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슨 장편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The 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
영국 시인, 소설가인 R.L.B.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1850∼1894)의 괴기소설로 1886년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인간의 다중인격1 또는 이중인격적인 이상(異狀) 성격을 가리키는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다. 이중인격이란, 한 사람이 두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인격을 갖고 그것을 교대로 표출해 내는 상태를 말한다. 현실에서 채워지지 않았던 욕구, 소망이 의식에서 분리, 독립하여 의식의 한 귀퉁이에 남아 있다가 이중인격의 한쪽으로 굳어지는 일종의 정신 질환이다.
학식이 높고, 자비심이 많은 지킬박사는 인간이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선악의 모순된 2중성을 약품으로 분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상에서 약품을 만들어 복용한 결과, 악성을 지닌 추악한 하이드로 변신하였다. 그리고 점차 악이 선을 이겨, 약을 먹지 않아도 하이드로 변신하여, 지킬박사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 마침내 하이드는 살인을 하고 경찰에게 쫓겨, 체포되려는 순간 자살하여 모든 것을 유서로 고백한다.
이 소설은 영국과 미국에서 스티븐슨의 명성을 확립하는 데 가장 기여한 작품이다. 제목에 있는 이름들이 선과 악, 그리고 분열된 개인 인격의 동의어가 되어 이미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언어가 되었다는 것만 보아도 이 작품의 대중적 인기를 알 수 있다. 이 책은 오늘날에도 비길 바 없이 뛰어난 작품이며 놀라울 정도로 탁월한 기량을 자랑하는 역작이기도 하다. 스티븐슨은 또한 영어를 사용한 작가들 중에서 가장 교묘한 솜씨를 가진 기교가들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한마디로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이른바 흑마법(black magic: 나쁜 목적을 위해 악마의 힘을 빌어서 사용하는 마법)의 힘을 통해 문학으로 옮겨진 가장 격렬하고 오싹한 멜로드라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헨리 지킬 박사는 유명한 의학자이자 왕립협회 회원으로, 학식이 높고 자선심이 풍부한 사람이다. 그러나 인간 내부에 있는 선ㆍ악의 모순된 두 감정을 약품으로 분리해 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약품을 만들어 복용한 결과, 악하고 추한 하이드로 변하였다. 법률 고문이면서 오랜 친구인 아타슨 변호사는 이를 지켜보고 동료 의학자인 라니용 박사에게 상담해 보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그 후 1년이 지나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다. 안개 낀 어느 밤, 하이드는 템즈 강변에서 우연히 만난 카알 상원의원을 말다툼 끝에 지팡이로 때려죽인다. 사건 직후에 버려진 지팡이와 지킬에서 모습을 감추라는 내용의 하이드의 편지를 보고 필적 감정가는 이것이 지킬의 것임을 밝혀낸다.
2개월 후, 라니용 박사는 ‘지킬이 사망 또는 실종할 때까지 개봉해서는 안 된다’라고 쓴 유서를 아타슨 변호사에게 남기고 병사한다. 이 때 지킬이 하이드에게 살해당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아타슨 변호사가 뛰어가 보니, 실험대 위에 지킬의 의복을 걸친 하이드의 시체와 아타슨을 상속인으로 한 유언장, 지킬의 <고백>이 함께 남겨져 있었다. 아타슨은 먼저 라니용의 유서를 읽는데, 카알의 살인범인 하이드가 바로 지킬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충격으로 인해 죽게 되었음이 밝혀진다. 지킬의 고백서에는 그 동안 일어났던 일들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었고, 하이드가 다시 지킬로 돌아가려면 두세 배의 약이 필요한데, 약을 구할 방도가 없어서 자살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조절 장애는 통제력 상실과 관련된 장애이다. 충동 조절 장애, 분노 조절 장애(감정, 정서 조절 장애) 등이 있다.
충동조절 장애는 병적(病的)으로 도박에 몰두하는 것과 같이 본능적 욕구가 지나치게 강하거나 자기방어 기능이 약해져서 스스로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정신 장애이다.
분노조절 장애는 최근 곳곳에서 일어나는 갑(甲)의 횡포가 사회의 문제점으로 떠올랐을 때 주목받게 되었다. 우월한 지위를 앞세워 말도 안 되는 횡포를 부리며 세상을 더욱 각박하게 만드는 갑질. 전문가들은 갑의 횡포에 관한 수많은 원인을 제시하는데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분노조절 장애다. 조울증이라 불리는 감정조절 장애 역시 스스로를 조절 못하는 증상이다.
지킬 박사가 하이드로 변신한 사실은 조절 장애를 은유한다. 오늘날 이중인격이라 하면 이 작품의 제명을 연상할 정도로, 이 작품은 현대인의 성격분열을 암시한다. 그 착상이 특이하고, 근대적인 스릴도 있어 작자의 유니크한 작품으로 평가되나 인간이 지닌 대립모순의 심리적 추구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많았다. 특이한 줄거리와 소재로 현대인의 성격 분열을 미리 암시한 괴기소설이지만 모순적인 이상 심리에 대한 세밀한 심리 분석이 부족하므로 뛰어난 작품이 아니라는 심리학계의 지적도 많았다.
흔히 이 작품에 대해 지킬을 ‘선인’, 하이드를 ‘악인’으로 딱 잘라 구분해서 선인과 악인이 수시로 변모, 교체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지킬 박사는 대단한 선인이라기보다 평범한 한 남자에 불과하다. 즉, 내면에 악에 대한 욕구를 품고 있다가 그것에 가끔 굴복하고 마는 보통 우리들의 모습이다. 지킬이 남과 다른 점은 내적 이중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약의 힘으로나마 악한 본성을 제거하려 노력했다는 점이다. 불행하게도 인간의 본성을 변화시키려 한 것은 신의 권능에 대한 도전, 즉 자연의 순리에 벗어나는 것이므로 비극을 맞게 되는 것이다.
약의 힘으로 순수한 악인이 된 하이드는 보통의 문학 작품들 속에 나오는 악인들과 달리, 수십 년간 지킬의 내부에서 악한 성향이 억제되어 왔기 때문에 외모까지 발육 부진의 상태로 묘사되고 있다. 영혼과 육체를 하나로 연관지어 파악한 작가의 생각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작가가 전하려 하는 교훈은 뚜렷하다. 선과 악 그 자체의 분열을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악한 충동이 애초에 얼마만 한 크기로 존재했든 간에 그대로 방치해 두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 드러난 선과 악의 갈등은 지킬과 하이드 사이의 갈등이라기보다는, 지킬의 마음속에 있는 선한 충동과 악한 충동 사이의 싸움이라고 보아야 한다.
♣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두 주인공, 즉 존경받는 신사 지킬과 억압과 체면을 벗어던진 하이드 씨의 관계를 해석하는 방법은 실로 다양하다.
프로이트식으로 말한다면, 성공한 중산층 신사인 지킬의 억압된 자아인 하이드가 맨얼굴로는 감히 일견조차 못 했던 이드의 세계를 탐색하고 나서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자상한 아버지와 방종한 아들의 관계를 다룬 이야기 혹은 자신을 잘못된 범으로 예속해 버린 사회 전반에 대해 무조건적이고도 무차별적인 복수를 행하는 사회 소설로도 읽을 수 있다.
점잖은 겉모습에 싸인 욕정 가득한 내면을 꿰뚫는 묘사로 빅토리아 시대의 위선과 타락에 관한 최고의 안내서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 그 어떤 의미이든, 주류 사회의 관점을 벗어나 그동안 관습적으로 억압되고 침묵되었던 여백을 읽어 내려갈 수 있다.
부유하고 전통적이며 매우 종교적인 도시,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유분방하고 매음굴, 어두운 인물들, 은밀한 거래로 가득한 에든버러. 스티븐슨이 태어나 성장한 이 도시의 극명한 대비는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을 뿐 아니라 이후 그의 작품에 독특한 테마를 제공했다. 또한 선천적으로 허약했던 탓에 항해와 여행을 즐겼던 젊은 시절은 그에게 또 다른 상상력의 원천이 되었다.
분열된 자아라는 개념을 이 세상에 최초로 내놓았던 작품으로, 처음 출간 당시 ‘선정적인 싸구려 소설’ 정도로 치부되었다. 이 소설은 세간의 존경을 받는 지킬 박사와 ‘저주받아 마땅한 젊은이’ 에드워드 하이드의 이상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자, 안개 낀 런던의 살인자 추격전이다. 또한 마지막에 가서야 밝혀지는 하이드의 진짜 정체성은 이 작품이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 존재하는 악마적 성향에 대한 소름끼치는 탐구서라는 점을 알 수 있게 해준다.
- 다중성격이라고도 한다. 이때 각각의 성격은 다른 성격을 배제하면서 번갈아 한 개인의 의식 속에 자리잡을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각각의 성격들 모두가 다른 성격을 서로 의식하지 못하면서 공존하기도 한다. 좀더 일반적인 정신장애에서는 사람의 의식을 근본적으로 지배하는 하나의 성격이 존재하면서, 부차적인 성격이 의식을 통제하고 있는 동안에 일어나는 일들은 기억하지 못하지만(기억상실증), 부차적인 성격은 지배적인 성격의 존재와 행동을 알 수 있으며 심지어 마치 자신이 다른 사람이기나 한 것처럼 지배적 성격에 대해 논평하거나 비판을 가할 수도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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