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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천방지축(추)마골피는 천(賤)한 성씨(姓氏)인가 ?

by 언덕에서 2022. 9. 4.

 

 

천방지축(추)마골피는 천(賤)한 성씨(姓氏)인가? 

 

 

1682년 목판본으로 간행된 파평윤씨 족보.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어릴 적 어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다. 우리 집안은 잉어를 먹지 않는 파평 윤 씨(坡平尹氏)이며, 조선시대 때 왕비(정비)를 네 명이나 배출한 양반 중의 양반이라는 것이다. 21세기 이 시점에 '양반상놈' 따지고 가문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 자체가 아이러니겠지만 한 때 '맞선 볼 때' 성씨를 물으며 본관이 어디냐고 따지던 때가 있었다. 양반 가문 운운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러면 상놈 집안은 어느 성씨예요?”라고 물었는데 되돌아오는 답은 ‘천방지추마골피'라는 성씨였다. 혹자는 ‘추 씨’ 대신 ‘축씨’를 넣어 ‘천방지축마골피’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중 천 씨는 ‘일천 천(千)’자를 쓰는 성씨는 양반이고, ‘하늘 천(天) 자’를 쓰는 성씨는 상놈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천계(賤系)를 대표한다는 이들 7개 성씨에 대한 고정관념은 대표적으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상식이다. ‘축씨’와 ‘골씨’는 최근 인구조사 때의 275개 성씨 중에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1. 천(天)씨 : ‘하늘 천(天)’자를 쓰는 성씨는 밀양 등 다섯 개의 본관에 1천 300여명이 있는데, 조선 정조 때 진사시에 합격한 천명익이란 인물이 있다는 점에서 천계라는 사실은 근거가 없다.

 

2. 방(方)씨 : 방씨도 대표 격인 온양 방 씨(溫陽方氏)의 경우 방운이 온수군에 봉해짐에 따라 온양을 본관으로 삼은 것이고, 남양방 씨(南陽方氏)는 고려 때 벽상공신 삼중대광보국을 역임한 방계홍을 1세 조상으로 하고 있으니 천계라는 것은 근거가 없다.

<아동문학가 소파 방정환>


3. (): 지 씨의 대표 격인 충주 지 씨(忠州池氏)는 시조 지경(池鏡)의 후손 지용수(池龍壽)가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을 물리친 공으로 1등 공신에 책록 된 인물이며, 조선시대 때는 문과급제자 열 명을 배출했으며, 일본 육사 출신의 독립군 장군 지청천(池靑天:일명 李靑天)도 있다. 이 역시 천계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독립운동가 지청천>

 

4. () : 추 씨의 대표 격인 추계 추 씨(秋溪秋氏)는 송() 나라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한 추엽(秋輅)이다. 그는 고려 인종 때 가솔을 이끌고 함흥 연화도에 정착하여 한국 추()씨의 시조가 되었다. 추엽의 아들 추황(秋簧)이 고려 희종 때 성균시험에 장원한 후 예문관 대제학등을 지냈으며, 추황의 아들 추적(秋適)은 문장에 뛰어났고, 민부 상서, 예문관대제학등을 역임했다. 추 씨의 경우에도 천계라는 말은 근거가 없다.

<연극배우 고 추송웅 : 배우이자 영화감독인 추상미 씨의 부친이다>

 

4-1. 축(丑, 軸) 씨 : 존재하지 않는 성씨다.

 

5. 마(馬) 씨 : 마 씨는 문헌상으로는 목천(木川)·장흥(長興)·개성·하음·수원 등 33본이 전한다. 마 씨는 우리나라 토착 성씨로, 삼한시대 마한의 첫 임금인 마 겸(馬謙)이 원조(遠祖)이다. 마 씨는 마 겸 이후 세계(世系)를 잃어버려 온조(溫祚)를 따라 남으로 내려와 한강변에 백제를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한 여(黎)를 시조로 삼고 있다. 그러나 또다시 계보가 끊겨 나당연합군에 항전하며 백제 부흥운동을 일으킨 육침(陸沈)을 중시조로 받들고 있다. 천계라는 말은 근거가 없다.

 

<아동문학가 고 마해송, 마종기 시인의 부친이다>

 

6. 골(骨) 씨 : 존재하지 않는 성씨이다.

 

7. 피(皮) 씨 : 피 씨의 대표격으로 전하는 본으로는 홍천(洪川)·단양(丹陽)·괴산(槐山) 등이 있다. 피 씨는 중국 주(周) 나라 때의 경사(卿士)인 번중피(樊仲皮)의 '皮'자를 따서 성으로 삼았다고 한다. 홍천 피 씨의 시조인 피위종(皮謂宗)은 송(宋) 나라 금오위상장(金吾衛上將)으로 고려 정종 때 안렴사(按廉使)로 왔다가 귀화하여 병부시랑(兵部侍郞)을 지냈다고 한다. 그의 후손 인선(寅善)이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지내고 홍천군(洪川君)에 봉해지자 그의 후손들이 홍천을 관향으로 삼았다. 단양 피 씨의 시조인 피인고(皮寅古)는 피위종의 후손으로 고려 때 평장사(平章事)를 지내고 단산군(丹山君 : 단산은 단양의 옛 이름)에 봉해짐으로써 단산으로 관적 했다.

 

 

<영문학자, 시인, 수필가 금아 피천득>

 

 

 수필가 고 피천득 선생은 수필 피가지변(皮哥之辯)’에서 피씨가 상당한 양반이 아닐 수 없다고 하며 몇 가지 근거를 들었다피천득은 수필집 <인연>에 담긴 '피가지변'이라는 제목의 수필에서, '(전략그런데 희성(稀姓)이기는 하지만 어찌하여 역사에 남은 이름이 그다지도 없었던가라고 자문하면서 알아보니 피씨의 직업은 대개가 의원(醫員)이요그중에는 시의(侍醫)도 있었다는 것이다그런데 어전(御前)까지 가까이 들어가려면 적어도 당상 정삼품은 되어야 하니 피주부(主簿)에게 옥관자가 허락되었다'라고 적고 있다.

 족보는 중국 후한 시대 왕실의 계보를 기록한 것이 그 시조로 여겨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족보를 편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족보는 중국에서 먼저 시작했지만 현재 중국에서 족보를 갖고 있는 집안이 극히 드문 반면 우리나라는 족보 왕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족보 편찬이 활발하며 현대에 와서도 가문의 권위를 주장하는 경향이 강하다.  흔히들 상놈 집안(賤系)의 전형으로 알고 있는 ‘천방지추(축)마골피’의 근거는 전혀 없다.

 장삼이사가 추측하는 '‘천방지추(축)마골피’가 천계'라는 통설은 호사가들이 악의적으로 만든 내용이 아무런 검증 없이 무차별적으로 사용되어 그 성씨를 가진 많은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 경우이다.

 

 

 

 

* 참고 : 이덕일. 김병기 공저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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