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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을 읽다

존 버니언 장편소설 『천로역정(天路歷程.The Pilgrim's Progress)』

by 언덕에서 2009. 10. 29.

 

 

 

 

존 버니언 장편소설 『천로역정(天路歷程.The Pilgrim's Progress)』

 

 

 

영국 종교작가 존 버니언(John Bunyan.1628∼1688)의 종교적 우의소설로 제1부는 작자가 12년간의 감옥생활을 하고 나서 1675년에 다시 투옥되었을 때 집필하여, 1678년에 출판되었고, 제2부는 1684년에 출판되었다. 작자의 꿈 이야기를 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복음 전도자의 경고를 받은 크리스천이 파멸의 도시에서 몸을 피해 천상의 도시를 찾아가는데, 도중에 믿음, 소망, 절망 등의 인물들을 만나고, 절망의 구렁텅이, 죽음의 계곡, 허영의 시장 등을 지나는 과정을 이야기함으로써 기독교적 구원의 교리를 알레고리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이 쓰고 있는 관념적 알레고리 기법이란, 작중 인물들이 추상적 개념을 나타내고, 플롯은 어떤 학설이나 명제를 전달하도록 하는 것이다. 즉, 미덕, 악덕, 정신 상태, 인물의 유형 등을 작중 인물의 이름을 통해 그대로 지시하는 방법이다. 

 이 책이 국경을 초월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애독하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실화가 있다. 어느 선교사가 아프리카의 어느 지방에서 토인의 등에 업혀서 늪을 건너고 있을 때 그 토인이 실족해서 흙탕 속에 거꾸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다른 토인이,   

“가엾게도 마치 낙담의 늪 속을 더듬는 크리스천 장면이구만요."라고 말했다. 알기 쉽게 말하면, 선교사를 업고 가던 토인이 실족하는 데서 빚어진 장면이 「천로역정 속에 있는 크리스천의 모습과 같았기 때문이다. 「천로역정은 그만큼 어느 곳에서나, 어떤 사람들에게나 알려진 책이라고 하는 증거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거친 광야를 헤매던 주인공 크리스천은 어느 동굴을 발견하고는 그 속에서 잠을 잔다. 자면서 꿈을 꾸었는데, 꿈에 한 허름한 옷차림의 사내가 자신의 집을 등지고 손에는 한 권의 책을, 등에는 큰 짐을 지고 서 있다. 꿈 속에서 사내는 책을 펴 읽으면서 벌벌 떨며 울었고, 무서움을 견디지 못하는 듯이 ‘나는 어떻게 하면 좋아’하며 통곡을 한다.

 그는 절망감에 떨면서 집으로 돌아와 고민을 하다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아내와 자식에게 털어놓는다. 머지않아 하늘에서 불이 쏟아져 우리가 사는 도시가 잿더미가 되며, 모두 죽고 말 것이니 몰사당하지 않고 구원을 받으려면 도망갈 도리밖에 없는데, 자신도 그 방법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그의 가족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하고는 말을 듣지 않는다.

 그는 넓은 들을 건너가면 좁은 문이 있는데, 그곳에 가서 소원을 이야기하면 알 수 있다는 전도사의 가르침에 따라 가족의 비웃음과 방해를 뒤로하고 구원의 길을 찾아 나선다. 아내와 아이들이 되돌아가자며 말렸으나 그는 귀를 막고, “생명, 생명, 생명 !” 하고 소리치며 광야 건너편으로 달려간다.

 좁은 문 앞에 이르러 문 위를 보니 그 곳에는 ‘두드리라. 그러면 열어 주실 것이다’란 성경 구절이 적혀 있었다. 그는 문으로 나 있는 곧고 가느다란 길을 따라 십자가 앞에 도달했다. 그러자 그의 등에 있던 짐이 땅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는 계속해 여행을 하지만, 앞길은 험난하기만 했다. ‘주석자의 집’, ‘낙담의 늪’, ‘겸손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악마와 싸우며,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자살을 권유받기도 하지만, 크리스천은 그 모든 시련과 유혹을 물리치고 마침내 천국의 문에 이르게 된다.

 그곳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그곳을 씻은 자는 복이 있으리니, 저희가 생명의 나무에 나아갈 권세가 있고, 또 문으로 성에 들어가리라”

  빛나는 자로부터 새로운 옷을 받고 이마에 도장을 찍은 다음 하늘의 문에서 내려진 두루마기를 갖고 여행을 계속하는 크리스천의 앞에 갖가지 고난이 닥쳐온다.

 죽음의 계곡, 허영의 도시가 이어서 나타나자 동행하던 충실자는 그만 순교하고 만다. 그러나 절망하지 않고 굳건히 모든 시련을 극복한 크리스천은 드디어 하늘의 도시에 도착한다.

 

 

 

 전 세계를 통하여 제일 많이 읽히는 책은 성경이다. 성경은 비단 신자만 읽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신자 아닌 사람이 즐겨 익는 기독교 관계의 책을 성경보다 읽기 쉬우면서 기독교가 무엇이며, 종교가 무엇인지를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쓴 책이 「천로역정」이다. 이 책의 원명은 <더 필그림스 프로그레스(The Pilgrim's Progress)>이다. ‘필그림’이란 순례 또는 방랑이라는 뜻이고, ‘프로그레스’는 옛날에 ‘journey', 다시 말하면 여행이라는 뜻이 있었으므로 이를 그대로 직역하면, ’순례의 여행‘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일찍부터 한문 번역을 그렇게 해서 1879년에 일본에서 사토오(佐藤)라는 사람이 번역한 책이 그대로 따랐을 뿐 아니라, 1895년 우리나라에서 미국인 선교사 게일(James Scarth Gale)이 번역한 것이 또 그렇게 알려졌다. 게일이 우리나라에서 번역한 「천로역정은 우리나라 번역문학의 시초인 <아라비안 나이트>와 더불어 초창기로서는 말할 것도 없고 그 당시 서양문화에 흥미를 가졌던 많은 사람들에게 애독되었다. 이 책은 버니언(Bunyan)이 꿈을 통해 자기의 기독교관을 나타내는 데 많은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작자 버니언이 「천로역정을 이렇게 비유를 들어 기술케 된 것은 까닭이 있다. 그것은 그 작품을 쓴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버니언의 사상을 노골적으로 표현할 수가 없었던 때문이다. 대개 이 무렵의 명저들은 작으나마 어떤 보이지 않는 억압을 받았던 사실이 있는데, 특히 밀턴의 <실락원>은 널리 알려진 예의 하나다. 이처럼 작품 활동에 탄압을 받으면서도 자기 사상을 표현한 작가들이 많았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이 되는 새뮤얼 피프스는 후일 일기문학의 귀중한 연구 자료가 된 9년 동안의 <자기일기(自己日記)>를 1660년부터 1669년까지 암호로 썼다가 1825년에 해독해서 출판했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쓰인 「천로역정이었으므로 작가 버니언이 꿈속을 더듬는 듯한 이야기로 전개되는 것이다. 따라서 「천로역정은 일종의 우화(寓話)이다. 작자 버니언은 신자이긴 했으나 비국교파(非國敎派)를 지지하는 신자였기 때문에 비밀집회를 하다가 붙잡혀서 12년 동안이나 감옥살이를 했다.

「천로역정」은 바로 감옥 안에서 쓴 것이었다. 작품의 내용은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주인공이 가정과 처자를 버리고 여향을 떠나서 여러 가지 위험을 무릅쓰고 천국을 찾아간다는 것이 1부요, 그 다음은 크리스천의 가족들이 뒤따라간다는 것이 2부로 되어 있어서, 얼른 보아 독실한 신자의 여행기요, 신앙 고백 같은 감이 있어 일종의 전도문서(傳道文書) 같이 생각하기 쉬우나, 인간 영혼의 내성(內省)을 실제 사회 현실과 대비하는 것은 물론 작자 버니언 자신의 강한 의지력이 풍기는 문학 작품으로 높이 평가되는 데서 이 작품이 영원한 고전이 된다.  작자 버니언은 1656년 그의 나이 28세 때 종교에 대한 의견을 진술한 처녀작 <복음의 진리>를 출판하고, 1688년 그가 죽을 때까지 60여 권의 저서를 출판했으나, 비교적 성공한 저작으로서 <넘치는 은총> 「천로역정 <악인의 일생>, 그리고 <성전(聖戰)> 등 네 권이 있지만, 「천로역정만큼 알려진 것이 없다. 이 「천로역정은 현재 120개 국어로 번역, 출판되어 기독교를 알 수 있는 책으로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다.

 

 

「천로역정은 주인공 크리스천이 ‘멸망의 도시’에서 ‘천성’(천국)에 이르기까지 겪는 역경의 과정을 그린 책이다. 무거운 짐을 진 크리스천이 복음전도자의 안내로 ‘빛나는 문’으로 들어가 해설자에게 가르침을 받고, ‘십자가 언덕’에서 짐이 풀리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평안과 쉼을 주었던 ‘아름다운 궁전’을 나와서는 괴물과 결투를 벌이기도 한다.

‘허영의 시장’과 ‘의심의 성’에서 죽을 뻔한 위기를 이겨내고, 부주의함으로 ‘실수의 벼랑’으로 떨어질 위험에 처하기도 하지만, 마침내 ‘사망의 강’을 건너 ‘천성’에 이른다. 이렇듯 크리스천의 순례 여정을 위협하는 온갖 함정과 유혹, 그 여정을 더욱 튼튼히 하는 은혜를 포함한 영적 여정의 모든 이야기가 곧은길을 따라 펼쳐진다.

 이 작품은 간결한 언어를 구사하여 진지한 신앙과 풍부한 인간관찰을 묘사하여 영국의 근대문학의 선구로서, 영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바 크다. 한국에서는 조선 후기인 1895년 선교사 J.S.게일이 번역하고, 김준근이 판화를 그려 상하 2책으로 원산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는데, 이는 근대의 첫 번역소설이다. 특히 일부 판화에서는 원근법을 사용했을 뿐 아니라 등장인물들도 한복과 갓을 쓰고 있으며, 천사의 모습은 한국 고전의 선녀를 연상케 하는 등 유교, 불교, 선교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작품이 우화 계보에 속하기는 하지만, 자연스러운 구성과 다양한 변화를 갖는 작중 인물, 그리고 성서를 생각하게 하는 간결한 문체는 후대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경향에 속하는 근대 작품으로는 루이스의 <천로 역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