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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토마스 만 장편소설『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Buddenbrooks)』

by 언덕에서 2011. 1. 14.

 

토마스 만 장편소설『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Buddenbrooks)』

 

 

 

독일 작가 토마스 만(Thomas Mann,1875~1955)의 대하소설로 1901년 발표되었다. <어느 한 가족의 몰락(Verfall einer Familie)>이라는 부제를 붙였으며, 작가 자신의 고향인 뤼베크를 무대로 어느 상가 사람들이 걸어온 발자취를 4대에 걸쳐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소설은 만이 24살에 집필하여 26살에 발표한 작품으로, 뤼베크를 무대로 4대에 걸쳐 한 가문의 흥망성쇠를 드라마틱하게 다루고 있다. 192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26살의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원숙함을 보여주고 있다.

 초대에는 나약함을 모르는 견실한 상인, 다음 대에는 종교에 의지하는 나약한 성격으로 바뀌고, 3대째의 토마스는 예술과 사랑과 죽음에 끌리는 한편, 시민으로서는 엄격한 생활에 몸을 담아, 나약한 예능인이 된 동생 크리스찬과 대립한다. 4대째의 하노는 음악밖에 모르는 병약한 아들로서 요절하였고, 토마스의 사후 일가는 이산하게 된다.

 러시아ㆍ북유럽ㆍ프랑스의 자연주의 문학의 영향하에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바그너의 음악적 기법으로 담은 걸작으로, 작자의 개인적 체험이 독일 시민계급과 유럽 사회의 공감을 얻어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작가는 1929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독일 작가 토마스 만(Thomas Mann,1875~1955)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대 요한 부덴브로크는 그냥 넘어가고 이어 2대 요한 부덴브로크가 나오게 된다. 2대 요한 부덴브로크는 장남 토마스를 경영에 참여시키지만 차남 크리스찬의 경솔한 성격과 허영심을 지닌 딸 토니는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게 된다.

 그러다가 그륀리히라는 사람이 나타나 토니에게 청혼을 하는데 결혼하게 된다. 토니는 허영심에 부풀어올라 그륀리히를 받아들이지만 얼마안가 사기꾼임이 밝혀지고 딸을 데리고 이혼하게 되는 비운을 맞이한다. 이후 2대 요한 부덴브로크 상사가 사망하고 3대 토마스에게 오게 된다. 토마스는 회사를 잘 이끌어나가지만 둘째 크리스챤은 방탕한 생활을 한다. 토니의 딸 클라라는 성장하여 목사 티부르치우스와 결혼하나 뇌막염으로 얼마안가 사망한다.

 토마스는 게르다와 결혼하게 되고 토니는 다시 재혼하게 되지만 이 결혼생활 역시 실패하게 됩니다. 이후 토마스와 게르다 사이에서는 병약한 하노가 태어난다. 토마스는 시의원이 되는등 성장을 하지만 많은 손해를 입고 악화일로를 겪으며 사망하게 된다. 결국 회사는 청산되고 하노 또한 14살에 티푸스로 죽으며 부덴브로크가의 대가 끊기게 된다

 

 

 어느 신문에서 <김일성 - 김정일 -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 정권의 말로를 <부르덴부르크가>의 말로에 비유한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맑스의 이념과는 상이하게 국민을 굶주리게 하고 피폐해져가는 집단을 아카데미칼하게 비유한 것으로 여겨진다.  염상섭의 '삼대'와 비교분석되는 이 책은 19세기 독일 시민 사회의 전형적인 연대기를 그리고 있다. 한 도시 귀족적인 상인가문의 몰락과정이라고 말한다면 좀 슬프지만 그것이 바로 앞서말한 비판적 리얼리즘이며 저번에 흐르는 데카당스한 분위기 묘사가 토마스 만의 특징이다.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은 <어떤 가족의 몰락>이라는 부제를 붙여서 상권 560 페이지, 하권 539 페이지로 출판되었다. 이 책의 내용인즉, 부제 그대로 어떤 가족의 몰락을 묘사한 것인데, 그 가족이 바로 작자 토마스 만의 가족이다. 시민적 삶과 예술가적 삶의 이원성은 만이 주로 다루는 주제의 하나이다. 이 작품에서도 시민성과 예술성은 첨예하게 대립을 이루고 있다. 작가에게 예술가적 의식은 시민의식과 대립되는 것이다. 건강한 시민의식을 소유하여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요한 부덴브로크(1대), 그를 잇는 인물 장 부덴브로크(2대)가 시민 세계를 대변하는 인물이라면 이들을 통해 성숙한 시민의식은 토마스(3대)에 이르면 혼란을 맞이하게 되고 하노(4대)에 이르면 파멸을 맞게 된다. 토마스와 하노를 통해 누대에 축적된 시민적 질서는 마감되고 가문이 몰락해 가는 것이다.

 

 

 토마스 만은 세상을 비웃는 투의 사고방식이 짙은 데가 있었다. 그러나 비록 세상을 일장의 희극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결코 진지함을 잃지는 않았다. 인간의 운명이 아무리 기구하다 할지라도 인간은 서로 사랑하고 서로 협력함으로써 최선의 길로 나갈 수 있고, 그리하여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 나아진다는 것이다. 그의 일생 중 거의 반세기에 가까운 문학생활에서, 끝내는 정치적인 이념 때문에 조국을 등지고 망명하면서도 언제나 조국애를 부르짖었다. 그는 조국을 향해서 말했다.

 “사람이 독일인으로 출생하였다면, 독일의 운명과 독일의 부채를 지고 일을 해야 한다, 조국을 비판적으로 멀리한다는 것은 불충이라고 악평을 받아야 한다. 자기 민족에게 진리를 말하고자 할진데 그 진리는 오직 자기 시련에서 우러나오는 산물이어야 한다.”

 이렇게 열렬한 조국애를 부르짖은 토마스 만은 나치 독일과 대결, 1938년 드디어 미국으로 건너가 1944년에는 미국 시민권을 얻었으나, 1955년 8월 12일 스위스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