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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승옥 단편소설 『서울 1964년 겨울 』

by 언덕에서 2009. 10. 10.

 

김승옥 단편소설 『서울 1964년 겨울 』 

 

 

김승옥(金承鈺. 1941 ~ )의 단편소설로 1965년 [사상계]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한국 현대소설 사상 획기적인 성격을 지닌, 1960년대 문학의 서장(序章)을 여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1950년대 문학은 6ㆍ25전쟁과 직결된 문학으로 엄격하고 교훈주의적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이러한 1950년대 문학의 특질을 배격하고, 전혀 새로운 양식으로 인정주의에서 개인주의에로 변모하는 경향을 보이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동인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소설을 읽고 나면 한 동안 뭔지 모르게 언짢아지고, 알 수 없는 불안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것은 아마도 이 소설이 사랑과 양심 따위의 소중한 미덕들이 걸레조각처럼 찢겨져 너덜거리는 우리 시대의 아픔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탓일지도 모른다.

 

단편소설극장전 첫번째 작품 :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 「서울, 1964년 겨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964년 겨울을 서울에서 지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술집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날 밤 우린 세 사람은 우연히 만났다. 나와 도수 높은 안경을 쓴 대학원생과 정체를 알 수 없지만 가난뱅이라는 것만은 분명한 서른 대여섯 살 짜리 사내를 만났다.

 처음 나는 대학원생이라는 안씨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좀 의심쩍었다. 대학원생이고 부잣집에 사는 사람이 이런데 와서 술을 먹는 것과 나 같은 별 볼일 없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대학원생이 맞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안씨는 학생증을 보여 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만두라고 하였다. 그렇게 이런 저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자리를 옮겨서 확실하게 술자리를 하자고 하고 나오려던 길에 어떤 사내가 우리에게 술을 같이 하자고 말을 걸어왔다. 자기에게도 돈은 있으니 끼워 달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승낙했다. 그러자 그는 자기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하였다.

 그는 오늘 아내가 죽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다 팔았다는 것도 말해 주었다. 그리고 이 돈이 모두 없어질 때까지 같이 있어 달라고 하였다. 우리는 술집을 나와 거리로 향했다. 걷다가 저녁을 했냐고 물어왔다. 안씨와 나는 했다고 하자 같이 저녁을 하러가자고 했다. 우리가 거절했더니 그럼 자기도 먹지 않겠다고 하자 안씨가 같이 가 주겠다고 해서 중국집에 들어갔다. 중국집에서 음식과 술을 시켜서 먹은 뒤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셋 모두 술에 취해 있었다. 사내는 갑자기 양품점으로 들어가더니 넥타이를 하나씩 샀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귤 장수에게서 귤을 샀다. 택시를 타고 화재가 난 곳으로 도착했다. 우리는 불 구경을 했다. 무언가 하얀 것이 날아가 불 속으로 들어갔다. 돈이었다.

 이제 돈을 다 쓰게 되자 서로 헤어지려 했다. 그 사내는 오늘 밤만 같이 있어 달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여관에 같이 가자고 했다. 우리 셋은 각자 따로 방을 썼다.

 다음날 아침 일찍 안씨가 나를 깨웠다. 그 사내가 죽었다고 말해 주었다. 우리는 빨리 여관을 나왔다.

 

 

 

 이 작품은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1960년대적 의식의 방황을 그렸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1950년대의 도덕주의적 엄숙성을 지닌 문학의 경향에서 탈피하여 도시에서 소외당한 현대인의 고독과 비애, 그리고 고립을 그리고 있다. 특별한 사건은 없이 우연한 만남을 이룬 세 사나이의 비현실적 대화의 행동을 통해 전망 없는 세계에 처한 삶의 부조리성을 드러낸다. 소위 4ㆍ19세대가 일으킨 '감수성의 혁명'의 맨 앞 자리에 놓이는 김승옥 문학의 대표작으로, 감각적이며 유희적인 문체가 인간 관계의 단절상을 극적으로 제시하게 되는, 반어적인 성취가 이루어진다. 인간끼리의 진정한 자아로서의 만남이 불가능해진 현대사회의 어두운 뒷모습을 '의도된 어색함의 상황'에 담아 보인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대학원생 안씨와 서적 외판원 아저씨를 1960년대 우리 사회가 가질 수 있는 전형적(대표적) 개인이다. 이 소설은 '나'와 '안'이라는 동갑내기의 선술집에서의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대화를 나누지만 결코 자신의 진심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주관적이고 자의식적인 사소한 대화 만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철저한 개인주의로 무장되어 있다.

 "김형,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십니까?"

 "사랑하고 말구요. 시체의 아랫배는 꿈쩍도 하지 않으니까요. 여하튼... 나는 그 아침의 만원 버스칸 속에서 보는 젊은 여자 아랫배의 조용한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왜 그렇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맑아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움직임을 지독하게 사랑합니다."

 이 두 사람에 비해 삼십 대의 외판원 사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면서 고뇌와 슬픔을 공유하기를 바라나 '나'와 '안'은 받아 주지 않으며 부담스러워한다. 세 사내가 여관으로 와 서도 각각 다른 방을 쓰게 되고, 또 안씨의 경우 외판원 사내가 자살할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면서도 이를 말리지 않은(못하는) 사실에서 인간적 유대가 없는 소외의 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