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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을 읽다

다산 정약용 시집 『다산시선』

by 언덕에서 2010. 5. 19.

 

 

다산 정약용 시집 『다산시선』

 

 

 

 

 

일표이서(『경세유표』『목민심서』『흠흠신서』)로 알려진 주요저서 외에도 다산 정약용(1762(영조 38)~1836(헌종 2))이 남긴 시의 규모는 방대하다. 2500여수에 달하는 다산의 시에는 그의 사상과 생애의 갖가지 곡절이 마치 일기처럼 펼쳐져 있다. 특히「국자직강에 제수되어」「탄핵을 당하고」「회혼일에」 등은 특정 시기 다산의 심적 갈등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익히 알고 있는 사회시와 애민시뿐만이 아니라, 우화시, 자연풍광을 노래한 시, 가족에 대한 시 등을 폭넓게 담겨 있어 다산의 전모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다산시선』은 다산의 생애를 따라 크게 수학시절(1762~89), 벼슬살이 시절(1789~1800), 유배시절(1801~18), 유배 이후 시절(1818~36)로 나눠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경양지를 지나며’는 지방관으로 나가 있던 부친과 지내던 어린 시절부터 진사가 되기 전까지인 수학기의 작품들이다. 그중 「경양지를 지나며」는 과거를 보기 위해 서울로 가는 길에 지은 시로, 이때 그의 나이는 18세였다. ‘제2부 굶주리는 백성들’은 중앙관리, 지방관, 암행어사 등의 벼슬살이를 하던 시절에 보고 들은 조선시대의 현실을 다산 특유의 사실적인 필치로 그려낸 시편들이다. 18년간의 유배시절 모습은 ‘제3부 수심에 싸여’에 담았다. 이 시기 시편들에는 기나긴 유배생활의 쓸쓸함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잔뜩 배어 있어 다산의 진솔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해배(解配)되어 고향인 경기도 마현에 머물던 시절의 작품들은 ‘제4부 농가의 여름’으로 묶었다. 1811년부터 1826년까지 16년 동안에 쓴 시가 남아 있지 않아 작품 수는 많지 않지만, 편안한 여생을 보내야 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당대 현실을 비판하고(「가마꾼」), 조선의 시를 쓰라고 지식인 사회에 외치는(「노인의 즐거움」) 등 여전히 날카로운 다산의 문제의식이 살아 있다.

 

 

 

 

 

 

 이 책에 실린 시편들은 다산시 특유의 사실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다산은 자신이 살던 사회를 “조그마한 것도 병들지 않은 것이 없는” 사회로 판단하고, 조선 후기 사회의 병폐를 구석구석 파헤친다. 대다수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대표적으로 「적성촌에서」「애절양」「전간기사」「용산촌의 아전」 같은 작품에서 삼정(三政)의 문란과 이를 둘러싼 관리들의 횡포, 봉건적 신분제도와 지배층의 분열 양상을 여지없이 고발한다. 「여름날 술을 마시며」에서는 ‘귀족의 자제들은 어떻게 놀면서도 출세하는가’ ‘왜 서민의 자제들은 재주가 뛰어나도 출세할 수 없는가’ 하는 문제를 직접적으로 건드리는데, 오늘날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당대 현실을 확인할 수 있다. 다산시가 20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깊은 울림을 주며 읽힐 수 있는 이유는 ‘정확하게 관찰하고’, 그것을 ‘정확하게 그려야 한다’는 다산의 창작정신에서 비롯된다. 특히 개인의 정서 속에 개인을 넘어선 더 큰 집단적 정서가 녹아 있는 사회시, 폐쇄적이고 고립적인 자아에 갇히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병든 사회를 아파한 다산이 남긴 애민시에는 자신이 살던 시대의 모순을 치열하게 고민한 지식인의 아픔이 깊이 배어 있다.

 

♣ 

 

『다산시선』에서는 다산의 사회시와 애민시뿐만 아니라 독보적인 경지에 이른 다산의 우화시(寓話詩)와 자연시(自然詩)를 접할 수 있다. 명확한 주제의식, 고도의 지적 통제, 그리고 세련된 형상화를 이뤄낸 다산의 작품을 통해 시인으로서의 그의 능력이 경세가(經世家)로서의 능력 못지않게 탁월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산의 우화시는 강자와 약자의 대립을 주제로 한 것들이 많은데, 이는 봉건 지배층과 일반 백성과의 대립을 말하기 위한 알레고리로 생각해볼 수 있다. 백로를 유혹하는 오징어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인 「오징어」를 통해 무능한 선비를 질타하고, 쥐를 잡아야 할 고양이가 쥐와 야합해 남산골 늙은이를 괴롭히는 상황을 묘사한 「고양이」를 통해 아전과 도둑이 한통속이 되어 백성들을 괴롭혔던 당대의 실태를 고발한다. 「솔피」 같은 작품은 강자와 약자의 대립뿐만 아니라 강자와 강자의 대립을 그리고 있는데, 고래를 왕으로 솔피를 당시의 세도집단으로 상징화해 이권을 놓고 벌어지는 지배세력끼리의 암투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

 우리나라 한시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자연시에서도 다산은 색다른 면모를 선보인다. 종래의 시들이 자연을 아름다운 이상향으로 그리고 있다면, 다산은 생존을 위한 치열한 투쟁이 일어나는 현장으로 바라본다. 「우화정에 올라」「서호의 부전(浮田)」 같은 시에서 아름다운 경치뿐만 아니라 가난한 촌민들의 수심과 탄식을 함께 담아내고 있다. 그 외에도 다산은 우수한 소품들을 많이 남겼는데, 「어린 딸을 생각하며」같이 유배지에서 고향의 가족을 그리며 지은 시는 읽는이의 심금을 울린다. 다산은 비록 기교에 능한 시인은 아니었지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꾸밈없는 진실성 때문에 독자를 감동시킨다.

 『다산시선』은 다산의 사상과 생애의 갖가지 곡절을 마치 일기처럼 읽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다산의 내면과 시대의 모순을 복합적으로 살펴보게 하는 시집이자, 시인 다산의 문학적 성과를 집대성한 필독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