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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황순원 장편소설 『카인의 후예』

by 언덕에서 2009. 9. 22.

 

 

황순원 장편소설 『카인의 후예』 

 

 

 

황순원(黃順元, 1915∼2000)의 장편소설로 1953년 9월부터 1954년 3월까지 [문예]에 연재되었다. 1954년 중앙문화사에서 단행본으로 간행하였으며 제2회 자유문학상 수상작이다. 1968년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카인(Cain)은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의 맏아들. 아벨의 형이다. 카인은 농부, 아벨은 목자였다. 카인은 농산물을 야훼신에게 바치고 아벨은 가축을 제물로 바쳤는데, 신은 아벨이 바친 제물은 반기고,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아우 아벨을 질투하여 죽이고 말았다. 노한 야훼는 그를 저주하여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게 하였다. 그러나 하느님은 세상 사람이 그를 죽이지 못하도록 그에게 표를 찍어 주었다.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으로 알려져 있는 이 사건은 인간의 질투심과, 질투가 살인으로 이어지는 과정의 심리를 잘 묘사하고 있는데, 어쨌든 카인은 인류 역사에서 살인자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다.

 이 소설은 해방 뒤 이른바 ‘토지 개혁’을 중심으로 한 북한의 실정을 그린 작품이다. ‘카인’은 자기 동생을 죽인 인류 최초의 살인자다. 어제의 주인이 오늘의 종이 되고, 어제의 친구가 하루아침에 원수가 되는 민족의 비극을 사실적인 수법으로 그려 나간 것이 이 작품이다. 광복 직후 북한의 공산정권 치하에서 정치적 시련을 겪던 끝에 자유를 찾아 남하할 것을 결심하게 되는 한 지식인의 삶의 과정을 통해 당시의 이념대립의 격동적 현실을 그린 저자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소설은 작가에게 유년기에서 성숙기로의 통과제의를 기조로 하는 초기 단편의 시의 세계를 청산하고 근원적인 악의 상황 속에서의 인간의 가치를 물음으로써 역사적 현실을 인식하게 하여준다. 그의 장편소설의 기반을 확고히 다지는 계기가 된 작품이다.

 

 

영화 <카인의 후예 Descendants of Cain> , 1968 제작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박훈은 평양에서 공부하는 동안 조부와 아버지의 사망으로 지주가 되었고, 도섭 영감은 이십여 년 동안 훈이네 토지를 관리해 온 마름인데 박훈은 마름의 딸 오작녀를 좋아해 왔다. 훈이 고향으로 돌아와 배우지 못한 소작인의 자식들을 위해 야학을 운영하게 되자 오작녀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갔음에도 불구하고 훈의 집에 기거하며 그의 수발을 들어주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그러나 해방이 되어 북한 세력이 들어서면서 훈은 야학을 압수당하고, 도섭 양반은 마름을 한 과거를 묻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지주와의 관계를 끊으라는 군당부의 압력을 받아 토지 개혁 운동에 앞장을 선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민대회가 열리고 지주인 박용제와 윤주사가 반동분자로 몰려 숙청(肅淸)을 당하지만 훈은 오작녀의 도움으로 숙청을 면한다. 그러나 딸의 소행으로 인해 훈의 토지를 갖지 못하게 된 도섭 영감은 훈의 할아버지 송덕비를 도끼로 때려 부순다. 훈은 사촌 동생 혁을 통해 오작녀와 월남 계획을 세운다. 그는 순안으로 돌아오다가 도섭 영감이 주도했던 지난 농민대회 때 숙청당한 삼촌 박용제를 본다. 사동 탄광에 끌려갔다가 탈출한 용제 영감은 트럭에서 몸을 날려 자살한 것이다. 오작녀와 순안을 떠나려고 했던 훈은 도섭 영감을 죽이기로 작정한다.

 이즈음 아들 삼득이가 박용제 영감의 묘자리를 파 주었다는 이유로 도섭 영감은 농민 위원장 자리에서 숙청된다. 산으로 올라가 훈과 맞선 영감은 훈의 칼에 옆구리를 찔린다. 영감은 이에 낫을 휘두르나 항상 훈의 신변을 걱정해 미행해 오던 오작녀의 동생 삼득이 이를 저지하다가 상처를 입는다. 영감은 삼득과 실랑이를 하다가 살의를 버린다. 삼득이가 훈에게 오작녀를 데리고 빨리 떠나라고 말하자, 정신을 차린 훈은 오작녀와 함께 양짓골을 떠난다.

 

 

영화 <카인의 후예 Descendants of Cain> , 1968 제작

 

 

 이 작품은 고향회귀와 식민지시대의 결산과 함께 해방문학의 주요 제재였던 남북분단 이후의 고통을 그림으로써 고발문학적 성격을 가지기도 한다. 황순원의 첫 장편소설인 〈별과 같이 살다〉(1950)에서 단순히 주인공의 좌절감의 대상으로 그려졌던 배경적 요소가 이 작품에서는 인간의 존재를 위협하는 장애 또는 거부의 상황으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급박한 격동의 시기를 배경으로 삼음으로써 오작녀의 서정적 사랑을 대비적으로 강조하였고, 피비린내 나는 숙청과 오작녀의 사랑, 서사와 서정, 겨울과 봄, 원죄와 속죄 등의 양면성이 이 작품을 관류한다. 박훈과 오작녀의 사랑은 역사적 인식의 추구를 원하는 지성인에게는 시대적 상황의 기대에 빗나간 비겁한 태도라고 지적된다.  

 또 한편으로는 인간의 선과 사랑이 악을 위시한 모든 것을 포용함으로써 승리를 구가하게 한 근원적 정서로 표출되었다고 긍정되기도 하였다. 공산주의라는 이념이 부르는 상황적인 악이, 천성적으로 선하나 다만 기회주의적 인물인 도섭 영감을 살기로 충만시키면서 주인공 훈은 관조적이고 수동적인 인간형에서 점차로 카인의 피가 되살아난 행동형의 인간으로 변신한다.

 

 ♣

 

 

 남이 아버지 집에서의 장례 장면에서 남이는 동생과 아귀다툼을 벌이며 밥을 우겨 넣는다. 이는 가난한 농민들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병은 봐주지 않는다고 소문이 난 김 의사 역시 토지 개혁을 제기하는 원인이다. 빈부의 격차가 지나치게 벌어져 버린 것이다. 이를 통해 토지 개혁의 과정에서는 자발적인 듯이 보이나 김 의사의 행동하는 모습으로 미루어 볼 때, 결코 자발적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들 경제적인 권리를 양도하는 것이 결코 자발적이 될 리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작가는 흰 광목이 관에 둘러쳐진 것이 아무래도 낯설다는 느낌으로써 지나치게 어울리지 않는 형태로 제시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인간의 근원적인 악에 내몰린 훈은 그 악을 대신하여 스스로 속죄양이 될 각오를 하지만 이들을 구제하는 것은 오히려 사랑과 관습에 구속되어 끝까지 자기동일성을 지킬 수 있었던 오작녀와 삼득이, 당손이 할아버지들 쪽이다. 작품의 중반 이후부터 전개되는 피와 살육·자살·전염병으로 인한 죽음을 빚는 인간의 근원적인 악의 문제는 그 뒤 〈나무들 비탈에 서다〉(1960) 등의 전쟁이라는 극한상황 속에서의 인간구원의 문제를 다룬 일련의 작품에서도 지속되었다. 1950년대 한국 전후문학에서 문학사적 의미를 가지는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