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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김수환 추기경 평전『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용서하세요』

by 언덕에서 2010. 1. 15.

 

 

김수환 추기경 평전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용서하세요

 

 

 

1922년 독실한 가톨릭 집안의 막내로 태어나 47세의 나이로 1969년 당시 세계 최연소이자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 된 김수환(1922~2009) 추기경의 평전이다. 그는 세계 가톨릭 교단에서 한국 가톨릭의 위상을 크게 높였으며,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 대한민국 민주화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 책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용서하세요>는 그런 그의 삶을 되짚어보는 의미 있는 책이다. 1971년 가톨릭 잡지 《창조》를 창간하면서 발행인과 편집 주간 사이로 만나 40년에 가까운 인연을 맺어온 문학평론가이자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장인 구중서 교수가 집필을 맡았다.

 

 

 

 

 

 가난한 순교자 집안에서 자란 김수환 추기경은 독실한 신자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바로 위의 형과 함께 신부의 길에 들어섰다. "일본 천황이 조선의 청소년 학도에게 내린 칙유에 대한 황국신민으로서의 소감"을 쓰라는 시험문제를 받고 "나는 황국신민이 아님. 따라서 소감이 없음"이라고 당당하게 신념을 밝힌 소신학교 시절부터, 독일에 파견되어 온 광부 및 간호사들의 친구이자 상담역으로 그들의 의지처가 되어준 독일 뮌스터 대학 유학 시절, 그리고 사제 서품을 받고 정 많은 시골 신자들과 더불어 평생에 그리워할 안온한 시간을 보낸 안동 성당(현 목성동 주교좌성당)의 주임신부 시절까지, 김수환 추기경의 고매하고도 사려 깊으며 실천적인 인격은 그 시기에 형성되었다.

 이러한 인격에 고위 성직자라는 종교적·사회적 지위는 그로 하여금 더 확대된 사회참여로 나아가게 하는데,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과감하게 선봉에 서서 목소리를 낸 것이 그러하였다. 1971년 성탄절 명동 대성당 자정미사 강론에서 성탄 메시지를 전하며 박정희 대통령의 1인 영구 집권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일이며,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무거운 형이 내려진 시민을 대변하여 감형 내지 사면되게끔 유도한 일, 1987년 6월 민주 항쟁 때 학생 시위대들의 방패 역할을 자처하며 그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시위를 평화롭게 마무리를 지었던 일 등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룩해가는 현장의 복판에는 항상 김수환 추기경이 있었던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이처럼 성직자의 신분으로 사회참여의 선봉에 섰던 것은 "교회를 위한 교회가 아닌 세상을 위해 봉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라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에 입각한 것이었다. 이것은 또한 김수환 추기경 자신의 신념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이기적 기복 성향의 기도나 바치는 것으로 자족하는 신자들의 교회는 잠든 교회일 것이다. 하물며 불의의 독재정치로 인권과 민주주의가 없는 암흑의 시대에 교회가 침묵만 지킨다면 그리스도가 짊어진 십자가의 의미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잘 모르는 사람들이 김수환 추기경의 사회참여를 정치적인 의도로 해석하는 등 오해하는 예가 있으므로 구중서 교수는 이 책에서 김 추기경의 신앙에서 비롯한 확고한 신념과 의지를 실례를 들어 객관적인 입장에서 밝히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한 시대의 위인도 인간으로서의 한계는 누구라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김수환 추기경은 당대적 역할을 탁월하게 수행했다. 그가 떠나고 난 뒤의 남은 일들은 뒤 세대의 사명이다. 근ㆍ현대를 지나오는 동안,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교회의 현실 참여의 원칙을 드러내면서, 가난하면서도 봉사하는 교회, 역사에 동참하는 교회로의 변화를 이끌냈을 뿐 아니라, 억압받고 가난한 민중을 위해 정치계와 노동계 등에 강경한 발언을 서슴치 않은 이 시대의 위대한 성자의 인생과 자취를 느낄 수 있는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