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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을 읽다

중국 고대 장편소설 『수호전(水滸傳)』

by 언덕에서 2015. 12. 15.

  

 

 

중국 고대 장편소설 『수호전(水滸傳)』

  

 

 

중국 명(明)나라 때 소설가 나관중(羅貫中.1330?∼1400)의 장편소설로 북송 말기인 1121년 화이난[淮南(회남)]에서 송강 등이 난을 일으켜 한때 큰 세력이 되었으나, 뒤에 패전 투항했다는 기사가 <송사(宋史)>에 실려 있다. 이 송강의 난을 제재로 한 강해(講解)가 점차 발전하였고, 원 나라 말기와 명나라 초에 일단의 이야기로 형태를 갖춘 것이 『수호전』이다.

 모든 문학사가들이 중국 최고의 소설로 꼽는 『수호전』은 도둑의 두목 송강과 그 무리에 관한 야사를 시내암이 소설로 정리하고 다시 나관중이 보완한 것이다. 지금 전해지는 수호전은 이탁오 본과 김성탄 본 두 가지가 있다. 내용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송나라에서 실재했던 인물, 남송 이후의 전설 등에서 취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소설은 중국 사대기서의 하나이며, <충의수호전(忠義水滸傳)>이라고도 한다. 민간전설ㆍ화본(話本: 宋代의 白話小說)ㆍ잡극 중에 등장하는 양산(梁山) 호숫가의 영웅고사를 기초로 했다. 봉건사회 농민반란을 소재로 했는데, 지배계급의 부패와 억압받는 백성들의 모습을 폭로하여 반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민중의 실태를 보여준다.  

 '수호(水滸')란 물가란 뜻으로, 송강 등이 양산박이라는 호수를 근거지로 삼았다는 데서 유래했다. 이 작품에는 임충ㆍ노지심ㆍ무송 등 의협심과 개성이 강한 주인공들이 많이 등장한다. 작품의 구성이 치밀하고 내용이 복잡하며, 문체가 생동감이 있어 문학적으로도 높이 평가된다. 김성탄(金聖嘆: 1610∼1661)이 첨삭한 71회본을 비롯하여 100회본·120회본 등 많은 간본(簡本)이 전해진다.

 이탁오 본은 송강과 그 일당이 조정에 투항하여 반란군을 토벌하는 등 공을 세우다가 간신들의 모함에 의해 몰락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는 판본이고, 김성탄본은 송강 등 108명의 무리가 양산박에 결집하여 북경을 함락시키는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고 있는 판본이다,

 

 

 나는 청년 시절 고우영이 그린 만화로 된 『수호전』을 보았고 이후에는 그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상상하며 완역본을 여러 차례 읽었다. 이후 비교적 최근인 약 10년 전에는 이문열씨가 번역한 이탁오 본을 읽었는데 이씨 특유의 자의적이고 유교적인 냄새가 나는 해석이 많은 점이 눈에 거슬려서 원본을 그대로 읽는 만 못했다는 느낌이었다. 김성탄 본은 중간 중간에 나오는 흥미로운 대목만 읽어도 굉장히 생각할 부분이 많을 듯했다. 김성탄 본(국내에서는 모출판사에서 나온 번역본이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을 별도로 구하기 싫은 경우는 보통 『수호전』의 전반부만 읽으면 된다. 이문열 번역본으로 치면 6권(다모인 108영웅)까지인 셈이다.

 그러나 어떤 수호전을 읽던 소설가가 번안하고 나름의 의견을 넣어 각색한 것을 읽지 말고 원전을 직역한 것을 읽을 것을 권하고 싶다. 간결한 문장과 행동 위주의 서술이 주는 글의 맛을 알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홍길동전>은 익히들 알고 있거니와 수호전의 스케일을 가장 무난하게 흉내 낸 것은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이다. 하지만 홍명희의 경우 수호전에 비해 흐름이 너무 느리고 묘사가 지나치게 많고 서술이 훈계조라는 것이 흠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송나라 휘종황제는 문학에는 밝고, 관심이 많았으나 정치에는 관심이 없어 나라일은 대신들에게 맞기고 자신은 문학에만 열중하였다. 정치를 맡은 대신들은 거의 모두가 간신이었으니 나라는 더욱 어려워 질 수밖에 없었다. 이들에게 대항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죄를 지었거나 억울한 누명을 쓰고 쫓기는 천하의 호걸들이 하나, 둘 양산박으로 모여든다.

 임충은 왕륜을 죽이고 조개를 산채의 주인으로 추대하고 양산박은 기틀을 다진다. 이들은『하늘을 대신하여 도를 행한다』라고 하여 못된 짓을 일삼는 탐관오리들의 횡포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는 의적이 되기로 굳은 결의를 한다. 송강의 합류로 더욱 기틀을 다지게 된 양산박은 고구등의 탐관오리와 축가장등 못된 부호들에 맞서 곳곳에서 승리를 거둔다.

 이후 조개의 죽음으로 산채의 주인은 송강으로 바뀌고 송강의 의로움으로 양산박에는 108명의 호걸들이 모이게 된다. 또 하늘은 이들에게 이들의 이름이 적힌 빗돌을 내려 양산박의 의로운 싸움을 인정한다. 연청은 황제에게 양산박의 실정을 알리는 노래를 하여 양산박의 108호걸들은 모두 사면을 받고 황제의 군사가 되어 오랑캐와 반란군 토벌에 나선다. 황량한 전장을 누비며 충의를 다하던 108호걸들은 대부분 싸움터 죽고 나머지 호걸들도 간신배의 모략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김성탄 본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제1회는 이야기의 발단으로 태위 홍신이 용호산의 복마전을 열고 갇혀 있던 36천강성과 72지살성 등 도합 108마왕을 달아나게 한 경위가 기록되어 있다.

 이어서 제2∼71회에는 수호설화에서 가장 오래되고,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부분인 노지심·무송·양지 등이 양산박에 올라갈 때까지의 이야기와, 조개 등에 의한 생신강(生辰綱;생일선물)의 사취, 그리고 이어지는 송강의 염파석 살해 등 108명의 영웅이 모두 양산박에 모여들기까지이며, 이 부분이 《수호전》의 중심이 된다.

 ●이탁오 본은 위의 줄거리에서 송강과 그 일당이 조정에 투항하는데서 시작한다. 제72∼82회는 송강이 동경에서 휘종이 총애하는 명기 이사사를 만나고 그녀의 인도로 죄를 용서받고 귀순하는 경위가 씌어 있고, 귀순한 송강 등의 요나라 정벌이 제83∼90회에, 반란군 전호·왕경 토벌이 제91∼110회에 실려 있다.

 이 사이에 송강 등은 단 한 사람의 전사자도 없었으나, 제111∼119회의 방랍 토벌에 이르러서는 여러 장군들이 차례로 쓰러졌으며, 살아남은 사람들도 출가·출분하여 동경에 귀환한 사람은 27명뿐이었다. 마지막 제120회에서는 이 27명의 결말이 실려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이탁오본만 유통되었고 김성탄 본은 별로 읽히지 않고 있다. 분량 면에서 김성탄본은 이탁오본의 절반 정도이므로 출판사들이 책을 많이 팔기 위해 김성탄 본을 기피한 결과이다.

 108명의 창조된 인물들의 이미지와 묘사된 성격이 매우 다채로우며, <서유기>가 신마(神魔)를, <유림외사>가 지식계층을, <홍루몽>이 명문의 자녀를 묘사한 것과는 달리 『수호전』에서는 노지심ㆍ이규ㆍ무송 등과 같은 신분이 낮은 정의한이나, 임충ㆍ양지ㆍ송강 등과 같은 지주 출신자 또는 봉건정권을 섬긴 적이 있는 활발하고 용감한 사나이들이 중심인물이다.

 『수호전』이 후일 중국의 문학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명ㆍ청의 희곡 중에는 『수호전』에서 취재한 것이 많고, <금병매>는 부분적으로 확대하여 창조를 더했으며, <설악전전> 안의 일부 인물은 수호의 영웅들의 후계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진침은 <수호후전>을 썼으며, 유만춘은 <결(結)수호지>라고도 하는 <탕구지(蕩寇志)>를 지었다.

 

 

 

 

 

 이탁오 본이 문학작품으로서 의미를 잃은 이유는 간단하다. 권력자들의 가렴주구를 처단하겠다고 나선 의적들이 별안간 충신으로 돌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충신으로 변한 그들은 혼군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다가 1/3정도만 겨우 살아남으니 이는 후대의 지배층이 의도적으로 각색한 결과로밖에 볼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김성탄 본이 진짜 수호전이고 이탁오 본은 위작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의 의견은 전적으로 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발견한 『수호전』의 매력을 나열해 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 매력은 등장인물들이 ‘명분’을 내세우지 않고 ‘본능’을 좇는다는 데 있다. 그래서 송강과 무송 그리고 양웅 등은 법을 무시하고 직접 음탐한 여인을 직접 죽여 응징한다.

 두 번째 매력은 인간 평등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등장하는 영웅들 대부분이 하급 관리 출신들이며 나머지는 뱃사공, 요식업자, 건달 등이다. 요즘말로 하자면 밑바닥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하급 인생들로 그들은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기여하고자 한다.

 세 번째 매력으로는 소설로서의 재미를 꼽아야 할 듯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도덕교과서식의 케케묵은 교훈적 주제를 내세우지 않고 인간의 동물적인 본능과 반골기질을 형상화하는 것이 세계적 걸작으로의 지름길일 것이다. 이것을 좀 유식한 말로 바꾸자면 소설이 겉으로 표방하는 표면주제보다는, 소설의 내용 안에 녹아들어있는 이면주제가 독자의 진실한 감동을 일으키는 점이다.

 마지막의 매력은 간결하고 힘찬 문체에 있다. 거의 모든 문장이 주어와 동사만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될 만큼 「수호전」의 서술방식은 행동주의적이고 비묘사적이다. 심리묘사가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작중인물들의 개성이 살아서 꿈틀거리며 독자에게 박력 있게 전달된다. 이런 기법은 서구에서는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헤밍웨이에 의해서 채택됐는데, 동양문학에 있어서는 일찍부터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문체를 만들고 있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