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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폴 하딩 장편소설 『팅커스(Tinkers)』

by 언덕에서 2010. 12. 24.

 

폴 하딩 장편소설 『팅커스(Tinkers)』

 

 

미국 소설가 폴 하딩(Paul Harding, 1967 ~ )의 장편소설로 2009년 발표되었다. 폴 하딩은 1967년 태어나 미국 매사추세츠 주 웬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음악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그는 1990년, Cold Water Flat라는 밴드를 만들어 드러머로 활동했다. 공연을 위해 미국 각지와 유럽을 방문하던 중,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테라 노스트라Terra Nostra』를 읽고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 후 음악을 그만두고 글쓰기 공부를 시작해 첫 소설인 『팅커스』를 발표했다. 그러니까 대형 출판사로부터 작품성을 무시당해 출판을 거절 당하다 겨우 뉴욕의 한 작은 출판사에서 출간된 전직 드러머인 무명작가의 데뷔작인 이 소설은 출간 즉시 화제를 모으다 결국 2010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은 목사였던 할아버지, 땜장이이자 행상인이었던 아버지, 그리고 시계 수리공이었던 아들, 이 삼대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폴 하딩은 이 작품으로 역대 퓰리처상 수상작 중 단기간 최고 판매 부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섬세하고 매혹적인 문장과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 그리고 아버지와 가족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미국 소설가 폴 하딩( Paul Harding, 1967 ~ )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시계를 수리하며 가족을 부양해온 조지 워싱턴 크로스비는 여든을 넘긴 나이에 암에 걸리게 된다. 죽음을 앞둔 그를 가족과 자식들이 임종을 맞기 위해 찾아온다. 조지는 드디어 죽음을 맞이하기까지의 8일간, 병상에 누운 채 환영에 시달린다. 자식과 손자조차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그의 의식은 점점 과거로 되돌아간다. 혼수상태인 그의 의식은 어릴 때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던 아버지 하워드의 기억을 만난다. 조지의 의식은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했던 어린 시절과 죽음의 고통에 시달리는 현재를 오간다. 조지의 회상 속에서 아버지 하워드 역시 자신의 아버지를 추억한다. 작가는 삼대에 걸친 이야기를 통해 사라지지 않는 삼대의 흔적을 그려내었다.

 주인공 조지의 아버지 하워드는 늘 서랍이 잔뜩 달린 마차에 비누나 가위나 기름 같은 생필품들을 싣고 떠돌아다니며 행상을 한다. 그러니까 떠돌이 방물장사 행상이다. 그는 비록 벌이는 신통치 않았지만, 외로운 사람들의 말벗이 되어주고 마을 사람들의 곤란할 일을 도와주는 등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계속해서 조지의 의식은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했던 어린 시절과 죽음의 고통에 시달리는 현재를 오고간다. 아버지 하워드는 많은 돈을 가져다주지도 않고 자주 집을 비웠다. 그러나 다정하고 사려 깊던 아버지와 그 빈자리를 대신하기라도 하듯 엄격하고 강인했던 어머니 사이에서 조지와 동생들은 가난하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들 가족의 유일한 근심은 아버지 하워드가 앓고 있는 간질병이었다. 하워드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간질 발작을 일으켰지만, 아내의 빠른 대응으로 자식들에게 그 사실을 들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 크리스마스 날, 조지는 처음으로 발작을 일으킨 아버지의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자식들이 보고 있다는 사실에 당황한 어머니는 평소처럼 대응하지 못하고, 조지는 경련을 일으키는 아버지에게 손가락을 물려 큰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다음 날, 늘 강한 모습만 보여주던 어머니가 처음으로 눈물을 보이며 정신병원 안내서를 들고 온다. 의사와 상의한 그녀는 자식들의 장래를 위해 남편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하워드는 아내가 일부러 책상 위에 올려놓은 정신병원 안내서를 보고, 그길로 집을 나가 필라델피아로 떠난다.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 당하느니 자유스런 떠돌이 생활을 하다 죽기로 결심한 것이다. 하워드는 집을 떠나며 어린 시절 역시 정신병원에 끌려갔던 목사 아버지를 떠올린다. 조지 역시 갑자기 정신병원 행을 피해 사라진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성장하게 된다.

 

 

  이 소설『팅커스(땜장이)』는 대를 이어 펼쳐지는 크로스비 家 세 남자의 삶과 죽음에 관한 평범한 이야기다. 장대한 서사시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거창한 사건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나 코끝을 찡하게 하는 감동이 펼쳐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애틋하고 아련한 어떤 감정을 자극한다. 그저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라는 이유만으로 가슴 한구석을 아련하게 만드는 어떤 그리움, 바로 그것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작가는 처음 소설을 쓰는 신인답지 않게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아름다운 문장을 선보이며,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아련한 그리움을 아름답게 노래한다. 

 이 책의 ‘옥의 티’는 번역상의 아쉬움이 아닐까 한다. 문장이 너무 길고 난해함은 물론 독자는 원문의 호흡을 맞추기 쉽지 않다. 예를 들어보자.

Her husband's death made her cry like a baby.

 위의 문장을 2가지로 번역할 수 있다.

 1. 남편의 죽음은 그녀를 아기처럼 울게 만들었다.

 2. 남편이 죽자 그녀는 아기처럼 울었다. (또는 남편이 죽자 그녀는 서럽디 서럽게 울었다)

→ 1, 2 중에 어느 것이 읽기 쉬운 번역문일까? 물론 2번이다. 1번의 번역은 가장 딱딱하고 지루한 표현이다. 간단명료하지 못한 구조의 미국식 문장들이 소설을 읽는 내내 지루하게 만드는 점이 없지 않다. 또 하나, 19세기 중반의 미국 시골을 묘사하는 단어들 역시 생소한 것이 많아 백과사전을 옆에 끼고 읽어야만이 제대로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점도 아쉽다. 

 

 

 그러나 아버지의 간질과 완전한 발작을 일으키기 직전 그를 감아돌던 화학 전기의 차가운 후광을 묘사하는 장면은 숨이 막히도록 아름답다. 그 문장 이후 조지가 점점 더 우울한 장면으로 들어설 때 집안의 슬픔이 그의 독백 속으로 스며드는 묘사도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나다. 하지만 이 소설의 진정한 백미는 시계 장치의 작동원리를 묘사하는 부분, 자연의 감각적 이미지를 그려내는 부분, 혹은 이 책을 인기있게 만드는 다양한 주변 인물들을 묘사하는 부분, 심지어 새둥지 짓는 법을 설명하는 짧은 문단에서조차 눈부시게 빛나는 하딩의 언어들이다. 이 작품은 소설가의 장인 정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아름다운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