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향 장편소설 『환희(幻戱)』
나도향(羅稻香, 1902∼1926)의 유일한 장편소설로 1922년 11월 21일부터 1923년 3월 21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작품이다. 1923년 8월 [조선도서주식회사]에서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이 작품을 발표하여 나도향은 일약 천재작가로 불리었고, [백조]의 기수노릇을 담당하다시피했다. 안석영의 대담한 삽화를 곁들여 그 해 11월 21일부터 이듬해 3월 21일까지 연재되어 독자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신비적이고 낭만적인 죽음의 미의식을 발휘한 작품이다. 그리고 다소 산만하기는 하나 당시 사회의 축첩과 속신적인 종교관을 비판한 소설이다. 나도향의 낭만적인 애정문제와 현실 비판적 작가의식을 병립하려 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죽어서 천당에 가기 위해 함께 살아온 애첩(愛妾)과 첩 소생의 딸 혜숙을 분가시켜 살게 하는 이상국(理想國), 그의 외아들 영철은 아버지의 그러한 사상을 못 마땅히 여겨, 누이동생과 동거하면서 그의 친구 선용을 소개해 준다. 선용은 일본에서 고학하는 가난한 학생으로, 건실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사춘기의 혜숙은 돈 많고 잘생긴 백우영을 더 사귀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도 오빠를 꼭 믿는 혜숙은 선용을 따르기로 하고, 영도사에서 사랑을 속삭이기까지 한다. 선용이 일본으로 간 뒤에도 그들은 사랑의 편지를 교환한다.
어느 날, 우영의 초대에 간 그녀는 처녀성을 잃고 우영의 아내가 되고 만다. 이 소식을 들은 선용은 자살까지 기도했다가 휴양차 귀국한다. 그때 결혼에 실망한 나머지 심한 폐결핵을 앓고 있는 혜숙과 선용이 상봉한다. 그러나 선용은 동경에서 자기를 사모하던 한 여학생의 환상을 그리면서, 현실에 대한 감상과 비애를 맛본 뒤, 다시 일본으로 가버린다.
정월로 이름을 바꾼 혜숙은 오빠와 함께 부여로 정양을 떠난다. 그녀는 오빠의 애인 설화를 죽게 한 죄책감과 훗날 자기가 죽고 난 뒤 자기를 찾아줄 인간들에 대한 낭만을 그리며, 선용과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비감(悲感)해 한다.
이영철의 누이동생 혜숙은 영철의 두 친구 김선용과 백우영을 거의 같은 무렵에 알게 되었는데, 마음은 김선용과 더 가까우나, 그가 일본으로 공부하러 간 동안에 백우영에게 처녀성을 바쳐 그와 결혼하게 되었다.
이영철은 백우영의 아버지가 경영하는 은행에 취직해 있었는데, 김선용을 구하기 위해 돈 1천원을 그 은행에서 대부해 받았다. 그보다 먼저 그는 설화라는 기생과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그의 주위 사람들은 그 돈 천 원을 설화에게 준 줄 알고 있으나, 그는 친구를 위해 사실을 밝히지 않는다. 혜숙은 오빠를 설화에게서 빼내기 위해 자기가 그의 애인인 척하고, 설화를 찾아가 단념하도록 설득시킨다. 그 뒤 설화는 병이 나 누워있다가 자살을 한다. 영철과 혜숙은 부여로 여행 중에 그 기사를 읽고, 혜숙이 자기의 잘못과 그 밖에 김선용과의 사랑, 자기의 병마 따위를 생각하고, 물에 빠져 죽어버린다.
나도향 작품은 처음에는 애상적 낭만적 경향에서 출발하여 곧 냉철한 리얼리즘의 경향으로 들어갔다는 것이 거의 정설로 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환희>는 ‘소녀적 감상주의’, ‘도취적 낭만주의’라는 초기의 작품 경향을 나타낸다.
그러나 작품 활동 기간이 6, 7년에 불과한 나도향의 경우, 문학의 변화하는 측면을 강조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오히려 지속의 측면에서 『환희』는 그 애상적 자기도취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물레방아>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리얼리즘의 형식은 있었다.
『환희』속에 있는 형식적인 리얼리티가 좀더 원숙되고 세련된 것이 <물레방아>이다. 이것은 물론 리얼리즘 자체로서의 원숙이나 세련과는 다른 의미이다. 『환희』의 서두에는 단지 자기 작품에 대한 부끄러움과 외할머니를 향한 추모의 정이 언급되었을 뿐인 머리말이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소설의 일부를 이루는 소설의 구성요소가 아니고 소설 바깥에 존재하는 순수한 작가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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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의 작품구조는 신여성 이혜숙과 기생인 설화를 축으로 한두 개의 애정의 삼각관계로 형성되어 있다. 김선용-이혜숙-백우영의 삼각관계가 그것이다. 이러한 두 축의 얽힘이 작품의 전개를 가능하게 하는 기본적인 설정이다. 『환희』는 인물들의 애정의 갈등양상을 근간으로 해서 죽음으로 이어지는 비극적 결말구조를 가진다. 문장의 산만함과 치기가 흠이긴 하지만 신비적이고 낭만적인 죽음의 미의식이 발휘된 작품이다. 그리고 작가는 『환희』에서 이상국이라는 인물을 제시하여 당시 사회의 축첩과 미신적 종교관에 대한 비판적 안목을 드러내준다. 따라서, 나도향은 낭만적인 애정문제와 현실비판적 작가의식을 병립시키려고 의도한 작가로 평가되며, 이러한 의도는 그의 이후 작품에서도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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