 마체라트(마리오 아도르프)와 결혼하여 아들 오스카어를 낳는다. 오스카어가 자라는 동안에도 아그네스는 얀과의 관계를 청산하지 못하고 두 사람은 불륜을 서슴지 않는다. 이들 관계를 지켜보던 오스카어(다비드 베넨트)는 나중에 자기의 아버지가 알프레트가 아니라 얀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세 살이 된 오스카어는 우연히 장난감 가게에서 양철로 만든 작은 북을 발견하여 어머니를 졸라 손에 넣는다. 이후 양철북은 그의 곁에서 떠나지 않는데 알프레트가 강제로 그것을 빼앗으려 하면 오스카어가 악을 써 근처에 있는 모든 유리가 박살이 난다. 이처럼 오스카어가 악에 받쳐 고함을 지르면 그 소리 때문에 주위의 유리가 산산조각이 나는 일이 그 뒤에도 몇 번인가 생긴다.

 

 

 

 

 어느 날 마체라트 일가가 얀과 더불어 바닷가로 소풍을 나갔을 때 아그네스와 얀은 알프레트 몰래 서로의 몸을 더듬는데 알프레트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죽은 말의 머리를 이용하여 뱀장어를 잡는 데 열중한다. 곧 말의 시체를 보게 된 아그네스는 경악하면서 구토를 하며 얀의 부축을 받는다. 집에 돌아와 알프레트가 아그네스에게 뱀장어를 강제로 먹이려 하자 그녀는 음식 먹기를 거부하면서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세상을 떠난다.

 아그네스가 세상을 떠난 뒤 알프레트는 젊은 처녀 마리아(카타리나 탈바흐)를 가정부로 고용하고 곧 그녀와 정을 통하는 사이가 된다. 그리고 나치스 당원이 되어 집회에 나가기도 한다. 이어 폴란드를 침공한 독일이 단치히에 들어오자 우체국 직원이던 얀은 독일군에 저항하다가 체포되어 사살된다.

 세 살 이후 스스로 결심하여 성장이 멈추어 버린 오스카어는 우연히 서커스 단원이던 난쟁이와 알게 되는데 몇 년이 지난 뒤 전선 위문단의 간부가 된 그 난쟁이를 만나 그의 제의를 받고 자신도 위문단의 일원이 되어 전선을 누비다가 종전을 맞는다. 고향 단치히로 돌아온 그는 알프레트가 나치스의 동조자로 몰려 처형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리고 이제 새로이 성장을 계속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영화 속에 몰입된 관객들은 분열증 환자처럼 지껄여대는 오스카를 길잡이 삼아 독일 전체주의와 소시민 사회, 그리고 일그러진 가족의 초상 사이를 오가며 어지럼증을 경험하게 된다. 

 작품에서 카메라는 세 살에서 성장이 멈춘 오스카의 시선을 정직하게 따라, 곧잘 낮은 각도에서 앵글을 잡는다. 카드 게임이 한창인 탁자 밑에서 ‘추정상 아버지’인 남자가 자기 어머니의 치마 속을 발로 더듬는 것을 오스카는 말없이 지켜본다. 오스카는 할머니의 네 겹짜리 치마 속으로 들어가 몸을 웅크린 상태에서,옷장 속에서,  ‘추정상 아버지’가 어머니의 몸을 더듬으며 달래주는 모습을 바라본다. 관객은 오스카의 바로 옆에서 이 모든 장면을 함께 ‘봐버리는’ 공범자가 된다.

 이때 눈에 들어오는 오스카의 표정은 그로테스크함 그 자체다. 아이다운 볼살 한 점 없이 홀쭉한 얼굴에 언제나 처진 입을 앙다물고 있는 이 아이는 옅은 하늘색 눈을 뜬 채 앉아 있다. 그는 한 마디 말도 없이 모든 광경을 올려다볼 뿐이다.

어른들을 향해서는 단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않고 오직 양철북을 두드리고 비명만 지르는 오스카에게 감독은 기나긴 내레이션을 지시한다. 내레이션은 소설 ‘양철북’과 거의 흡사하다. 때문에 소설 속에서 매끈한 텍스트 위로 흐르는 북 소리와 비명을 함께 상상하는 게 쉽지 않았던 독자라면, 영화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주는 두 소리 인간의 음성과 짐승의 괴성을 보다 리얼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슐렌도르프 감독은 카메라의 앵글을 성장을 멈춘 오스카어의 작은 키에 맞춤으로써 성인의 세계를 독특한 방식으로 굴절시키고 있다. 또 말의 시체가 나오는 바닷가 장면의 초현실주의적 처리나 나치스 집회의 엄숙한 분위기가 오스카어의 북소리 때문에 행진곡이 왈츠로 바뀌면서 희화화되는 것 등 영화라는 시각언어로 원작의 효과를 더욱 극대화시킨 장면이 눈길을 끈다.

 이 영화를 계기로 작가 귄터 그라스와 원작에 대해 다시 관심이 집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