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되블린 장편소설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Berlin Alexanderplatz)』
독일 소설가ㆍ정신과 의사 알프레드 되블린(Alfred Doblin.1878-1957)의 장편소설로 1929년 발표되었다. 되블린은 슈테틴 출생으로 직업의사로서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의 노동자 지역에서 정신병원을 개업했고, 1933~1945년에 프랑스와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했다. 그의 기법과 문체는 다양하지만, 파멸로 치닫는 문명의 공허를 폭로하려는 노력과 고통받는 인류에게 구원의 수단을 제시하려는 거의 종교적인 노력이 꾸준한 2가지 관심사였다.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은 1929년 출간 당시부터 독일 문학의 역작으로 호평을 받았다. 되블린은 현실적인 문체로 표현주의와 신화적 요소까지 기민하게 결합시켜, 광기와 무정부주의로 들끓어 혼란의 중심에 서있던 1920년대 말의 수도 베를린의 정수를 담아냈다. 이 소설에서 베를린은 당혹감에 휩싸인 군중이 운집하던 도시, 실업자들과 굶주린 빈민들, 위선적인 하류층 서민들의 도시이다. 불과 몇 년 후 파시즘이 국가권력을 쥐게 될 베를린은 멸망 직전의 소돔을 닮아 있다. 익명의 군중에 불과했으나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이라는 무대의 중심으로 내동댕이쳐진 ‘소시민’ 프란츠 비버코프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그는 선한 천성을 가졌으나 전형적인 기회주의자로, 그를 배신하고 가혹한 환멸만을 선사할 악마 같은 친구들에게 영원히 헌신한다. ‘신념을 가지고 우정에 헌신하는 자에게 내리는 저주’라는 주제는 이 소설을 관통하는 주요 모티브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화물 운송 노동자였던 프란츠 비버코프는 자신의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수년간 중노동 형을 복역하고, 이제 막 출옥했다. 그는 이제부터는 바르게 살겠다며 자기 자신에게 다짐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순진함과 어리석음 때문에 대도시의 왁자지껄한 혼란에 휩쓸리게 된다. 갱단과 창녀들의 무대인 지저분한 나이트 클럽들, 도살장과 유곽과 신문팔이의 고함소리가 뒤엉키는 미로 같은 도시의 심장부를 전전하게된다. 그러다 그는 라인홀트라는 이름의 범죄자를 만나게 된다. 프란츠는 사악한 악인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맡겼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곧 그에게 맹목적으로 헌신하게 된다.
프란츠는 그의 선하게 살려는 결심에도 불구하고 범죄에 가담하게 되고, 라인홀트 때문에 목숨을 잃을 뻔 한다. 그러나 그는 이런 불행에 굴복하지 않고, 한 팔을 잃은 채 모든걸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프란츠의 여자 친구 미체는, 그를 극진하게 대해주는데, 그녀는 창녀로서 거리에서 몸을 팔아 프란츠를 부양한다. 미체는 곧 프란츠의 삶의 중심이 된다. 그러나 이때 친구라 자칭하는 라인홀트가 이 모든 것을 파괴하는데, 미체를 유인한 후 프란츠가 삶을 이어가는 단 하나의 이유였던 미체를 살해한다. 프란츠는 이제 정말로 파멸한 것이다. 프란츠는 정신병원에 갇힌 신세이다. 불과 얼마 전에 양심적으로 바르게 살리라 마음먹었는데 모든 게 무위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니까 그가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 약속을 지키겠는가? 그는 이제 자신의 삶을 영위할 필요가 없다, 그는 이제 단지 꿈을 꾼다. 그러나 그의 꿈속에서 발견하는 장면들은 프란츠를 괴롭힐 뿐이다.
그는 오만하고, 무지하며, 무례하고 동시에 겁쟁이고 약해빠진 한 남자를 만난다. 프란츠의 완고함과 무지함이 모든 일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무엇이 프란츠 자신을 죄인으로 만들었는지 그는 고뇌한다. 그 결과로 프란츠의 오랜 삶의 끝에 새로운 프란츠가 탄생한다. 철저히 파괴되었지만, 이제야 진정으로 삶을 살 준비가 된 프린츠 말인 것이다.
첫 성공작 <왕룬의 3단 도약>(1915)에서는 국가권력에 짓밟힌 떠돌이 혁명가 왕룬을 통해 비폭력적인 정신이 야만적인 폭력을 이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단순한 권력이 국가의 붕괴를 초래하게 된다는 이 주제는 역사소설 <발렌슈타인(Wallenstein)>(1920)에서 변형, 발전된 것이다. 소설 <산과 바다와 거인>(1924)은 1932년 <거인>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되었는데, 여기에서 그는 자연이 과학을 통해 자연계를 무참히 짓밟은 인간에게 복수한다는, 인간 미래의 묵시록적인 비전을 가차없는 풍자로 펼쳐보이고 있다.
그는 가장 표현주의적이고 가장 잘 알려진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1929)에서, 구어체와 베를린의 속어로 된 내적 독백과 카메라 기법을 조화시켜, 붕괴되어가는 세계에 처한 인간상황을 설득력 있게 극화했다. 이 작품은 레마르크 이래의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그밖에도 독일 초현실주의의 후기 걸작으로 인정받은 소설인 <바빌로니아 방랑기>(1934)와 <냉혹한 인간>(1935) 등을 썼다.
♣
이 소설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이 독일 현대 문학에 한 이정표를 세운 작품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이러한 문학사적 관점 외에도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가지는 역사적 상징성을 온전히 글로 형상화해 내었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프란츠 비버코르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소설은 한 남자의 비극적 일생을 담은 개인적 기록이자 당대 베를린에 대한 가장 사실적인 기념비이기도 하다. 1927년 가을부터 1929년 이른 봄까지의 여러 사회적인 이슈와 사건들, 신문기사, 유행가 가사, 각종 광고문 등이 직접 소설에 등장하고, 바로 이 기간 동안에 벌어진 주인공의 행적이 작품의 핵심줄거리를 이룬다. 이는 또한 작품의 집필 기간과도 일치한다.
즉, 작가가 작품을 쓰던 실제 시간과 공간이 고스란히 소설 속에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 1920년대 말, 1차대전이 끔찍한 상흔을 남기고 바야흐로 히틀러의 나치 정당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 격동의 베를린을 무대로 삼은 되블린의 놀라운 작가적 감각이 더해져, 그야 말로 베를린이 사라지기 전에는 결코 잊혀지지 않을 불멸의 고전이 탄생한 것이다. 20세기 불멸의 원작인 이 소설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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