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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김병종의 그림과 함께 하는 기행문 『화첩기행』

by 언덕에서 2010. 1. 8.

 

 

김병종의 그림과 함께 하는 기행문 화첩기행

 

  

 

 

화가이자 대학교수인 김병종의 그림과 함께 하는 기행문이다. 1990년대 후반 경제 한파의 충격에 얼어붙었던 당시에 독자들의 마음을 부드러운 문화와 예술의 힘으로 훈훈히 녹여주었던 책이다. 미술가의 예술기행문인 이 책은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권은 이난영과 목포, 진도소리와 진도, 강도근과 남원, 서정주와 고창, 허소치와 해남 진도, 이매창과 부안, 윤선도와 보길도, 운주사와 화순, 임방울과 광산, 이효석과 봉평, 김삿갓과 영월 등 우리나라 곳곳을 기행한 소감과 그림을 함께 담았다.

 세 번째 권은 독일, 러시아, 프랑스, 중국, 일본 등 세계 각지를 몸소 누비며 뒤쫓은 우리 예인 14인의 행적을 담아내었는데 주로 해외에서 활동한 우리 예술가들의 삶과 예술혼 그리고 민족사랑 등을 절절하게 그려내 앞 권과는 또 다른 감동을 안겨준다. '어디에 잠들 건 묻힌 삶은 서럽고 외로운 법'이라 하지만 행려의 길목에서 김병종은 선배 예인들이 살았던 희미한 흔적과 그 쓸쓸한 흥취에 매몰되지 않는다. 그는 세상을 떠난 그이들의 영혼을 몸으로 느끼고, 살아 있는 이들의 손을 맞잡고 육친의 정을 느꼈을 것이다.


 예술혼은 자기 자신과의 힘겨운 투쟁을 견뎌내야 비로소 꽃피운다. 이 땅의 예술가들은 열악한 환경과 대중의 인식 탓에 더욱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꽃피운 우리 예술 혼은 투박하지만 역동적이고, 그래서 더 감동적이다. <화첩기행>을 펼치는 순간 그동안 몰랐던 우리네 예술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때로는 한 폭의 동양화처럼, 때로는 어둠 속 기록영화 화면처럼 펼쳐진다. 예컨대 박수근의 고향 강원도 양구를 찾은 김병종은 박수근이 왜 '서민의 화가'일 수밖에 없었는지 깨닫는다. 화가 자신이 서민이었기 때문이다. "기름기 없는 무채색의 가난한 들길을 걸어 정림리 산마루턱 생가 터에 이르는 동안 산천과 사람 어디를 둘러보아도 선(善)함 투성이다. (……) 박수근의 그림에 왜 악은커녕 위악마저도 찾아볼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차에 흔들리고 뱃길을 떠가며, 눈 내리고 비 뿌리고 바람 부는 이역의 곳곳에서, 낯선 곳 낯선 하늘 아래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마침내 꽃을 피워냈던 선배 예인들에 대해 새삼 경이(驚異)와 경념(敬念)을 느끼면서 우리 예인들에 대한 김병종의 애정은 구천에 떠도는 그들의 혼을 불러내 이야기를 듣고, 위로하고, 그리고 다시 희망을 적어 내려간다. 독립운동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소수민족의 설움을 강한 의지와 정신으로 이겨내고 중국 영화사에 지지 않는 별이 된 김염, 조국을 잃은 망명객의 신분에서도 깊은 계곡 속 난초처럼 고고한 인품의 향기와 단아한 예술 세계를 펼쳐간 이미륵, 유배지나 다름없는 이국의 흙을 빚어 조선의 혼을 담은 그릇을 구워낸 조선 도공들… 때로는 열정에 빠져, 때로는 쓸쓸함을 이기려 예술 혼을 불태운 그들은 해외에서도 한국인임을, 한민족임을 잊지 않았고 우리의 땅, 우리의 정신으로부터 작품 세계의 자양분을 얻었다.


 김병종은 현장답사와 그림, 각종 사진자료 그리고 무엇보다 유려한 글 솜씨로 예술가들의 삶을 되살려낸다. 이 책에는 그림이 있고, 시가 있다. 그리고 예인들의 불꽃같은 삶이 들어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예술에 대한 저자의 깊은 애정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김병종의 글과 그림은 대상에 대한 정보와 비판적 사고 이상의 것을 담아내고 있다. 바로 따뜻함, 각박한 현대인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바로 그것이다. "예술은 자본의 꽃이기 전에 절망을 이기는 노래"이고 "경제가 무너지고 나라가 깨어져도 문화를 지니고 있으면 다시 일어선다"는 굳은 믿음, 그것이 김병종이 문화와 예술을 숭앙하는 세상이 열려야 한다고 소리를 높이는 이유일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한국 근·현대 예술사를 가슴으로 만나게 된다. 최승희, 김용준, 윤이상, 이응로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였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묻혀버린 예술가들을 소개하여 반쪽짜리 예술사를 복원해 낸 것도 그의 주관과 철학이 바탕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