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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톨스토이 장편소설 『안나 카레니나(Анна Каренина)』

by 언덕에서 2015. 2. 2.

 

 

 

 

톨스토이 장편소설 『안나 카레니나(Анна Каренина)』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1828∼1910)의 장편소설로 1875∼77년 사이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에는 모두가 19세기 러시아 귀족계급의 결혼생활(브론스키와 도리, 레빈과 키티, 카레닌과 안나)이 그려져 있다. 동시대 작가인 도스토예프스키로부터 “완벽한 예술 작품”이라는 평가와, 역시 러시아 출신 소설가인 나보코프로부터 “톨스토이 스타일의 정점”이라는 극찬을 받은 바 있는 작품이다. 2007년 《타임》지에서 현대 작가 12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을 통해 “지금까지 쓰인 가장 훌륭한 소설”로 뽑히기도 했다. 톨스토이 자신도 『안나 카레니나』를 “나의 진정한 첫 소설”로 여겼다고 한다.

 1872년 1월, 톨스토이는 이웃에 살던 비비코프의 아내가 남편과 미모의 가정교사 사이를 질투한 나머지 달리는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한 사건을 접하게 되었다. 이 사건이 <안나 카레리나>의 집필 동기 중의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전쟁과 평화><부활>과 함께 톨스토이의 3대 걸작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에는 농노제도 철폐 후의 지주ㆍ귀족 계급의 나아갈 방향과 당시의 도시ㆍ농촌의 각종 사회상이 힘찬 필치로 그려져 있다. 남자 주인공 브론스키는 톨스토이 자신의 청년시절의 모습이라는 설도 있다.

 『안나 카레니나』는 1935년 그레타 가르보를 주연으로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된 이후 비비안 리, 소피 마르소가 주인공 ‘안나’ 역을 맡는 등 계속해서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 소설은 1878년 처음 단행본으로 출간된 이후, 영화와 TV 드라마, 발레,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 여러 예술 장르로 재탄생하면서 영원한 고전으로서의 가치가 계속해서 입증되고 있다. 

 

영화 [ 안나 카레니나 (Anna Karenina) ], 1935년 제작-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아름다운 부인 안나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고관 카레닌에게 시집와서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안나는 오빠 브론스키와 올케 도리이에게 불어닥친 가정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페테르스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떠났다. 이때 기차 안에서 청년 장교 브론스키를 만나는데, 브론스키는 모든 사람이 도리이의 여동생인 키티의 결혼 상대자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한편, 브론스키의 친구 레빈이 키티에게 청혼을 하고, 브론스키를 사모하고 있던 키티는 그의 프로포즈를 거절한 상태였다. 그러나 브론스키는 안나에게 첫눈에 반해 그녀를 쫓아 페테르스부르크로 달려갔다.

 처음에는 브론스키에게로 향하는 마음을 억제하던 안나도 그에 대한 사랑이 깊어짐을 막을 수 없어 불륜의 사랑을 하게 되었다.

 브론스키는 안나가 아이를 갖게 되자 카레닌과 헤어질 것을 요구하지만, 그녀는 외아들인 세리오자를 생각하면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러던 중 브론스키가 출장하는 경마에 남편과 함께 가게 된 안나는 브론스키가 낙마하자 정신을 잃고 그를 염려함으로써 남편에게 의심받게 되었다. 안나는 결국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브론스키와의 일을 남편에게 고백했다. 그러나 카레인은 안나가 모든 것을 고백했음에도 불구하고 체면을 손상시킬 것을 염려하여 이혼에 동의하지 않았다.

 한편, 실연의 상처를 입은 키티는 독일 여행을 마치고 러시아로 돌아왔으며, 레빈 역시 키티를 잊기 위해 농장에서 열심히 일하지만 치유할 길은 없었다. 그는 사업차 유럽 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모스크바의 브론스키의 집에 들렀다. 거기에서 키티를 본 레빈은 그녀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음을 느끼며 그녀에게 구애하고, 키티 또한 레빈의 성실한 인품을 존경하여 두 사람은 축복 속에 결혼했다.

 이윽고 안나는 여자아이를 낳고 산욕열로 중태에 빠져 남편과 브론스키의 화해를 요구했다. 카레닌은 죽음과 싸우는 안나에게 감동하여 모든 것을 용서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회복된 안나는 남편에게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이에 절망한 브론스키는 권총 자살을 기도하지만, 목숨을 건지고 안나에게 이별을 고하러 가는데, 재회한 그들은 감정의 역류를 피하지 못해 함께 유럽으로 도피했다.

 오랜 유럽 여행에서 러시아로 돌아온 두 사람은 사교계에서 따돌림을 받게 되자 그들의 따가운 눈총을 피해 브론스키의 영지로 갔다. 그러나 천성적으로 활동적이던 브론스키는 사골에서의 생활을 견딜 수 없어 차츰 밖에 나가는 일이 많아졌다. 가정도, 아이도, 사회적인 지위도 모두 다 내팽개치고 브론스키만을 삶의 보람으로 여긴 안나는 오로지 육체적 쾌락으로 그를 붙잡아 두고자 하며, 그녀의 사랑은 점차 이기적으로 변해갔다.

 그녀에 대한 사랑이 변함없었던 브론스키도 자유를 속박하려는 그녀가 가끔씩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게다가 그의 모친은 아들의 혼담을 남몰래 계획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눈치챈 안나는 살아갈 희망을 잃고 철도에 몸을 던져 버렸다. 그녀가 자살한 지 2개월이 지난 후 브론스키는 세르비아의 독립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의용군을 편성해 전쟁터로 떠난다. 

 

영화 [안나 카레니나 (Tolstoy's Anna Karenina)] , 1948년 제작 -

 

 톨스토이즘은 그리스도교를 배제하고 사해동포 관념에 투철한 원시 그리스도교로 복귀하여 검소한 생활의 영위, 사랑의 정신에 의한 전 세계의 복지에 기여하려는 사상이다. 이 작품의 부제로 되어 있는 성경 말씀 ‘복수는 내가 하리라. 내 이를 보복하리’라는 신의 이름을 빌어서 작자 톨스토이가 이 불륜의 사랑에 대하여 가한 제재라고도 볼 수 있다.

 톨스토이의 장편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19세기 러시아 사회의 풍속도와 여성의 애정 심리를 밀도 있게 묘사한 명작으로,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대표작이자 <전쟁과 평화>, <부활>과 더불어 톨스토이의 3대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톨스토이의 신념과 가치관은 물론 당대의 사회상과 인간의 감정까지 집약되어 있는 이 작품은 톨스토이의 작품 중에서도 대중적, 문학적으로 정점에 이른 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톨스토이가 지천명을 앞두고 마무리한 『안나 카레니나』는 1878년 출간된 이후, 영화와 드라마,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 여러 예술 장르로 재탄생하면서 톨스토이의 위대함과 작품의 가치를 증명시켰다. 50세 이후 톨스토이는 작품 활동보다 사상가로서 이전과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안나 카레니나』에는 작가로서의 그의 결혼관, 종교관, 인생관, 나아가 세계관까지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들이 담겨 있다.

 

 

 이 작품은 『전쟁과 평화』에서 보여준 러시아 사실주의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면서도, 『부활』에서 보이는 계몽적이고 종교적이고 사회참여적인 색채도 지니고 있다. 그 중간에 쓰인 이 소설은 톨스토이 문학세계의 전반기와 후반기가 맞닿은 곳에 놓여 있다. 특히 톨스토이는 이 무렵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에 대한 무상함으로 정신적 갈등을 겪었는데, 작품 곳곳에서 그러한 고뇌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뛰어난 구성력과 사실적이면서도 미적인 묘사, 당대의 사회상을 반영한 시대정신과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이 돋보인다.

 소설 속 레빈의 삶에는 19세기 러시아가 녹아있다. 톨스토이는 수많은 귀족의 사유와 행동을 통해 당시 귀족사회의 모순과 문제를 비판하고 새로운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레빈이 노동의 가치를 중시하는 모습에서 잘 알 수 있다. 귀족이자 지주였던 레빈은 당시 농부들의 자발적인 노동의지와 만족을 끌어내기 위해 노동에 참여하고 모든 일을 조합식으로 변경한다. 이러한 방법은 보편적 행복을 중시하고 만인의 부를 위한 조화와 일치의 방법이기 때문에 더욱 가치 있다.

 이와 같이 ‘안나 카레니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여러 심오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마지막 8부에는 톨스토이가 이 작품에서 보여주려는 의도가 잘 담겨 있다. 레빈이 사유한 ‘이런저런 생각은 그를 의혹으로 이끌어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분간하지 못하게 방해하였지만 생각하지 않고 그저 생활하고 있을 때는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 올바른 재판관의 존재를 끊임없이 느꼈고, 그 재판관이 가능한 두 행위 가운데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지 판가름해 주었다. 또한 '인생에서의 자기 특유의 일정한 길을 굳게 지키면서 생활하고 있었다’라는 부분처럼 삶의 순간을 올바르게 판단해 나가고 내면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함을 제시하고 있다.

 

 

 

  1. 농노제(農奴制)는 일반적으로 봉건제 아래 이루어지는 통치 제도이다. 농민은 자신이 경작하는 토지에 구속되어 부역, 공납과 의무를 완수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