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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을 읽다

고대소설 『전우치전(田禹治傳)』

by 언덕에서 2010. 1. 26.

 

 

고대소설 전우치전(田禹治傳)

 

 

 

 

 

작자ㆍ연대 미상의 조선시대 고대소설로 1책 국문본이다. 이본으로는 <전운치전(全雲致傳)>으로 되어 있는 서울대학교 도서관 일사문고 필사본(43장)ㆍ경판본 1(17장)ㆍ경판본 2(22장), <전운치전(全雲致傳)>으로 되어 있는 1914년 신문관 발행 활자본(62면), 단국대학교 율곡도서관 나손문고 필사본(31장)이 있다.

 이들을 비교해 보면 세 가지 계통으로 되어 있다. 일사문고본ㆍ경판 17장본ㆍ경판 22장본이 같은 계통으로, 경판본 둘은 일사문고본의 축약에 해당한다. 신문관본은 후대에 출간되었으나 선행본이 있었으리라고 짐작되고, 오히려 일사문고 계통보다 고형으로 보인다. 김동욱본은 다음의 간단한 줄거리에서 드러나듯 위의 두 계열과는 전혀 다른 계통이다.

 <홍길동전>을 모방하고, 선조 때의 실재인물인 전우치를 주인공으로 한 일종의 도술소설이다.

 주인공 전우치에 관한 기록은 조선시대의 역사서인 <조야집요>를 비롯하여 <대동야승><어우야담><지봉유설> 등 여러 문헌에 나타난다. 이 소설에서 전우치는 도사를 만나 선도를 배워 탐관오리들을 괴롭히고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데 신통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민생고를 고발하는 등 사회의식이 작품의 밑바탕에 깔려 있으나, 황당무계한 환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등 공상성이 짙고, 문장이 서툴며, 시대적인 통일성을 보여주지 못하는 결점도 지니고 있다.

 

영화 <전우치> , 2009 제작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개성에 사는 전우치는 신기한 도술을 얻고 숨어 살았는데, 해적의 약탈과 흉년으로 백성들이 비참한 지경에 이르자 천상선관(天上仙官)으로 변신하여 왕에게 나타난다. 옥황상제의 명령이라면서 황금들보를 만들게 하고, 그 들보를 외국에 팔아 산 쌀 수만 섬으로 백성들을 구휼한다. 사실을 알게 된 임금이 크게 노하여 전우치를 잡아다가 국문한다.

 이에 전우치는 도술로 맞서다가 왕에게,

 "나의 죄를 다스릴 정신으로 백성을 다스리라"

고 충고하여 풀려난다. 그 뒤 도술로써 선행을 베풀며 전국을 돌아다니고 도적의 무리를 다스리는 등 공을 세운다. 이를 시기한 간신이 역적의 누명을 씌워 처형당하게 되자 전우치는 마지막 소원이라며 그림 1장을 그리게 해달라고 한다. 왕이 이를 허락하자 산수화 속에 나귀 1마리를 그리더니 나귀를 타고 그림 속으로 사라진다. 그뒤 전우치는 자신을 모해한 자를 도술로 골려주고 장난을 치며 돌아다닌다.

 과부를 짝사랑해 상사병이 든 친구를 위해 그 과부를 구름에 태워오다가 강림도령에게 질책을 당한다. 그뒤 화담 서경덕의 도학이 높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가 화담의 도술에 굴복하고 제자가 되어 태백산에 들어가 도를 닦았다고 한다.

 

 

영화 <전우치> , 2009 제작

 

 

 

 전우치는 실제 인물이었으며, 중종 때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여러 문헌에 전하는 내용을 종합하면, 도술을 익히고 시를 잘 지었으며 나라에 반역을 꾀했다가 수명을 다 누리지 못하고 죽었다. 문헌에 전하는 전설에서는 전우치가 도술을 부렸다는 것과 함께 죽은 뒤에 다시 나타났다는 것을 기본적인 내용으로 삼고 있다.

 <전우치전>은 이러한 전설을 토대로 이루어진 것인데, 전설과는 달리 전우치가 나라에 반역죄를 지어 잡아죽이려고 했으나 도술로 탈출했다 한다. 특히, 일사문고본 계통에서는 전우치가 도술을 익히게 된 경위를 덧보태고 있고, 김동욱본은 <전우치전>과 <홍길동전>을 합쳐 놓은 것 같다.

 일사문고본은 전우치가 천상 선동으로 속계에 내려왔는데, 어려서 여우 입 속에 들어 있는 구슬을 먹고, 다시 구미호에게서 천서(天書)를 빼앗아 도술을 익히게 되었다고 하는 내용이 서두에 더 있다. 그 밖의 내용은 대체로 같은데, 도술이 기이하다는 데 관심을 갖게 한다.

 김동욱본에서는 전생에 손오공이었던 전우치가 강릉 지방 관노의 아들로 태어나 자기 가문의 지위를 높이는 한편, 중국에 가서 활인동 도적의 두목이 되어 중국 천자가 조선을 업신여길 수 없도록 하고, 마침내 연나라 임금이 된다. <전우치전>은 실제 인물의 내력이 전설을 거쳐 소설화된 좋은 예다.

 

 

 조선 왕조의 지배 질서에 반역하는 영웅의 모습을 그려서 주목된다. 전우치가 천상 선관으로 가장해 임금으로 하여금 황금 들보를 바치도록 하는 대목은, 어느 이본에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사건으로 왕조의 권위를 비판하고 있다. 이 때 도술은 사회적인 규제와 규범을 쉽사리 어기며 가치를 역전시키는 방법이다.

 이 작품은 조선시대에 실재하였던 전우치라는 인물의 소재로 하여 쓴 소설이지만, 그 내용이 매우 비현실적이며, 황당무계하다. 이는 소전 소설의 일반적 성격이기도 하지만 당시의 부패한 정치와 당쟁을 풍자하고 그것을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그러한 흥미 본위의 표현 방식을 필요로 했다.

 다분히 사회 혁명 사상을 고취하려고 기도한 점 등에서 <홍길동전>과 매우 유사하며, <홍길동전>과 더불어 도술을 소재로 한 작품의 대표작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