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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박태원 장편소설 『천변풍경(川邊風景)』

by 언덕에서 2010. 1. 24.

 

박태원 장편소설 『천변풍경(川邊風景)』 

 

 

월북작가 박태원(朴泰遠, 1909∼1986)의 장편소설로 1936년 8월부터 10월, 1937년 1월부터 9월에 걸쳐 월간 [조광]에 두 차례로 나뉘어 연재되었다. 장편소설「천변풍경」은 일제 통치의 극성기라 할 1930년대 중반 서울 서민층의 삶을 꼼꼼히 재현하고 있다. 모두 50개의 짧은 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제목이 가리키는 대로 청계천을 중심으로 모여 사는 장삼이사들의 삶의 이모저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연재소설답게 「천변풍경」은 사건별, 인물별로 이야기가 토막토막 끊어지면서도 나름대로 흐름을 갖고 있는 소설이다. 발표된 후 ‘모자이크처럼 구성되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수십 명의 인물이 등장하지만, 중심 되는 사건도 주인공이라 할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 이 소설에서 어찌 보면 청계천이야말로 진짜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청계천 주변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과 사건들을 하나의 소설 속에 모아 놓는다.  요컨대 청계천은 이 소설의 조직 원리가 된다.

 

 

1930년대 청계천의 모습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소설은 일정한 줄거리는 없다. 1년 동안 청계천변에 사는 약 70여 명의 인물들이 벌이는 일상사가 그 주된 내용이다.

 민 주사, 한약국집 가족, 포목전 주인을 제외한 재봉이, 창수, 금순이, 만돌이 가족, 이쁜이 가족, 점룡이 모자 등은 모두 청계천변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점룡이 어머니, 이쁜이 어머니, 귀돌 어멈을 비롯한 동네 아낙네들은 빨래터에 모여 수다를 떤다. 이발소집 사환인 재봉이는 이런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결코 권태를 느끼지 않는다. 민 주사는 이발소의 거울에 비친 쭈글쭈글 늙어 가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숨짓지만, 그래도 돈이 최고라는 생각에 흐뭇해한다.

 여급 하나꼬의 일상, 한약국집에 사는 젊은 내외의 외출, 한약국집 사환인 창수의 어제와 오늘, 약국 안에 행랑을 든 만돌 어멈에 대한 안방마님의 꾸지람, 이쁜이의 결혼, 이쁜이를 짝사랑하면서도 이를 바라보기만 하는 점룡이, 신전집의 몰락, 민 주사의 노름과 정치적 야망, 민 주사의 작은집인 안성집의 외도, 포목점 주인의 매부 출세시키기, 이쁜이의 시집살이, 민 주사의 선거 패배, 창수의 희망, 금순이의 과거와 현재, 기미꼬와 하나꼬의 여급 생활, 금순이와 동생 순동이의 만남, 하나꼬의 시집살이와 이쁜이의 속사정, 재봉이와 젊은 이발사 김 서방의 말다툼, 친정으로 돌아오는 이쁜이, 이발사 시험을 볼 재봉이 등으로 에피소드들이 이어진다.

 

좌측으로부터 화가 이승만, 박태원, 작가 정인택

 

 1930년 [신생]에 단편 <수염>을 발표하면서 등단한 박태원은 [구인회] 멤버로 <오월의 훈풍> <성탄제> <길은 어둡고>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등을 발표하였고, 8ㆍ15 광복 직후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으로 활동하다 6ㆍ25 전쟁 때 월북하여 북한 역사소설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 <갑오농민전쟁>(1975∼1986)을 발표하였다.

『천변풍경』은 제목대로 서울 청계천변이라는 공간을 무대로,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외면풍경을 마치 카메라로 찍듯이 묘사해나간 일종의 세태소설이다. 남정네들이 모여드는 이발소와 여인네들이 모여드는 빨래터를 주무대로 하여 일어나는 대소사(大小事)들을 50개의 삽화로 그물망처럼 조직하였다.  박태원의 대표작으로, 근대와 전근대가 혼합된 1930년대 청계천변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는 평범하고 다양한 인물 군상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이 소설은 1930년대 모더니즘 문학 운동의 대표 작가인 박태원의 독특한 서술 기법이 돋보인다. 장편소설이면서도 중심인물이 없으며, 이렇다 할 갈등도 등장하지 않는다. 여러 개의 에피소드들이 한데 모여 마치 모자이크 조각처럼 뚜렷한 형상과 의미를 갖춘 하나의 작품을 이루어낸다. 또한, 카메라를 들고 원근법을 조절해 가면서 인물들을 조망하는 서술 기법을 사용해 작품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 

 

 근대적 변화의 바람이 부는 곳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근대화되지 못한 채 주변 지역으로 남아 있던 공간인 청계천변. 서울로 갓 올라온 창수, 이발소 소년 재봉이, 서울로 올라와 남의집살이를 하는 만돌이네 식구, 주색잡기에 골몰하는 재력가 민 주사나 한약방 주인, 포목점 주인, 카페 여급 하나꼬, 결혼했다 친정으로 쫓겨온 이쁜이, 순박한 시골색시 금순이, 그리고 만돌 어멈이나 점룡 모친, 창수나 동팔이 등의 인물을 통해 축첩ㆍ결혼ㆍ선거ㆍ직업 등 서울 중인 및 하층민 토박이들의 삶과 생활 풍속을 뛰어나게 묘사하였다. 

 어느 해 2월초부터 다음 해 1월까지 꼭 1년 간 청계천변에 사는 사람들의 여러 가지 에피소드의 나열로 된 이 소설은 1930년대 모더니즘 소설의 대표적인 작품일 뿐만 아니라 작가 박태원의 대표작이다. 당시 모더니즘 소설의 특징인 도시성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세태 소설'의 진수를 맛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