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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범선 단편소설 『오발탄(誤發彈)』

by 언덕에서 2009. 10. 15.

 

이범선 단편소설 『오발탄(誤發彈)』  

 

 

 

이범선(李範宣. 1920∼1982)의 단편소설로 1959년 10월 [현대문학]지에 발표되었다. 6ㆍ25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1950년대의 암담한 현실이 리얼하게 부각된 작품으로 [동인문학상] 수상작이다.

 같은 민족끼리 총을 겨누었던 6ㆍ25 전쟁은 숱한 상처를 남겼다. 전쟁은 죽음과 질병과 이별과 상처를 만들어 냈다.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생겨나고 아예 자기 나라를 떠난 사람들도 있었다. 1950년대 우리 소설가들은 전쟁을 겪고 난 뒤 참혹한 이 땅의 현실에 눈을 돌렸다. 왜 전쟁이 일어났는지, 그 전쟁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지는 않았다. 다만, 전쟁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비참하고 일그러진 삶을 그려내고자 했다. 이범선이 쓴 「오발탄」도 그런 작품 가운데 하나다. 고향을 두고 월남하여 피난민촌인 ‘해방촌’에 사는 철호 일가의 고달픈 삶, 방향을 잃은 삶을 리얼하게 보여 준 작품이다.

 1961년 [대한영화사]에서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감독 유현목, 촬영 심재홍, 원작 이범선, 각색 나소운ㆍ이종기, 출연 김진규, 최무룡, 문정숙 등의 이 영화는 당시 한국 사회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5ㆍ16 군사정변 이후 한때 상영금지가 되기도 했다. 제7회 [샌프란시스코영화제]에 출품하였다.

 

영화 [오발탄], 1961 제작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계리사 사무실 서기 송철호는 7년 전부터 모를 병에 걸린 노모와 만삭의 아내 그리고 다섯 살 난 딸애의 아버지이다. 월급이 별로 안 되는 봉급쟁이인 그는 점심도 못 싸 가지고 다녀 항상 허기진 배를 쥐고 집이 있는 해방촌 고개를 오르내리곤 한다.

 그러나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기가 무섭게 흰 수세미처럼 되어 버렸고 몸은 마치 미라처럼 변해버린 어머니가 "가자! 가자!" 하는 소리에 소름이 끼치고 무엇이라도 콱 때려 부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는 가난한 가장인 철호다.

 집에 가야 이미 가난과 고난에 절은 아내는 말 한마디 없었고 오직 철없는 딸애만 철호에게 간간이 말을 붙일 뿐, 가정에서도 따스한 온기를 못 느낀 철호는 가끔 밖으로 나가 북쪽 하늘을 쳐다보며 고향 마을을 떠올려보곤 하였다.

 북쪽이 고향이고 그곳서 지주로서의 동네 주인 역할을 했던 어머니는 6ㆍ25가 나자 남하하게 되었고, 이윽고 38선이 생기자 고향으로 못 가게 된 것이다. 어머니는 철호에게 계속 북쪽으로 가자고 하였으나, 이미 38선이 생긴 이상 갈 수가 없다고 누누이 설명을 하였지만, 어머니는 막무가내였다.

 그렇게 지내오던 어느 날, 해방촌 집에서 보이는 용산 일대가 폭격으로 무너지자 어머니는 완전히 정신 이상이 되어 버렸다. 그날부터 어머니는 ‘가자!' 즉, 북쪽 고향으로 가자는 말만 되풀이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동생인 영호는 대학 3학년을 마치고 자원하여 군대에  갔다 와 2년 동안이나 실업자로 지내는 신세인데, 어느 날 형인 철호에게 우리도 남들처럼 살아보자고 한다. 양심적이고 가난하게 사느니 양심, 윤리, 관습, 법률도 벗어던지고 편히 한 번 살아보자고 한다.

 그러나 철호는 그렇게 살면 올바른 삶이 아니라고 극구 역설하나, 이미 가난에 지친 여동생 명숙이는 미군을 상대로 하는 양공주가 되었고 어머니의 원수를 갚겠다고 군대에 자원해서 복무했으나 아무것도 남은 게 없고 오로지 가난만이 남아있다는 영호의 말에 잠시 마음이 흔들린다. 더구나 E여자 대학 음악 대학을 나온 미인이었던 아내는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채 말없이 웅크리고 사는 모습을 보니 더욱 마음이 흔들린다.

 언젠가 전차를 타고 퇴근하던 길에 전차가 멈추어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때 철호의 눈앞에 미군 찝차가 한 대 서 있었다. 그 미군의 옆에 색안경을 끼고 있던 양공주가 바로 동생 명숙이었다. 다른 승객들의 명숙이를 향한 쑥덕거림을 견디지 못한 철호는 그날부터 명숙이와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명숙이 또한 철호를 본체만체했다.

 그러나 그런 명숙이도 엄마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었다. 잠든 어머니의 옆에 드러누워 앙상하게 남은 엄마의 손을 잡으며 한없이 흐느끼곤 하였다. 철호의 딸애도 명랑하게 놀다가도 할머니의 "가자!"라는 말만 나오면 자라목이 되어, 하던 일도 그만두고 위축된 생활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사무실에서 일하는 철호에게 급작스런 경찰서로의 전화 부름을 받고 그 곳에 갔다. 동생 영호가 2인조 권총 강도로 돌변하여 남의 회사 월급 줄 돈을 빼앗아 달아나다 잡힌 것이었다. 그러나 잡힌 것은 영호 한 사람뿐이었으니...

 식구들의 막가는 인생을 눈앞에서 보는 철호의 심정은 갈기갈기 찢기는 듯하였다. 집으로 돌아온 철호는 또 이외의 소식을 명숙으로부터 듣게 되었다. 즉, 아내가 진통이 와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아무리 힘을 써도 아기가 안 나오자 죽을힘을 다한 것이 아기의 머리부터 나온 게 아니고, 팔부터 나와서 지금 중태라는 것이었다. 

 아연한 채 돈이 없어 서 있는 철호에게 백 환짜리 돈 한 다발을 내밀고 돌아서는 명숙의 뒤꿈치에 계란만 한 구멍이 뚫려있는 것을 보고 처음으로 명숙에 대한 어떤 깨끗함을 느끼고 동생에 대한 애정이 새삼 솟아오르는 철호. 그러나 병원에 가보니 아내는 이미 죽어 있었다.

 얼이 빠져버린 철호는 죽은 아내도 보지 않은 채 정처 없이 길거리를 배회한다. 그러던 중, 전부터 앓았던 이가 너무 아파 치과를 찾아가게 되었다. 명숙이가 준 돈으로 썩은 어금니를 빼고는 반대쪽의 썩은 이마저 빼도록 부탁하게 된다. 그러나 심한 출혈 때문에 안 된다는 의사의 말을 무시하고 나머지 이도 빼 버렸다. 그리곤 아무도 없는 자기의 사무실로 향하던 중 심한 출혈로 오한이 나자 허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에 설렁탕 가게로 국을 시키고는 기다리는데 계속 입 안으로 고이는 찝찔한 물 때문에 다시 바깥으로 나와 피를 뱉어 버리고는 마침 다가오는 택시를 무조건 탔다.

 행선지를 묻는 기사에게 집이 있는 해방촌으로 가자고 한다. 그러나 곧 죽어 있는 아내가 있는 S병원으로 가자고 했다가, 또 영호가 잡혀있는 ×경찰서로 가자고 하는 등 그야말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런 철호에게 택시 기사는 어쩌다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다며 투덜댔다. 철호는 까무룩히 잠이 들어가는 것 같은 속에서 운전수의 불평을 들으며 아들 구실, 남편 구실, 애비 구실, 형 구실, 오빠 구실, 또 계리사 사무실 서기 구실, 해야 할 구실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어쩌면 조물주의 오발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쏟아지는 졸음 속에 감각이 무뎌졌다.

 귓가에 "가자!" 하는 어머니의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하며 모로 쓰러지고 마는 철호.  어디로 가냐는 운전수의 말도 듣지 못하고 입에서 흘러내리는 선지피가 와이셔츠 가슴을 흘러 타고 한없이 내릴 뿐이었다.

 

영화 [오발탄], 1961 제작

 

 

 생활고로 아픈 이도 뺄 수 없고, 나일론 양말을 사면 오래 신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싼 목양말을 사지 않을 수 없는 계리사 사무실의 서기 송철호가 주인공이다. 그는 양심을 지켜 성실하게 살아야 그것이 진정한 삶이라고 믿었다. 거기에 비해 그의 동생은 그런 양심 따위는 약한 자가 공연히 자기의 약함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고집하는 것이 아니냐고 맞선다. 그는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온 뒤 2년이 지나도록 취직도 못하고 정처 없이 유전하는 인생이다.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다가 미친 어머니, 임신한 아내, 가난으로 양공주가 된 누이동생이 한 가정을 구성한다.

 이렇게 사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형 철호는 어떤 날 자기의 가야 할 방향을 알지 못한다. 살아가긴 가야 하는데, 지금도 가고 있긴 가고 있는데, 정작 자기가 가고 있는 방향은 모르고 있다. 이런 절망 속에서 정신적 지주를 잃은 불행한 인간들에 대한 고발과 증언이 무리 없이 그려져 있다. 더욱이 마지막 장면에서 극적인 슬픔을 맛본다. 어째서 그토록 선량한 주인공이 감당할 수 없는 패배와 굴욕을 감수해야 하는가 하는 현실이다.

 상황과 인간의 대립에서 구원을 찾을 수 없었던 주인공인 영철은, 미친 듯이 “가자! 가자!”라고 외치는 어머니와 양공주로 변신한 명숙, 은행강도 끝에 살인까지 하게 된 동생 영호의 사건, 그리고 아내의 죽음으로 돌이킬 수 없는 절망에 이르게 된다. 10분이 넘는 영철의 마지막 방황의 장면은 이 영화가 제시한 영상적인 리얼리즘의 순수하고 시적인 놀라운 표현이다.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셀러리맨 주인공은 꾸려가야 할 많은 일들을 놓고 박봉으로 암담하다. 양공주인 동생으로부터 받은 돈으로 치과를 찾아 우선 앓던 이를 빼고 아이의 고무신을 산 뒤 만취가 되도록 술을 마신다. 그리고는 택시를 탔지만, 어디를 가야 할지 몰라 무작정 달리기만 한다. 아이를 낳다 숨진 아내의 영안실에도 가야 하고, 늙은 어머니와 어린 딸이 기다리는 집, 동생이 갇힌 교도소, 양공주 생활에 지친 누이에게도 가야 하지만 어디부터 가야 할지 알 수 없다. 그에게 남은 것은 혼돈과 방황 그리고 암울한 현실뿐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불행하고 뒤틀린 삶을 살아간다. 가장인 철호는 가난 속에서 가족들의 생활을 이끌어 가느라 늘 찌들어 있다. 계리사 사무실 서기로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 아픈 이조차 뽑을 여유가 없는 초라한 살림이다. 그의 어머니, 동생 영호, 명숙, 아내 모두 다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 ‘잘못 쏘아진 탄환’이라는 제목처럼 목표를 벗어나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그런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은 전쟁으로 자기 고향을 잃었기 때문이며, 전쟁이 가져다준 가난 때문이며, 가치관의 혼란 때문이다. 갈래도 갈 수 없는 고향, 양심을 지키며 살고자 하지만, 생활은 가난에 찌들고, 온갖 불행이 밀려온다. 이런 절박한 상황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오발탄’ 같은 삶을 산다.

 이 작품에서 전쟁 뒤 절망적인 상황을 절실하게 느끼도록 하는 것은 가난한 삶이나 비뚤어진 가치관만은 아니다. “가자!”라고 외치는 어머니의 대사는 작품 전체에 음울한 분위기를 던지면서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암시하고 있다. 어머니는 자신들의 삶이 파괴당하지 않았던 시절로, 고향으로 가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고향은 없다. 삼팔선이 막혀 갈 수 없는 곳이다. 갈 수 없는 곳을 가자고 외치는 것처럼, 어떻게든 살아 보려는 피난민 일가족의 삶은 절망으로 끝나고야 만다. 마지막 부분에서 철호가 집으로도, 병원으로도, 경찰서로도 가지 못하고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장면은 어머니의 “가자”는 외침과 마찬가지로 절망적이다. 이 작품은 전쟁 때문에 선한 사람들이 결국 일그러진 삶을 살고, 끝내 죽음에 이르고야 마는 절망적인 상황을 실감 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있다.

 짙은 허무주의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전후의 암담한 현실을 시대 배경으로 주인공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가족들의 사건을 통해 그가 혼란에 빠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즉, 고향을 떠난 월남 피난민 가족의 비참한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뿌리 뽑힌 자들의 가난과 고통, 그리고 편안한 삶을 방해하는 비정한 현실을 심도 깊게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가족들의 비극적인 삶이 결국 주인공 철호를 방향 감각을 잃은 오발탄과 같은 존재로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