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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상(李箱) 단편소설 『날개』

by 언덕에서 2009. 10. 8.

 

이상(李箱) 단편소설 『날개』 

 

  

 

이상(李箱·김해경. 1910∼1937)의 단편소설로 1936년 [조광]지 9월호에 발표되었다. 작자가 1933년 요양차 황해도 백천온천에 갔을 때 알게 된 기생 금홍이와의 2년 남짓한 동거생활에서 얻어진 작품이다. 

 '나’는 구조가 흡사 유곽과도 같은 33번지에서 매춘부인 아내와 함께 산다. 아내에게 손님이 있으면 나는 윗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잔다. 손님이 가면 아내는 내게 돈을 주지만 나는 돈을 쓸 줄을 모른다. 어느 날 나는 바지주머니에서 돈 5원을 꺼내 아내 손에 쥐어 주고 처음으로 아내와 동침한다. 그리고 어느 날 정신없이 거리를 쏘다니던 나는 미쓰코시 옥상에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나는 아무데나 주저앉아 내가 자라온 스물 여섯 해를 회고한다. 그 때 뚜우하고 정오 사이렌이 울었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작중에 나타난 나와 아내가 보여 주는 희화적인 부부관계는 희화의 영역을 넘는다. 일제 강점기 근대 지성인들의 모순된 자의식 해부라 할 수 있다. 한국 현대문학의 최초의 심리주의 소설로 일컬어지고 있다.

 

이상 (李箱, 김해경. 1910-1937)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지식 청년인 '나'는 아주 몸이 약하고 자의식이 강하다. '나'는 상대적으로 현실적인 감각이 흐린 편이다. 뿐만 아니라, 게으르며 매사에 의욕이 없고 지쳐 있다. '나'는 유락녀인 아내와 33번지의 어떤 셋방에서 세를 들어 산다. 그런데 '나'의 집은 아내의 방과 '나'의 방이 장지로 구획지어져 있다. 장지를 격한 아내의 방에는 가끔 가다 내객이 찾아온다. 그리고 거기서 아내는 손님과 식사를 시켜 먹고 좀 해괴한 수작(매음)도 벌인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서는 '나'는 격한 반응을 보이는 법이 없다. '나'는 그저 아내가 시켜 주는 밥을 먹고, 아내가 수면제를 먹여 잠을 재우는데 그 약이 감기약 아스피린인 줄 알고 먹고난 뒤 낮잠을 자거나 혼자서 공상에 잠기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나'는 어느 날 수면제 아달린인 줄 알고 산으로 올라가 아내를 연구한다. '나'는 거의 현실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격리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아내는 지리가미를 사용한다. 이것은 성적인 행위를 상징한다. 그것은 아내의 부정한 행위인데도 '나'는 그것을 보고도 기분 언짢아하지 않는다. 또한 여성용 팬티인 사루마다를 아무렇지도 않게 입기도 한다. 또한 아내의 화장품 냄새를 맏거나 화장지를 태우면서 아내에 대한 욕구를 대신하는 것이다.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갔을지도 모를 수면제를 한꺼번에 여섯 알이나 먹고 일주야를 자고 깨어나서 아내에 대한 의혹을 미안해하며, 아내에게 사죄하러 집으로 돌아온 '나'는 어느 날 절대로 보아서는 안 될 아내의 매음 행위을 보고, 바지 포켓 속에 남은 돈 몇 원 몇 십 전을 문지방에 놓고 줄달음질을 쳐서 경성역으로 나간다.

 아내를 오직 한 번 차지해 본 이외에는, 주인공 '나'는 숙명적으로 아내와는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 부부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나'와 아내는 제 거동에 제동을 걸지 않고 사실은 사실대로 오해는 오해대로, 그저 끝없이 발을 절뚝거리면서 걸어가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미스꼬시 백화점 옥상에 올라 스물여섯 해의 과거를 회상할 때, 정오 사이렌이 울린다.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려움을 느낀다.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 오늘은 없는 날개를 떠올린다. 그리고 외친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다시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작가 이상이 직접 그린 [날개]의 잡지 삽화. (출처 : 에듀진 인터넷 교육신문(http://www.edujin.co.kr)

 

 이 작품은 1930년대 서울의 유곽(창녀촌)을 배경으로 하여 우유부단한 한 지식인이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1930년대라는 시간적ㆍ시대적 배경을 강인하게 암시했다. 섬세한 심리주의적 수법을 점액질로 보여준 만연체 표현이다.

 1930년대는 일제의 식민지 통치수법이 가장 악랄하게 전횡하던 시기이며, 동시에 한국의 저항문학이 지하에서 가장 활발하던 ‘암흑기의 한국판 르네상스’였다. 내면적으로 한국과 일본이 첨예하게 대립되던 시기에 이 소설은 또 하나의 비유적 저항문학이 되었다. 그것은 또한 주인공 ‘나’가 바로 작가의 분신이며, 자화상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이며, 인간으로 살기를 포기한, 그저 존재할 뿐인 인물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스토리는 완전히 전락해 버린 지성이 다시 한번 각성하며 깨어나는 내용이다. 환경과 타자에 의해 빠진 최면에서 깨어나 맑아진 정신으로 가진 사유 끝에 다시 한번 날아오르려 하는 주인공의 독백은 희망을 암시하며 시각에 따라서 처절하기 짝이 없다.

 

 

 이 작품은 이상의 대표작이다. 현대인의 무의미한 삶과 자아 분열을 그려 낸 최초의 심리 소설로 의식 흐름 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매춘부의 기둥서방으로 사는 남자의 자폐적인 일상과 무력한 삶과 자아 분열 속에서 벗어나 본래의 자아를 찾고자 하는 의지를 음울하게 나타내고 있다.

 주인공 ‘나’는 아내에게 기생하며 살아가는 비정상적인 부부관계에 있다. 아내의 매춘에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지만, ‘나’의 경제적 무능력과 사회성의 결여는 부정한 아내를 탓하지 못하는 극단적인 자의식의 부정으로 나타난다. 그러한 폐쇄된 상황 속에서도 “날자,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란 ‘나’의 절규는 전도된 질서로부터의 인간회복을 의미한다.  “박제가 된 천재‘의 자아 모독과 자기 부정에서 ’날개‘를 통해 현실의 비극적 사회를 탈출해 보려는 자의식의 발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