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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박경리 장편 소설 『토지(土地)』

by 언덕에서 2009. 9. 28.

 

박경리 장편 소설 『토지(土地)』 

 

 

박경리(朴景利, 1926∼2008)의 장편소설로 1969년에 제1부를 시작하여 여러 차례 지면을 옮겨가며 연재되어 26년 만인 1994년 8월 15일에 총 5부와 완결 편까지 모두 16권으로 완성한, 원고지 3만 매가 넘는 이른바 '대하소설'이다. 제1부는 1969년 9월부터 1972년 9월까지 만 3년 동안 [현대문학]에 연재되었고 제2부는 1972년 10월부터 1975년 10월까지 역시 만 3년 동안 [문학사상]에 연재되었다. 제3부는 1977년 1월부터 5월까지 [독서생활]에, 1977년 6월부터 1979년 12월까지는 [한국문학]에 연재했으며 동시에 1977년 1월부터 1979년 12월까지 [주부생활]에 함께 실렸다. 이후 제4부의 앞부분은 1981년 9월부터 1982년 7월까지 [마당]지에, 1983년 7월부터 12월까지 [정경문화]에 실렸고, 1987년 8월부터 다음 해 5월까지 [월간경향]에 4부의 나머지가 발표되었다. 제5부는 그 후 4년여의 공백 끝에 1992년 9월 1일부터 1994년 8월 30일까지 약 2년간 607회에 걸쳐 [문화일보]에 연재되었다.

 시간적으로는 갑오년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개혁, 을미왜병(1895) 등이 지나간 직후인 1897년 한가위로부터 광복의 기쁨을 맛본 1945년 8월 15일까지의 한국근대사를 배경으로 하고, 공간적으로는 경남 하동 평사리라는 전형적 한국 농촌을 비롯하여 지리산, 부산, 진주, 서울 등 한반도 전역과 일본, 만주, 러시아 등 동아시아 전역에 걸치는 광활한 국내외적인 공간 배경을 무대로 하였다.

 격변하는 구한말과 일제 강점하에서 최서희를 중심으로 이름 없는 민초의 정서까지 확대하고, 사람답게 사는 문제를 포함한 인간의 존엄성 문제를 민족의 구체적 생활사 속에서 풀어헤친 가족사적 소설인 동시에 역사와 운명의 대서사시로서, 한국인의 삶의 터전과 그 속에서 개성적 인물들의 다양한 운명적 삶과 고난, 의지가 민족적 삶으로 확대된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하여 우리는 삶의 여러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과 전통성을 배울 수 있다.

 문학평론가 김병익은 “아마도 춘원의 <무정> 이후 가장 탁월한 작품 중 하나”이며 "소설로 쓴 한국 근대사”라고 평가했는데,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2008년에도 ‘토지’가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했다. 그는 <토지>야말로 우리 문학에서 대표적으로 볼 수 있는 총체소설이라고 평가했다.

 연세대 국문학과 마광수 교수는 <토지>에 대해 "아무도 안 읽는데 명작"이라고 혹평했다. 아울러 너무 스토리가 너무 길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이 불필요할 정도로 방대한 점, 문장 자체가 일본식 표현이며 방언이 많아서 읽기 지루하다고 평했다.

 1974년에 김수용에 의해 영화화되었으며, 1979년 KBS · 1987년 KBS · 2004년 SBS - TV에 드라마화되었다.

 

영화 [토지], 1974년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ㆍ2부

 하동 평사리의 대지주 최 씨 가문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문을 연다. 최 씨 집안의 안주인인 윤 씨 부인(최치수의 모친)은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갔다가 후에 동학 접주가 되어 처형당하는 김개주에게 겁탈당해 김환(일명 구천이)을 잉태한다.

 그 후 김환은 최 씨 가문으로 잠입하여 하인이 되지만, 최치수의 아내인 별당아씨와 사랑에 빠져 둘은 지리산으로 도망친다. 최 씨 가문의 재산을 탐낸 귀녀와 몰락 양반 김평산의 음모로 최치수는 교살당하고 음모를 꾸민 두 사람은 윤 씨 부인에게 발각되어 사형당한다.

 최 씨 집안의 외가 쪽 먼 친척인 조준구는 윤 씨 부인이 마을을 휩쓴 콜레라(호열자)로 죽자 최 씨 집안의 재산을 강탈하려고 한다. 그는 한편으로 최 씨 집안의 유일한 생존자인 최치수의 외동딸 서희를 몰아내고 마을 사람들을 분열시키면서 일본인들의 힘을 빌려 모든 재산을 손아귀에 넣게 된다.

 여기에 더해 서희와 자신의 아들 병수를 결혼시키려는 음모를 꾸미자 서희는 충직한 하인 김길상 등과 함께 용정으로 탈출한다. 서희는 용정에서 윤 씨 부인이 남긴 금은괴를 자본으로 장사로 성공하여 거부(巨富)가 되고, 하인이었던 길상과 혼인한다. 여기까지가 토지 1ㆍ2부의 개괄적인 내용인데, 국권상실, 봉건 가부장 체제와 신분 질서의 붕괴, 농업 경제로부터 화폐 경제로의 변환 등 1900년대와 1910년 한국 사회의 변화가 소설의 밑그림으로 담겨 있다.

 ● 3ㆍ4부

 1ㆍ2부와 연속선상에 놓이면서도 시대 배경 인물의 변화와 변천에 따라 이야기의 축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3ㆍ4부의 시간적 배경은 20∼30년대인데, 이 시기의 한국 사회의 격변이 소설의 중요한 관심사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3ㆍ1 운동이 실패로 돌아갔음이 확인되고, 일제의 총독 정치가 가혹해지기 시작한 1920년대 식민지 상황의 암울한 분위기가 무겁게 소설을 누르고 있다.

 국권을 빼앗긴 식민지 백성들은 굳건히 발붙이고 살 정착지가 없기 때문에 자연히 여기저기 떠도는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은 소설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소설의 무대가 다변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1부(1897∼1908. 5)에서는 평사리, 2부에서는 용정으로 거의 국한되어 있다시피 한 소설의 무대가 3ㆍ4부에 와서는 서울 부산 진주 평사리, 그리고 국외로는 간도 일대와 일본까지 확대된다. 여기에 민족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등 독립운동의 여러 노선이 제시되며, 지식인들의 사상적 경향과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면밀한 분석도 시도된다.

 이런 가운데 1ㆍ2부의 주역들은 하나둘씩 세상을 떠난다. 용이와 그의 아내 임이네는 병으로 죽고 기생으로 전락한 끝에 이상현의 씨를 낳고 아편 중독자가 되고 만 기화(봉순)는 끝내 서희의 비호와 정석의 애끓는 연정을 뿌리치고 투신자살한다.

 동학 잔당의 세력을 규합하여 독립운동을 벌이려던 김환(구천이)은 고문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용정 공노인의 부인과 조준구의 악착같은 부인 홍 씨도 세상을 뜬다. 이들의 죽음과 함께 <토지>에서는 이들의 후손들이 점차 주역을 차지한다.

 서희의 두 아들 윤국과 환국, 용이의 아들 홍이, 조준구의 아들 꼽추 조병수 등이 소설의 전면으로 나온다. 이와 함께 3ㆍ4부에 오면 새로운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대부분 인텔리 계층으로 작가는 이들을 통해 희망 없는 식민지 상황의 암울함을 드러낸다. 임역관의 딸 명빈과 명희를 비롯해 귀족층의 조용하, 급진적 사회주의 사상가 서의돈, 극작가 권오송, 성악가 홍성숙, 조선에 대해 동정적인 일본인 오가다 지로, 유인실, 강선혜, 황태수 등과 진주 쪽의 박효영, 허정윤 등이 그러하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극단적 양상으로 치닫는 1940년대를 배경으로 광복의 감격까지를 다루고 있는 5부는 <토지>의 대단원의 장이다. 송관수의 죽음, 길상을 중심으로 한 독입 운동 단체의 해체, 길상의 관음 탱화 완성, 오가다와 유인실의 해후, 태평양 전쟁의 발발, 예비 검속에 의한 길상의 구속, 양현 영광 윤국의 어긋난 사랑 등이 이어지면서 대하소설 <토지>는 거대한 마침표를 향하여 달려간다.

 

 

소설가 박경리 (朴景利1926&sim;2008)

 

 

 이 작품은 우리 근대 민족 민주 운동의 시발점인 갑오농민전쟁(동학혁명) 직후부터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까지, 즉 1897년부터 1945년까지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등장인물도 많고 또 계보도 꽤나 복잡하다. 등장인물의 삶을 이끌어가는 사상도 불교, 천도교, 기독교 등의 종교와 독립 투쟁의 각 사상이 총망라된 것이어서 도움 주는 글 없이는 도대체 뭐가 뭔지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많다. 글을 잘 이해하기 위해 식민지 민족 운동사에 대해 간단히 공부한다면 좋을 듯싶다.

 이 작품은 작품 그대로 하나의 역사이다. 더 나아가 역사에서 다루기 힘든 민중의 생활상이 생생한 언어와 재미있는 구성으로 실감 나게 그려진다. 역사를 통해 숲을 본다면 이 책 <토지>를 통해서는 숲뿐 아니라 나무와 꽃과 새들의 노랫소리까지 보고 들을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말하는 ‘토지’는 농사짓고 집 짓고 사는 ‘땅’이 아니다. 봉건 양반 사회가 붕괴되는 현장이며, 무식한 무지렁이 농민들과 하층 천민들이 자기 삶을 되새겨 일어나는 발판이다. 침 흘리며 다가오는 침략자의 먹이이며, 피 흘리며 지켜가는 민중들의 한 덩어리다. 다양한 인물과 삶의 형태이며 가치관이다. 이는 곧 민중들의 삶이 자라나는 ‘생명의 터전’이며, 민중들의 삶을 이어가는 살붙이와 피붙이인 ‘조국’이다.

 이 작품의 이야기는 1897년 진주 부근의 평사리 마을을 중심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평사리 사람 말고도 이 글에는 만주 용정의 사람들, 서희의 자식인 환국, 윤국이 세대의 젊은이들, 서울의 귀족과 지식인, 동학교도에서 의병 투쟁으로 다시 독립운동으로 의로운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 중의 신분으로 운동에 가담하는 불교인들, 조국을 배 반하고 일제의 끄나풀이 되어 온갖 악한 짓을 서슴지 않는 친일 모리배 등 무수한 삶들이 등장해 다양한 사상과 인생의 이모저모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