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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강경애 장편소설 『인간문제』

by 언덕에서 2010. 1. 21.

 

 

강경애 장편소설 『인간문제』 

 

 

강경애(敬愛.1907∼1943)의 장편소설로 1934년 8월부터 12월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된 작품이다. 당시 사회에 있어서의 인간관계를 대담하게 다루었다. 이 작품은 인간으로서 기본생존권조차 얻을 수 없었던 노동자의 현실을 예리하게 파헤친 소설로, 근대소설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이 작품은 1930년대의 우리 나라 사회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서민과 지식인의 당면한 인간 문제에 정면으로 부딪쳐 그것을 자연주의적 수법으로 파고든 무게 있고 깊이 있는 작품으로 주목을 끌었다. ‘선비’와 ‘첫째’는 용연 동네에 사는 처녀, 총각이다. 이 소설은 두 사람의 삶의 행적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1930년대 농촌 사진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선비'의 아버지는 용연 마을의 지주(地主)인 정덕호의 일꾼인데, 덕호의 지시로 빚을 받으러 갔다가 오히려 소작인을 도와준 죄로 덕호에게 맞아 죽는다. 어머니마저 죽자 '선비'는 정덕호의 집에서 몸종으로 지내다가 결국 덕호의 꾀임에 빠져 순결을 잃는다.

 '선비'는 덕호의 집을 도망쳐 나와 자기처럼 덕호에게 당하고 서울로 간 간난이를 찾아간다. '선비'를 좋아하는 남자는 고향 청년 '첫째'와 서울 사람 '신철'인데, '첫째'는 덕호에게 반항하다가 그의 교묘한 술책으로 땅마저 빼앗겨 고향을 등졌고, 신철은 덕호의 딸 옥점에게 놀러 왔다가 '선비'의 모습에 반하게 된다. 그는 옥점이가 싫어져 부모끼리의 결혼 약속을 따르지 않고 가출하여 인천 부두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첫째'를 만나 그를 각성된 노동자로 키우기 위해 많은 학습을 시킨다.

 서울에 올라온 '선비'는 노동자로 생활하고 간난이를 만나 인천의 방적 공장에 취직하여 새 삶을 시작한다. 이 공장은 수많은 여공들을 기숙사에 수용하여 갖은 방법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는데, 이미 노동 운동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간난이는 자본가의 횡포와 노동자가 겪는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비밀 작업을 추진하다가 이 일을 '선비'에게 맡기고 공장을 탈출한다. 간난이가 나간 후 '선비'는 공장 감독의 유혹을 뿌리치며 자기 일을 다하다가 폐결핵이 악화돼 죽고 만다.

 '첫째'는 신철을 만나 자신의 현실을 철저히 인식하고 공장 내의 노동 운동을 돕다가 부두 노동자의 파업을 성취시켰으나, 신철은 전향했고 '선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결국 인간 문제는 신철과 같은 지식인에게서 구할 것이 아니라, 노동자 자신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한다.

 

소설가 강경애(姜敬愛.1907.4.20∼1943.4.26)

 

 

 이 작품은 1920∼30년대 식민지의 모순을 농촌과 도시를 오가며 절묘하게 파헤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강경애는 당시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계급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보았다. 말하자면, 그 당시 우리나라 지식인들 사이에 공감을 얻고 있던 사회주의 사상을 바탕에 깔고 이 작품을 쓴 것이다. 농촌에서는 농민과 유랑민들이 대지주에게 수탈당한다. 도시에서는 도시 빈민과 노동자들이 자본가에게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을 깨뜨릴 수 있는 인물은 신철 같은 지식층이 아니라 첫째나 선비 같은 무산 계급이라고 보고 있다.

 작품의 첫머리에 소개되는 장자못 전설은 이 작품 전체의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원소(怨沼: 원한의 연못)라 불리는 연못에 얽힌 전설이다.

 수많은 땅과 종과 살찐 가축을 가진 장자 첨지가 있었다. 곳간에서 곡식이 썩어도 그는 굶주린 사람들에게 밥 한술 주지 않았다. 흉년이 들어 마을 사람 모두가 굶어죽게 생겼는데도 그는 눈깜짝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하는 수 없이 몰래 작당하여 밤중에 장자 첨지네 집을 습격하여 쌀과 짐승을 끌어냈다.

 며칠 뒤 장자 첨지는 관가에 고소하여 이 근처 농민들을 잡아가게 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악형(惡刑)을 받고 죽고, 동네에서 쫓겨났다. 아버지, 어머니 혹은 아들, 딸을 잃어버린 이들이 장자 첨지네 마당가를 떠나지 않고 울었다. 울고 또 울어 하룻밤 새에 장자 첨지네 기와집이 푸르고 깊은 못으로 바뀌었다. 봉건 지주의 수탈과 농민들의 원한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야기이다. 또한 이 이야기는 그렇게 서럽게 살아온 사람들의 문제를 다룬 이 소설의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작품을 쓴 강경애는 사회주의 작가 조직인 카프(KAPF)에도 끼지 않았고, 카프의 목적과 문학 방식에 동조하는 동반자 작가라는 이름도 얻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식민지 사회의 문제점을 파헤친 작가였다.

 우리는 이 작품을 읽으며 식민지 시대에 소설가 강경애가 바라본 현실, 즉 ‘인간 문제’가 어떤 것이었나를 생각하게 된다. 인간에게 많은 문제가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그는 무엇이라 여겼고, 어떻게 바라보았나 생각하는 것이 이 작품의 깊은 뜻을 새기는 길이다.

 

 

 [동아일보]에 연재 직전 작가는, "이 시대에 있어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인간이 누구며, 그 인간으로서의 갈 바를 지적하려 했다." 고 밝혔다. 일제 강점기의 농민과 노동자가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았던가를 보여 주고, 그 고통과 비극은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제시하고 있다. 이 작품은 항일 투쟁을 직접 다룰 수 없는 상황에서 농민 운동과 노동 쟁의의 문제를 정면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작품의 전반부는 농민의 참상을, 후반부는 일제를 상대로 한 노동자의 투쟁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농촌의 인물을 공장으로 옮겨옴으로써 작위성과 괴리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작품의 한계로 지적되기도 한다. 먼저, 첫 부분에 나오는 '원소(怨沼)'라는 못에 얽힌 전설의 암시성에 유의해야 한다. '옛날이 마을에 인색한 부자 첨지가 살았는데 흉년으로 마을 사람들이 죽게 된 지경에도 모르는 체하여 사람들은 그 집을 습격하여 허기를 면했다고 한다. 며칠 후 관가에 잡혀간 이들이 모진 형벌 끝에 죽자, 가족들이 첨지의 마당에 모여 울어 마침내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큰 못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다. 작품의 창작 의도를 보여 주는 내용이다. 그런데도 작자는 마지막에서 수천 년 동안 풀지 못하는 인간 문제를 풀 인간은 누구냐고 묻고 있다.

 한편으로는, '선비'를 주인공으로 하는 '여자의 일생'형(型) 소설로 보는 관점도 있다. 여자의 비극적 일생이 개인적 결함에 기인하는지, 아니면 시대 사회적 조건에서 비롯되는지를 검토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가난한 머슴의 딸로 태어나 조실부모하고 주인에게 짓밟혀 고향을 떠나 방적 공장의 여직공으로 일하다가 폐결핵으로 죽는 것이 '선비'의 일생이다. 사회 고발적 요소가 강한, 목적 문학적 성격을 분명히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공장 노동의 생생한 현장 묘사는 한국소설의 약점이었던 소재의 빈약성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인천부두와 방적공장의 묘사는 탁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