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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광수 장편소설 『사랑』

by 언덕에서 2009. 8. 13.

 

 

이광수 장편소설 『사랑

  

 

춘원 이광수(李光洙, 1892~1950)의 장편소설로 1939년 발표되었다. 춘원이 신문 연재소설이 아닌 직접 출간한 유일한 장편으로 1938년 10월과 이듬해 3월 [박문서관]에서 전편과 후편으로 나뉘어 단행본으로 간행된 전작 장편소설이다. 1938년 봄 이광수는 병석에 누워 단편 <무명>을 구술로 끝낸 후 이 작품 집필에 착수하여 후편을 탈고한 것이 12월이니, 구상에서 집필까지 채 1년도 걸리지 않은 셈이다. 『사랑』 전편은 초판이 간행된 지 엿새 만에 1,000부가 팔리고 불과 두 달 만에 2,000부의 초판이 모두 소진될 정도로 당대 독자들의 엄청난 관심을 모았다. 춘원 이광수가 1937년 수양 동우회 사건으로 왜경에 검거되어 반년 옥고를 치르고 병 보석으로 출감하여 병석에서 쓴 작품으로 종교적 색채가 농후하다.

 장편소설『사랑』은 애정문제가 절대적인 중심이 된 작품으로서, 불교적인 인생관이나 이상이 직접적으로 취급될 성질이 아닌 요소를 지녔으면서도 거의 불교적인 인생관으로 일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특히 눈길을 끈다. 주인공 '안빈'은 그의 인간적인 성실성에 있어서는 <무정>의 주인공 '형식'이나 <흙>의 '허숭'과 같은 타입의 인물이지만 그의 철학적 사고방식이나 인생관에 있어서는 다른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이는 1933년의 <유정>에서의 기독교적인 애정관이 불교적인 것으로 변모해 가고 있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즉, 이 소설은 불교적인 이상관이 구현된 데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광수 소설의 특징인 이상주의적ㆍ인도주의적 색채가 농후한 작품으로 소설 속 주인공 '안빈'의 실존 모델은 장기려 박사로 알려져 있다.


▲ 1938년판 <사랑> 표제와 춘원 이광수. <사진=李光洙全集 별권(화보, 평전, 연보) (삼중당, 1961)>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석순옥은 교사이었으나 과거 문학가였던 안빈의 글에 어렸을 적부터 매료되어 간호부 시험을 보아 합격하여 지금 의사인 안빈의 곁에 있고자 인원과 함께 안빈의 병원에 찾아간다. 안빈의 부인 천옥남의 결정으로 간호부로 취직되어 안빈의 연구를 도와준다. 연구에 미결된 부분이 있어 자신을 따라다니는 시인 허영의 도움을 얻어 완성하게 하여준다.

 석순옥이 연구를 위해 품에 안긴 것을 기회로 삼아 허영이 청혼을 하자 거절당하자 세상에 안빈과 순옥이 분륜의 관계라고 소문을 낸다. 친구에게서 이 이야기를 들은 옥남은 남편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폐렴으로 인해 좋지 않은 몸이 더 나빠지고 이를 본 남편은 요양하러 가자고 하여 자식들과 함께 원산으로 간다.

 안빈은 병원 때문에 경성으로 돌아와 순옥에게 부인의 간호를 부탁한다. 원산에서 순옥과 함께 있게 된 부인은 자식들이 순옥을 잘 따르고, 인간됨이 훌륭하자 자신이 병으로 죽으면 아이들과 안빈을 부탁한다고 한다.

 순옥은 안빈은 존경하는 분이기에 결혼을 할 수 없지만 아이들은 잘 돌봐 주겠다고 약속한다. 부인의 병이 깊어 가자 순옥은 세상 사람들의 이목과 병으로 인해 날카로워진 부인의 마을을 안정시키고자 마음에도 없는 허영과의 결혼을 결심하고 허영에게 뜻을 보낸다. 부인이 죽게되자 세간에서는 순옥이 부인을 독살하였다는 등 나쁜 이야기가 돌고, 허영은 결혼을 재촉하였다.

 이를 보고 있던 인원은 순옥이 안빈의 자식과 집 살림을 돌 볼 사람이 없어 허영과 결혼을 못함을 간파하고 자신이 순옥의 일을 대신 맡으며 허영과 결혼을 시킨다. 사랑 없는 결혼을 하였지만, 순옥은 정성을 다해 결혼 생활을 하나 남편이 사기꾼에게 걸려 파산 당하게 되고 경제적으로 무능해진 남편의 허락을 얻어 안빈에게서 의사 수업을 받고 의사가 되어 가정 생활을 꾸려 나간다. 남편은 혈압이 높아 몸이 부실해지고 순옥과의 결혼 전에 관계를 맺었던 여인과 아들이 나타난다.

 순옥이 아이를 자기 자식으로 삼고 키우겠다고 하여 일단락되나, 시어머니 한씨와 남편은 그 여인을 순옥이 없는 낮 시간에 끌어들이고 그 여인은 새 아이를 갖게 된다. 순옥이 이혼을 요구하며 집을 나오자 두 여인을 다 거느리려던 허영은 포기하고 이혼을 해 준다. 허영과 새 부인이 신혼여행을 갔다 오는 날 부인은 임신한 채 피곤한 여행을 하여 하혈을 하자 ,순옥이가 달려와 치료해 준다.

 그러나 죽게 되고 장례날에 허영도 고혈압으로 쓰러진다. 순옥은 안빈에게 받은 정신적 감화로 인해 허영 모자와 아들을 데리고 북간도에서 순옥은 딸 기림을 낳는다. 류마치스로 인해 아픈 시어머니와 중풍에 걸린 허영은 그 고생을 하면서 돌보아 주는 데도 기림이 허영의 자식이 아니라고 구박하여 순옥도 구박한다.

 그러나 성스럽게 살아가는 순옥을 서양신부와 주민들은 성자로서 인정한다. 그러나 북간도에 무서운 감기가 돌게 되고 선이가 죽고 이어 허영이 죽자 안씨는 순옥이 허영을 독살하였다고 발악하다 마저 죽고 만다. 순옥이 몸을 아끼지 않고 병자를 돌보다 병에 걸려 치료를 받다가 인옥과 오빠의 도움으로 경성으로 와 안빈이 운영하는 북한이라는 요양소에 와 살게된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안빈이 60세가 되고, 순옥이 40세가 넘는 중년이 되었을 때 안빈은 순옥, 인원, 영옥, 자신의 세 자녀, 기림, 자신의 일을 오십 넘는 처녀가 되도록 도와준 간호원 수선을 모이게 하고서 신세타령을 하자고 한다. 안빈의 자식들은 어머니 같은 사랑으로 자신들을 키워준 인원, 순옥에게 고마움을 표시했고, 순옥은 사모하는 선생님 곁에서 거진 반평생 살아 온 것이 기쁘고 ‘저를 죽이고 인연 있는 자를 사랑하라’는 선생님의 뜻에 따라 살아 왔을 뿐이라고 말한다.

 수선이 남을 위해 희생하는 줄 모르고 살아왔다고 하자, 안빈은 내가 육십 평생 도달하려 했던 것이 수선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안빈은 불쌍한 우리가 사랑의 기쁨 속에서 옳음을 위해 바쁘게 살아 올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속에 사랑과 옳음의 씨를 주신 분(하느님이든 부처님 이든 간에)과 조국님, 부모님, 남님(중생) 덕분이며, 이 네 가지 큰 은혜를 잊지 않으면 큰 도이고 이에 감사할 줄 아는 생활이 사랑의 생활, 자비의 생활이라고 하면서 오늘 이것을 소개하려 했다고 말한다. 앞으로 자신은 요양원에서 손을 떼고 수양을 하겠다고 하며 회진을 간다.

 

영화 <사랑>, 1967

 

『사랑』은 기본적으로 애정 서사의 형식을 띠고 있다. 의사 안빈과 시인 허영이라는 두 남성 사이에서 갈등하며 진정한 사랑을 추구하는 여주인공 순옥의 이야기가 서사의 중심에 놓여 있다. 안빈의 감화를 받아 오랫동안 그를 사모해온 순옥에게는 학생 시절부터 그녀를 쫓아다니던 시인 허영이 뒤따른다. 그런데 이들 관계는 모두 순탄치 않은 조건 속에 놓여 있다. 기혼남인 의사 안빈에 대한 사랑이 ‘불륜’이라는 세간의 오해에서 자유롭지 않다면, 허영의 집요한 구애는 순옥이 경멸해마지 않는 동물적인 ‘애욕’에 불과하다. 독실한 안식교 집안에서 성장한 순옥에게 모두 용납되기 어려운 관계들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안빈에 대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 원치 않는 허영과의 결혼을 선택해야 하는 기이한 역설의 자리에 순옥을 세운다. 이 조합은 명백히 모순적이며, 따라서 독자는 ‘원치 않는 허영과의 결혼이 안빈에 대한 사랑을 지키는 것과 어떻게 양립 가능한가’라는 의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것은 바로 철저한 불교적 교리에 의한 사상적ㆍ정신적 핵심을 요약해 지니고 있는 점으로, 작가의 이상주의적 경향의 중요한 한 요소인 종교적인 이념이 기독교적인 것에서부터 출발하여 불교적인 세계로 이행하여 그 기초를 형성했음을 시사해 주는 것이 된다. 이것은 실제로 작가가 후일에 불교에 귀의했던 사실로도 그의 작품을 통한 정신관이 설명될 수 있다. 

 

 

 이광수의 이상주의적 애정관은 소설 <유정>에서 체계화되어 소설 『사랑』에서 완성된 세계를 확립하게 된다. 1933년의 <유정>에서의 기독교적인 애정관은 1939년의 『사랑』에서 불교적인 것으로 변모해 가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작가가 봉건주의에 반항하는 혁명아로 등장했던 그 최초에 있어서도 도덕적인 것과 함께 종교적인 것에 대해서도 비판과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그의 이상주의적 사상이 점차 그의 정신적ㆍ사상적인 내용의 전체를 형성해 감에 따라 그는 오히려 종교적인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전기한 바와 같이 초기의 기독교적 이상관에서 후기의 불교적 이상관은 이 작품에서 확실한 것으로 구현되었다. 물론 <세조대왕> <원효대사> <이차돈의 사(死)> <마의태자> 등에서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