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보(年譜)
이육사
'너는 돌다릿목에서 줘 왔다'던
할머니의 핀잔이 참이라고 하자.
나는 진정 강언덕 그 마을에
버려진 문받이였는지 몰라.
그러기에 열여덟 새 봄은
버들피리 곡조에 불어 보내고
첫사랑이 흘러간 항구의 밤
눈물 섞어 마신 술, 피보다 달더라.
공명이 마다곤들 언제 말이나 했나
바람에 붙여 돌아온 고장도 비고
서리 밟고 걸어간 새벽 길 위에
간(肝) 잎만이 새하얗게 단풍이 들어
거미줄만 발목에 걸린다 해도
쇠사슬을 잡아맨 듯 무거워졌다.
눈 위에 걸어가면 자욱이 지리라.
때로는 설레이며 바람도 불지.
- [시학] 창간호(1939. 4)
이육사 시인(1904 ∼ 1944) 은 시작(詩作)활동 못지않게 독립투쟁에도 헌신한 분으로 전 생애를 통해 열 일곱 번이나 일제에 투옥되었다. 요즈음의 말로 하자면 이육사 시인의 본업(本業)은 독립운동이고 부업(副業)이 시작(詩作)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광야>와 <절정>에서 보듯이 그는 식민지하의 민족적 비운(悲運)을 소재로 삼아 강렬한 저항의 의지를 나타내고, 꺼지지 않는 민족의 의지를 장엄하게 노래한 대표적인 민족시인이다.
이 시는 육사의 시에서 쉽게 떠올리게 되는 그러한 강인한 남성적 어조 대신 화자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고통과 질곡, 불안한 의식 등을 잔잔한 어조로 솔직 담백하게 펼쳐 보여 주는 소품(小品)이다. 주지하다시피 육사는 시인이면서도 40평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온몸을 바친 우국지사요 독립 운동가였다. 국내는 물론 만주와 중국 대륙을 전전하며 항일 독립 운동에 모든 것을 바친 그는 자그마치 열일곱 번이나 일경에 체포되어 구금, 투옥 생활을 했으며, 결국은 광복을 불과 1년 정도 앞두고 낯선 중국 땅에서 옥사했다. 이같이 화려한 항일 무장 투쟁 속에서도 그는 한 인간으로서 겪던 고뇌와 좌절을 솔직히 표출한 시를 발표하기도 하였는데, 그런 특징을 드러내는 작품으로는 위의 <연보>와 <노정기(路程記)> 이다.
위의 시 <연보>는 각 연이 2행으로 된 전 8연의 구성으로, 육사시 특유의 정형성을 보여 주는 이 시는 내용상 크게 두 단락으로 나누어진다.
1∼4연의 앞 단락은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과 흘러간 세월의 덧없음을 표출하고 있다. '너는 돌 다릿목에서 줘 왔다던 / 할머니의 핀잔이 참이라고' 생각하는 화자에게서 어린 시절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던 이야기를 순진무구하게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들도 우리 아이들도 이런 장난기 어린 어른들의 말을 듣고 자라났다. 화자는 나아가 '강 언덕 그 마을에 / 버려진 문받이였는지 모른다‘고 인식할 뿐 아니라, '열여덟 새 봄은 / 버들피리 곡조에 불어 보냈다'고 하면서, 고통과 슬픔 속에 흘러가 버린 자신의 삶을 슬픈 눈으로 되돌아보기도 한다. 그도 인간이어서 그랬던 것일까. 강한 신념의 시인답지 않은 의외의 어조를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화자는 마침내 '첫사랑이 흘러간 항구의 밤 / 눈물 섞어 마신 술, 피보다 달더라'라며 극한적인 고통과 슬픔을 토로하게 된다.
5∼8연의 뒤 단락은 현재의 삶 속에서 겪는 고통과 질곡이 나타나 있다. 힘겨운 독립 투쟁의 유랑 생활을 하는 그이기에 '바람에 붙여 돌아온 고장도 비어' 있을 뿐이다. 또한 '서리 밟고 걸어간 새벽 길 위에 / 간잎만이 새하얗게 단풍이 들어'라는 구절에서 '서리'는 그의 생활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독자들로 하여금 깨닫게 해 주며, '단풍'은 그가 자신의 삶을 이미 퇴색해 버린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거미줄만 발목에 걸린다 해도 / 쇠사슬을 잡아맨 듯 무거워지'는 고통의 극한에 자신이 처해 있음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끝내는 자신의 삶에 대해 슬픈 긍정과 자기 위안을 보내는 비장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민족시인 이육사는 1941년 폐를 앓아 성모병원에 입원, 잠시 요양했으나, 독립운동을 위해 1943년 초봄, 다시 북경으로 갔다. 그 해 4월 귀국했다가 6월에 피검(被檢), 북경으로 압송되어 수감 중 병보석으로 출옥해 친척집에서 사망했다. 유해는 고향 뒷산에 안장되었고, 1968년 안동시에 시비(詩碑)가 세워졌다.
그가 문학 활동을 한 때는 문학사적으로 보아 문단의 암흑기였다. 이 시기에 이광수, 서정주 등 많은 문인들이 변절하여 친일문학으로 타락했으나, 그는 끝까지 민족적 신념을 지키며 죽음으로써 일제에 저항했다.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시풍을 보이면서도 <절정> <광야> <꽃>에서 보듯 서정을 잃지 않은 저항시를 썼으며, 상징적이면서도 화려한 수법으로 암흑 속에서도 민족의 신념과 의지를 노래했다. 그의 작품의 대부분이 1935년을 전후해서 씌어졌는데, 이때는 그가 중국과 만주 등지를 전전하던 때인 만큼 광활한 대륙을 배경으로 한 북방의 정조(情調)와 함께 전통적인 민족정서가 작품에 깃들어 있다. 생전의 유작(遺作) 20여 편은 신석초 등의 문우(文友)들에 의해 1946년 <육사시집>으로 꾸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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