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서 온 어머님 편지
김규동
꿈에 네가 왔더라
스물세 살 때 훌쩍 떠난 네가
마흔일곱 살 나그네 되어
네가 왔더라
살아생전에 만나라도 보았으면
허구한 날 근심만 하던 네가 왔더라
너는 울기만 하더라
내 무릎에 머리를 묻고
한마디 말도 없이
어린애처럼 그저 울기만 하더라
목놓아 울기만 하더라
네가 어쩌면 그처럼 여위었느냐
멀고먼 날들을 죽지 않고 살아서
네가 날 찾아 정말 왔더라
너는 내게 말하더라
다신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겠노라고
눈물어린 두 눈이
그렇게 말하더라 말하더라.
- 시집 <죽음 속의 영웅> ( 근역서제 1977)
냉전의 이데올로기가 거의 사라지고 민족의 분단이 부재한 것이 오늘날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이산가족의 슬픔이 남아있는 기구한 민족이 우리겨레이다. 1925년생으로 함경북도 경성이 고향인 김규동 시인(1925 ~ )은 김일성대학 출신이다. 그가 김기림의 영향으로 월남한 이후 곧장 6.25전쟁이 터지게 된다. 단신으로 서울로 남하하게 된 탓으로 홀어머니와 두 누님과 동생과의 연락이 끊겨버린 것이다. 그리고 노년이 된 시인은 생사를 알 수 없는 어머니를 아직도 만나지 못하고 있다.
위의 시는 분단으로 인해 헤어진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시이다. 화자가 '내'가 아니라 '어머니'가 되어 있다. 물론 이 편지는 북에 있는 어머니가 실제로 인편을 통해 남에 있는 아들에게 직접 보낸 편지가 아니다. 생사를 알 수 없는 어머니가 만약 아들인 자신에게 편지를 보낸다면 이런 내용이 되지 않겠느냐는 시인의 마음이 담긴 시이다.
'멀고먼 날들을 죽지 않고 살아서 / 네가 날 찾아 정말 왔더라 ' 는 구절을 통해 시인은 앞으로 통일이 되어 더 이상 혈육의 헤어짐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김규동 시인의 다른 시 '천(天)'을 보도록 하자.
천(天)
규천아, 나다 형이다 (전문)
규천(奎千)은 1948년 1월 평양에서 헤어진 아우 이름이다. "규천아, 나다 형이다" 이 한 마디 불러주려고 얼마나 많은 시간 하늘을 올려보고 그리워했겠는가. 사람이 살며 하늘을 바라보아야 보이는 그런 사람, 바다를 보아야 보이는 사람, 그 한 사람 가슴에 묻고 산다는 일이 얼마나 무거운 짐이 되는지 격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정치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국회의원은 세비를 받고 정쟁으로 허송세월하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는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헤어짐의 업보를 타고나는 존재는 아닐지 모르겠다. 아,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시(詩)를 읽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니오 / 신동엽 (0) | 2009.08.24 |
---|---|
데킬라 / 문혜진 (0) | 2009.08.22 |
낙화(落花) / 조지훈 (0) | 2009.08.20 |
연보(年譜) / 이육사 (0) | 2009.08.18 |
병상록(病床錄) / 김관식 (0) | 2009.0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