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 현대소설

이창동 단편소설 『소지(燒紙)』

by 언덕에서 2009. 10. 5.

 

이창동 단편소설 『소지(燒紙)』

 

 

 

 

소설가· 영화감독 이창동(李滄東. 1954 ~ )의 단편소설로 1985년에 발표되었다. 단편소설『소지(燒紙)』는 발표 두 해 뒤에 첫 소설집의 표제로 삼았을 정도로 그의 많지 않은 소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전쟁의 후유증을 소재로 삼고 있는 작품이다.  전쟁은 누구에게나 아픈 기억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몇 년 전 미국과 이라크 전쟁을 보며, 희생되는 이라크 난민들을 향해 눈물을 흘렸고, 전쟁의 참혹함에 다시 한번 분노했다.

 이러한 전쟁의 아픔은 전쟁을 우리 민족의 삶에도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이산가족상봉이 몇 차례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우리 민족이 겪은 상처는 치유될 수 없었다. 전쟁으로 인해 헤어진 가족을 그리워하는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보며 국민 모두가 안타까워하고, 그들이 서로를 그리워하며 눈물 흘리는 모습에 슬퍼한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통일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불안감, 혼란 속에서 갈등을 겪고 있다. 이 작품은 이러한 이념대립으로 인해 상처받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한 가족의 이 이야기는 결국 우리 민족 전체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 <태극기 휘날리며>의 한 장면, 영화의 여주인공인 영신(고 이은주 분)은 보도연맹에 가입되어 있었다는 이유로 총살당하게 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성국의 아버지는 6.25 전란이 일어나자, 공산주의 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로 관련 당국에 붙잡혀 간 후 소식이 끊긴다. 그러나 어머니는 남편이 살아있다고 굳게 믿으며, 언젠가 남편과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린다. 어느 날, 낯선 사람이 성호에 대해 물어보았다는 말을 들은 후, 어머니는 두려움이 일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때 찾아온 시누이는 그녀의 남편이 정신 이상자인데, 오빠가 귀신이 되어 찾아왔다는 말을 한다.

 성국의 어머니는 지금까지 남편의 제사를 지내지 않는데, 그 이유는 남편의 죽음을 확인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살아서 돌아올지 모른다는 일종의 기대감 때문이다. 그녀는 남편이 좌익에 기울어진 사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결혼 후에 알았다. 성국의 아버지는  시누이 남편의 권유로 보도연맹에서 일을 보았는데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성국을 임신한 그녀를 두고 남편은 북한군에게 끌려갔다. 그 후 남편을 보지 못했다. 그녀는 삯바느질로 생계를 유지하며 아들을 키운다. 10년이 지난 어느 날 밤 그녀는 남편을 만나게 해 준다는 사기꾼에게 속아 숲으로 간다. 그녀는 숲에서 사기꾼들에게 돈을 뺏기고 겁탈당한다. 그 후 둘째 아들 성호를 낳는다.

 큰아들 성국은 하급 공무원인데, 빨갱이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승진이 되지 않는다. 대학생이 된 작은 아들 성호는 반정부 활동을 한다. 그래서 형사의 감시를 받는다. 무당병에 걸린 시누이가 성국 어머니에게 찾아와 그녀의 남편이 죽은 것이 틀림없으니 제사를 지내라고 한다. 형사가 그녀의 집에 다녀간 후, 큰아들 성국은 공산주의자인 아버지 때문에 승진도 못하는데 아우까지 반정부 활동을 한다고 작은 아들 성호를 매질한다. 큰아들은 아버지가 살아 있으면서, 가족을 버리고 공산당 활동에 열중한다고 외친다. 그때 그녀는 큰아들이 남편을 얼마나 증오하며 살아왔는지를 처음으로 알게 된다. 성국은 성호가 유인물 상자를 꺼내 들고 들어오자 빨갱이라고 꾸짖는다. 이에 맞서 성국과 성호는 충돌하게 된다.

 싸우는 두 아들을 바라보며 그녀는 울음을 터뜨리고, 성호가 흐느끼며 밖으로 나가자 손자와 함께 그녀는 유인물 상자를 불에 태운다. 그녀는 내용을 알지 못했지만, 속이 후련함을 느낀다. 그리고 아버지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녀를 괴롭혔던 이빨을 뽑아달라고 한다. 뿌리까지 썩은 이빨을 뽑아 그녀는 불 속에 던지고, 손자를 와락 끌어안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녀는 작은 아들 성호가 밖에서 들고 들어 온 유인물을 태우며, 남편이 살아있다는 신념을 버리고, 숨겨온 성호의 출생 비밀을 드러내려고 결심한다. 

 

1980년대 대학가 시위 현장

 

 

『소지(燒紙)』는 영화감독으로도 유명한 이창동의 단편소설이다. 1985년 ≪실천문학≫ 봄호에 발표됐다. 보도연맹사건으로 행방불명된 남편을 30년 넘게 기다리는 어머니, 말단 공무원으로 아버지 탓에 승진하지 못한다고 아버지를 원망하는 맏아들, 운동권 대학생인 둘째 아들. 이들 가족의 갈등을 통해 전쟁이 남긴 상처와 아픔을 드러낸다.

 이 작품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과거의 역사적 체험이 비극으로만 종결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즉, 그것을 상징하는 모티브로 썩은 이빨이 나오는데, 유인물을 소각하는 장소에서 이를 뽑아 던져버리는 행위로 서술되고 있다. 과거 6ㆍ25 이후 분단문학은 가정 가계사의 파괴에 집중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역사적 비극을 극복하고자 하는 경향을 띠었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것도 과거의 역사적 비극과 가계사의 고통을 극복하려는 의지로 보인다.

 

 

 대개, 분단이라는 역사적 비극의 극복은, 1970년대에 들어서 그 특징을 잘 나타낸다. 이는 직접 경험한 전쟁에 대해 제삼자를 통한 객관적 체험을 대비시키는 방법으로 진행됨을 알 수 있다. 직접 체험하지 못한 아들이나 손자를 등장시키게 되고, 따라서 이들이 전쟁을 보는 시각은 한결같이 무비판적인 경향을 띠게 된다.

 그러나 직접 체험한 부모를 통해 그 비극을 전수받고, 동일한 비극의 체험을 깨닫게 되는 데서, 그 극복의 의미를 보여주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도 어머니가 체험한 전쟁의 비극을 아들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후 아들과 함께 그 전쟁의 비극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작품의 미학을 갖게 되는 것이다.

 또한, 가계사의 비극이 전쟁이 미친 영향 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어 온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간접 체험한 후대와의 갈등 속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하며, 극복하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이 점은 보편적인 분단문학의 큰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이창동 (李滄東. 1954~ ) : 영화감독ㆍ소설가. 대구 출생. 1980년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81∼1987년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83년 <전리(戰利)>가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하였으며, 1987년 분단문제를 형상화한 소설 <소지> 발표, 같은 해 <운명에 관하여>로 이상문학상 추천우수상, 1992년 <녹천에는 똥이 많다>로 제25회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93년에 박광수 감독의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의 시나리오와 조감독을 맡으면서 뒤늦게 영화계에 입문하였다. 1996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백상예술대상 시나리오상을 받으며 주목을 받은 그는 1996년 명계남, 문성근, 여균동 등과 함께 이스트필름을 설립하고 1997년 <초록물고기>를 만들면서 영화감독으로 데뷔하였다. 주인공 막둥이를 통해 근대화의 어두운 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 작품으로 백상예술대상 작품상, 신인감독상, 각본상과 영화평론가상 작품상, 대종상 심사위원특별상, 청룡영화제 최우수작품상 등 국내 주요 영화상을 휩쓸었고 밴쿠버영화제에서 용호상을 받는 등 20여 개의 해외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하였다. 1999년 연출한 두 번째 영화 <박하사탕>에서는 한국 근대사의 어두운 면을 치열하게 돌아보았고, 카를로비바리 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 영화는 청룡영화제 최우수작품상ㆍ감독상, 백상예술대상 작품상ㆍ신인감독상ㆍ각본상, 영화평론가상 최우수작품상ㆍ신인감독상, 대종상 최우수작품상ㆍ감독상ㆍ각본상, 밴쿠버영화제 용호상 등을 휩쓸었고,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되기도 하였다. 2002년에는 <오아시스>로 제59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단 3편의 영화로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이창동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이 땅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스크린에 잘 담아낸다는 것이다. 대중적이지 않은 무거운 주제의식을 잘 짜인 구성과 각본에 담아내어 대중들로부터도 사랑받았다. [오월문학] 동인. 2003년 문화관광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