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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박계주 장편소설 『순애보(殉愛譜)』

by 언덕에서 2009. 7. 23.

 

 

박계주 장편소설 『순애보(殉愛譜)』

 

박계주(朴啓周.1913∼1966)의 장편소설로  1938년 [매일신보] 장편소설 현상모집에 당선된 작품이다. 1939년 1월 1일부터 6월 17일까지 [매일신보]에 연재되었고, 같은 해 10월 [매일신보사]에서 단행본으로 간행하였다. 당시 박계주는 박진(朴進)이라는 가명으로 응모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낭만적인 작풍이 가장 두드러지게 표현된 출세작이며 대표작으로, 1940년대에 가장 많이 읽힌 소설의 하나이다. 주인공 명희의 순수하고 헌신적인 사랑 속에 기독교적인 휴머니즘이 잘 나타나 있어 당시의 독자에게 많은 감명과 흥미를 일으켜 주었다.

 1941년에는 극단 [성군]에서 극화되어 상연되었다. 1940년대와 1950년대에 대중적인 인기를 모았으며 1958년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1940년 즈음 종로통에서 주먹대장으로 유명하던 김두한이 당시 이 소설로 유명해진 소설가 박계주를 만나서 아버지인 김좌진장군의 민족주의사상을 알게 되고 일제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영화 <순애보>, 1957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최문선은 부친은 간도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다가 암살되고 그를 어렵게 교육시킨 홀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원산으로 와 김영호의 집에 의탁하게 된다. 문선은 원산 해수욕장에서 익사 위기의 인순을 구출해주는데 인순은 곧 문선을 흠모하게 된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는 우연히도 부친끼리 친구였던 윤 목사의 딸 명희와 해후하고 둘은 쉽게 가까워진다.

 명희 오빠 명근의 청에 의해 그 집안의 사회사업도 도울 겸 문선은 서울로 돌아온다. 그러나 야학교의 조선어 작문 시간에 의기 계월향에 대한 글을 읽어준 것이 탈이 되어 문선은 10개월의 옥고를 치른다.

 직장에 사표까지 낸 명희와 윤 목사댁의 옥바라지에 못지 않게 인순도 지성으로 생명의 은인인 문선에게 보답한다. 최문선은 두 여인 사이에서 고심하나 명희와 더욱 가까워지고, 이를 안 인순은 집요하게 접근한다. 출옥한 뒤 인순의 간청에 못 이겨 그녀의 집을 방문하러 갔다가 갑작스런 타격에 그는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다음날 신문에는 그가 짝사랑하던 여인을 살해하고 피해자의 저항에 상해를 입었다는 기사가 크게 실린다. 그는 강간살해범으로 기소되고 그날의 상처로 실명하게 되자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런데 몰래 한 젊은이가 찾아와 자신이 진범임을 고백하고 용서를 빈다.

 문선은 이미 실명한 자신보다 진범을 구하겠다는 결심으로 법정에서 거짓 자백을 해 사형선고를 받기에 이른다. 이에 감복한 진범의 자수로 문선은 방면된다. 출옥하는 날 그는 서울을 떠나 함경도에서 과수원을 하는 친구집에 의탁하게 되고, 문선의 무고함을 알게 된 명희는 그의 행방을 찾아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문선의 소재를 알고 함경도로 달려온다. 두 사람은 감격적인 재회를 하고 혼인한다. 혼인 뒤 명희는 문선에게 헌신하고 문선은 ‘순애보’라는 소설을 신문에 연재한다.

영화 <순애보>, 1968

 

『순애보』는 박계주가 박진(朴進)이라는 필명으로 [매일신보]의 ‘일천원 현상공모’에 응모해 당선된 소설로, 식민지시기에 발표되었던 소설 중 가장 많이 팔린 작품으로 알려져 있고, 1930년대의 대표적인 통속소설로 평가받는다. 『순애보』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어서 [매일신보]의 구독률이 2배 이상 높아졌다고도 한다. 그리하여 연재를 끝내자마자 1939년 10월에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이 단행본 역시 인기가 대단하여 1945년 8월 5일까지 47판이 발행되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순애보』를 원작으로 한 연극이 1943년 2월 5일부터 11일까지 ‘동양극장’에서 공연되었고, 1958년에 영화화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읽히고 있다. 
 통속소설이라고 지칭되는 소설의 인물들은 대개 예외적인 이력을 지닌다. 『순애보』 역시 그러하다. 중심인물인 최문선과 윤명희는 모두 범상치 않은 가문에서 태어났다. 문선의 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하다 간도에서 사망한 것으로 암시되며, 명희는 목회뿐 아니라 사회활동을 하는 목사의 딸이다. 문선은 아버지의 사망 후 경제적으로는 어려워져 진학을 하지 못했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며 문학·음악·미술 등 예술적인 취미와 재능을 생활 속에서 발휘하며 살아가고 있다. 명희의 집안은 목회자의 집안이지만 경제적으로 궁핍하지 않으며, 명희 역시 이화여전을 나온 지식인 여성으로 예술적 취미나 지성을 두루 갖추었다.
 “그림과 성악에 천재적 재질을 가젓슬 뿐만 아니라 글을 잘 짓기에 비범한 천분을 가지고 있”는 문선과 “얼굴 잘생기고 얌전하고 공부 잘 하고 글 잘 짓는” 명희의 사랑은 그 자체로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 이 두 인물은 올곧은 심성과 의식을 지니고 서로를 믿는다. 특히 인순을 강간 살해한 누명을 쓴 문선을 명희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들의 사랑에 장애가 되는 것은 둘 사이의 오해나 다른 사람의 훼방이 아니라, 운명적인 사건뿐이다. 그러나 결국 많은 우여곡절을 이겨내고 둘은 사랑을 쟁취한다. 이러한 서사구조는 우리 전통 서사의 기본인 ‘혼사장애담’이며, ‘영웅의 일대기’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그 자체로 친숙하며 동시에 낯설다. 독서의 전통상 익숙하고, 인물들의 생활이나 취향이 일반적인 대중들의 그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낯설다.   

 

 

 이 소설은 사건 전개가 지나치게 우연성에 의존하고 있으며, 작가의 자의적인 삽화가 부자연스럽게 처리되는 등 작품 구성이나 기법에서 미흡한 점이 드러나고 있는 작품이다.

 1930년대 장편소설의 일반적인 경향에서 볼 때 소재도 새롭다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통속성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표면으로 내세운 기독교적 휴머니즘과 통속적인 애정 행각의 괴리는 이 작품의 의도를 약화시켰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대중적인 독자층의 열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까닭은, 작가가 의도한 지순한 사랑의 요구가 독자층의 갈망과 부합하였기 때문이며, 이 소설의 전편에 흐르는 박애주의와 낭만주의적 분위기, 그리고 저변에 깔린 민족적 감정도 크게 작용했으리라고 여겨진다.

『순애보』는 식민지시기에 발표되었던 소설 중 가장 많이 팔린 작품으로 알려져 있고, 1930년대의 대표적인 통속소설로 평가받는다. 인물들의 생활은 상류사회의 화려함, 이국적인 문물이나 기호, 취향 등으로 채워지고, 서술자는 이것들을 세세하게 묘사한다. 새로운 것들에 대한 정보는 그 자체로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흥미의 요소로 부각된다. 
 중심 서사는 사랑과 이별, 재회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이상적이고 관념적인 도덕이나 민족적 정서도 포함된다. 『순애보』는 대중들의 요구를 다양한 방향으로 흡수하고 있다. 재미를 추구하고 강한 오락성을 요구하면서도 이상적인 것을 염원하는 인간의 상반된 욕망을 적절히 읽어내어, 그것들을 감각성, 감상성, 이상성으로 수렴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