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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광수 장편소설 『무정(無情)』

by 언덕에서 2009. 8. 11.

 

이광수 장편소설 『무정(無情)』

 

  

이광수(李光洙.1892∼1950) 의 첫 장편소설로 [매일신보]에 1917년 1월 1일∼6월 14일까지 126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순한글로 된 소설이다. 한국 근대문학사의 신기원을 이룩하는 본격적인 첫 소설로 1918년 [광익서관]에서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이 소설은 대부분 중역(重譯)에 의존하던 번안소설과 구태의연한 신소설이 할거하던 당시 신문 잡지 소설계를 뒤흔든 폭탄적인 존재가 된다.

 1910년 [한흥학보]에 습작 단편 『무정』을 발표한 바 있는 춘원의 장편소설 『무정』은 우리 출판 사상 또한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기록된다. 『무정』의 연재가 끝난 이듬해(1918) 6월 [청춘]지에 ‘문단 창유(創有)의 명저 『무정』은 신문단 건설의 제일초(第一礎)’란 광고로 ‘금(今)에 예원(藝苑)의 갈망을 위하야 가장 청려한 양자(樣姿)로써 정려하게 출판’한 장편소설 『무정』의 단행본 출간을 알리고 있다. 발행소는 [신문관], 630면에 정가 1원(圓) 30전(錢)이고, 천 부를 찍었다고 밝혀져 있다.

 그러나 6년 후 [조선문단] 광고에는 ‘만 부 이상 팔리기는 조선출판계에 오직 이 『무정』뿐이겠습니다’라고 하여 당시의 빈약한 독서 인구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판매 실적을 올리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1939년에는 김신재, 이금룡, 한은진 출연, 이기채 감독의 영화로 제작, [황금좌]에서 개봉되어 다시 한 번 화제가 되었다.  

 

이광수 사진과 매일신보에 게재된 <무정>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경성 학교 영어 선생 이형식이 김 장로의 딸 선형에게 영어 가정교사를 하다가 그녀의 미모에 매혹되었을 무렵, 어린 시절의 동무요, 은사 박 진사의 딸인 영채로부터 사랑의 고백을 받는다. 그 동안 영채는 제자의 강도 사건으로 투옥된 박 진사와 오라비들을 위하여 기생이 되었는데, 부친과 두 오라비는 세상을 떠나고 영채 홀로 아버지가 어린 시절에 남편으로 정해 준 형식만을 그리며 지낸다.

 한편, 이형식은 갑작스런 영채의 출현으로 선형과 영채 사이에서 고민을 하게 되는 동안 영채가 경성 학교 배 학감에게 순결을 짓밟히는 사건이 일어나고 형식만을 위해 순결을 지켜왔던 영채는 유서를 남기고 사라진다. 형식은 영채를 찾으러 평양까지 갔다가 찾지 못해 그녀가 죽은 것으로 단정하고 서울로 되돌아오면서 앞으로는 인습에 따르지 않고 자신의 결정에 따라 살 것을 다짐하며 선형을 사랑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자살하러 평양으로 가던 영채는 기차 속에서 동경 유학생 병욱을 알게 되어 자살을 단념하고, 병욱의 집에서 함께 살다가 음악과 무용을 공부하러 일본으로 가기 위해 기차로 떠난다.

 그 동안, 선형과 약혼하게 된 형식은 미국으로 유학하기 위해 기차에 오른다. 기차 속에서 뜻밖에 영채를 만나게 된 형식은 다시 선형과 영채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이 때, 삼랑진에 물난리가 나, 기차가 정지하게 되고, 수재민들의 불행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기 위해 즉석 음악회를 연 그들은, ‘나’라는 생각을 떠나 ‘민족’을 위해 봉사하는 경험을 통해 감격을 느낀다. 민족의 발견이라는 이 감격 속에서 그들은 개인의 문제를 잊고, 민족을 위해 봉사할 것을 다짐하면서 유학의 길을 떠난다.

 

영화 <무정 > , 1962

 

 개화기 서울이 배경인 이 소설에 나오는 중요한 인물은 경성학교 영어 교사이고, 미혼 청년으로 과도기 신청년의 성격을 대표하는 인물인 이형식, 김 장로의 딸로 과도기의 신여성을 대표하는 인물인 김선형, 어릴 때 이형식과 약혼한 바 있는 구도덕을 대표하는 여인인 영채 등이다.

 이형식이 김선형의 가정교사로 들어가 영어를 가르치다가 사랑이 싹트게 된다. 한편, 어릴 때 형식과 약혼한 바 있는 영채는 평양 기생으로 있으면서 형식에 대한 정조를 지킨다. 그러나 형식에게 선형이 있음을 안 영채는 대동강에 투신 자살을 기도하나, 병욱이라는 신여성(동경 유학생)에 의해 구조된다. 이에 대해 형식은 두 여성 사이에서 방황하나, 마침내 선형과 약혼하고 둘이서 미국 유학하기 위해 기차로 부산으로 향한다.

 같은 기차로 병욱과 영채가 일본 유학을 떠난다. 이들은 수해로 삼랑진서 기차가 불통되자 한 여관에서 만난다. 형식은 연설을 통해 개인감정을 넘어 민족을 위해 각자 공부할 것을 주장한다.

 보통 이광수를 계몽적 민족주의자로 규정하고 있다. 그의 초기 사상은 구사상으로서의 도덕과 유교를 공격하여 민족 개조론을 내세운 것으로 유명하다. 이 소설 『무정』에서도 여러 가지 계몽주의적 주장을 내세우고 있으며, 특히 끝부분의 민족을 구원해야 한다는 주장은 당시로서는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작품 『무정』의 문학사적 위치는

 첫째로, 최초의 본격적인 장편 형식이라는 점에 있다. 이 소설적 골격이 가능했던 것은 정삼각형 연애소설이라는 점에서 연유된다. 이광수 소설의 기본 구조가 이런 것이다, <흙>에서 이 점이 되풀이된다.

 둘째로, 서툴지라도 사상을 주축으로 하였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다. 계몽주의와 민족주의의 결합은 장편을 가능케 한 힘이라 할 수 있다.

 셋째로, 언문일치에 대한 노력이다. 물론 『무정』에서는 아직도 He나 She에 해당하는 대명사가 모두 ‘그’로만 되어 있고(이 점도 이광수의 노력이다) ‘더라’투가 남아 있으나, 상당히 세련된 문체를 개척하였다.

 끝으로, 이광수의 개인적 특성으로는 '고아 의식'을 들 수 있다. 또한 정거장에서 우연히 만나는 우연성이 도처에 깔려 있다. 이 모두는 고아로 자란 이광수의 사랑에 대한 갈증 콤플렉스를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와세다대학 철학과에 다니면서 학비에 쪼들리던 춘원은 [매일신보]로부터 전화로 장편소설 청탁을 받고 구고(舊稿) <영채(英彩)>를 개작, 연재를 시작했는데, 훗날 <문단생활 30년의 회고>에서, “내가 <무정>을 쓸 때에 의도한 것은 그 시대 신청년의 이상과 고민을, 그리고 아울러 조선 청년의 진로에 한 암시를 주자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민족주의, 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쓴 것이다.” 고 술회했다.

 자유연애와 민족의식의 고취를 주장한 한국 근대소설의 첫 장편. 봉건적 유교 윤리를 타파하고 민족을 위해 봉사하기로 결의하는 주인공들이 활동하던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근대소설의 문체를 현대 소설로 전환시킨 작품이다.

 춘원 이광수는 육당 최남선과 더불어 우리나라 신문학의 개척자이자 민족주의자로 민족 사상을 고취하는 이상주의 소설을 주로 쓴 작가로, 평안북도 정주 태생이다. 조실 부모하여 조부의 손에서 자라다 천도교 교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에 유학, 명치 학원 중학부, 와세다 대학 철학과를 수학하는 동안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 소설 『무정』을 쓰기 시작하였다고 전해진다.

 1919년, 이광수는 2월 8일의 동경 유학생 중심의 저 유명한 2ㆍ8 독립 선언문을 작성하는 등 독립 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으나 일제말에는 일본에 적극적으로 협조, 변절한 것은 평생의 오점으로 남아 있으며 6ㆍ25 전쟁 당시 이북에 납치되었다. 『무정』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장편 소설로 민족주의적 이상과 계몽주의적 정열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작품으로 개인의 갈등이나 고민 따위는 거의 무시되는 반면 자유연애 사상이나 개화사상이 강조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