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한글 야담집『청구야담(靑邱野談)』
조선 순조 말년(1826∼1835년)으로 추정되는 편찬자 미상의 한글 야담1집이며, 단편소설이 포함되어 있다. 그 내용과 체재가 비슷한 책들 가운데 내용이 비교적 충실한 점과, 그 전사본2(轉寫本)으로 추정되는 <해동야서(海東野書)>의 필사연대가 1864년(고종 1)인 점으로 미루어 보아 19세기 중엽 전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은 <계서야담(溪西野談)>, <동야휘집(東野彙輯)>과 더불어 조선시대의 ‘삼대야담집’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중에서도 그 야담집들이 이룩해 놓은 문학적인 성과를 가장 잘 포괄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야담집이다.
결구와 수법이 묘하고 언어ㆍ풍속ㆍ관습 등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20권 사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지막 권은 낙질되어 전하지 않는다.
딸이 출가한 지 일 년도 못 돼 남편을 잃고 부모 곁에서 과부로 살고 있었다.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딸이 자신의 고운 얼굴을 거울에 비춰 보다가 갑자기 그것을 내던지고 울고 있는 모습을 아버지인 재상이 보게 된다.
아버지는 평소 드나들던 장건한 무반에게 은자를 주며 딸을 데려가기를 청한다. “곧바로 북관으로 가 그곳에서 살게. 그리고 우리 문하에는 종적을 끊게나.” 그들을 떠나보낸 재상은 내실 아랫방에 들어가 통곡하며 “내 딸이 자결했도다”라고 말했다. 재상은 딸의 시댁에 통고하고 시댁의 선산 아래에 장사 지냈다.
몇 년이 흐른 후 그 재상의 아들이 암행어사로 북관을 살피게 됐다. 인가를 찾아들어 가니, 마침 그곳에서 두 명의 아이가 책을 읽고 있었는데, 아이들은 생김새가 맑고 준수한 데다 자신의 안면과 자못 유사했다. 밤이 깊자 안방에서 갑자기 어떤 한 여자가 나오더니 암행어사의 손을 붙잡고 흐느꼈다. 놀라 자세히 바라보니 죽은 그의 누이였다. 돌아와 부친에게 조용히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재상은 눈을 부릅뜨고 아들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아들도 감히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했다.
-‘딸을 재가시킨 재상(163회)’
그동안 이 책에 실린 많은 이야기들은, 이른바 ‘한문단편(漢文短篇)’ 또는 ‘야담계소설(野談系小說)’ 등의 이름으로 일부가 번역 소개된 바 있으며, ‘신분질서의 동요와 가치관의 변화가 크게 일어난 역사적 격변기인 18ㆍ19세기의 현실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각양각색의 다양한 삶을 박진감 있게 집약하고 있는 소설적인 작품들’로 평가 받아왔다.
도망 후 수십 년 만에 주인을 만난 만난 송 씨의 노복은 옛 주인에게 용서를 구한다. 이에 송 씨는 “이제 시절이 변했으니 원컨대 편히 앉아 한담이나 하자”고 하면서 부자가 된 내력에 대해 묻는다. 노복은 자신의 성공담을 털어놓는다. 어찌하여 최 씨 성을 얻게 된 후 경성에서 수년간 수천백금을 벌었고 한 무관의 딸과 혼인하고서 발각될까 회양으로 이사를 했다. 그곳에서 정오품, 정삼품을 지낸 사람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노복은 너무 지위가 올라가면 시기로 인해 발각 날 우려가 있어 물러나와 전원생활을 한다는 이야기다.
- ‘송반궁도우구복(宋班窮途遇舊僕) (141회)’
예컨대, 치부(致富), 추노(推奴), 능동적으로 활약하는 여성, 약사(藥肆)ㆍ저자 등 민중들의 생활현장에서 살아 움직이는 갖가지 삶의 모습들, 부정한 관리들의 추행과 이에 대한 민중들의 대응, 화적떼, 과거 시험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갖가지 양태의 해프닝 등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
김역관은 임란 때 2차 원병 온 명나라 장수 이여송의 역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이여송은 귀국길에 군량을 약속한 기일에 대지 못했다는 이유로 요동도통을 군율로 다스리려 했다. 이때 도통의 아들 셋이 제독의 총애를 받고 있는 김역관 보기를 청하고 덕분에 도통은 목숨을 구한다. 이에 아들들은 역관에게 아버지를 구해준 은혜를 갚게 해달라고 한다. 이들은 김역관을 조선국의 재상으로 삼게 해주겠다고 한다. ‘중원(요동)정승’이라고 손가락질 당한다며 김역관은 거절한다. 중원의 벌족이 되게 해주겠다는 제의도 거절한다. 부모와 이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심스레 속마음을 전한다.
“제가 달리 원하는 것은 없으나 소원이라면 천하일색(운남왕의 딸)을 한 번 보는 것입니다.” 김역관은 거듭 “저는 단지 한 번 보기를 원했을 뿐입니다. 실로 다른 뜻은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짐짓 다른 것에는 관심 없는 척한다. 드디어 운남왕의 딸을 만난 김역관은 이 여인을 한 번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점잔을 빼다 마지못한 척 운우지정을 맺는다. 그리고 매년 역관으로 황성에 올 때마다 만나 운우지락을 나누게 된다.
- ‘천하일색을 얻은 김역관(29회)
그러나, 이 책은 비단 당시대 현실과 직접 관련된 내용의 이야기들만이 수록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민족 신앙의 기층을 형성해온 풍수신앙에 얽힌 기적적인 체험담, 우리 이야기 문화의 중요한 하나의 전통을 형성하고 있는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육담3(肉談), 신화ㆍ전설적인 차원의 신비담, 충효담 등등, 우리 민족이 이루어온 ‘이야기 문학’의 유산들을 비교적 두루 잘 종합하고 있어서, 우리문학의 최고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호중(湖中: 충청도)의 한 선비가 아들 혼례를 5, 60 리 떨어진 이웃 마을에서 치렀다. 신랑이 혼인식을 마치고 밤에 신방에 들어가 신부와 마주 앉아 있었다. 한밤중이 되자 벽력같은 소리가 한 번 나며 뒷문이 부서지더니 갑자기 큰 호랑이 한 마리가 방 가운데로 뛰어 들어와 신랑을 물고 가버렸다.
신부는 놀라 황급히 일어나 호랑이 뒷다리를 꽉 껴안은 채 놓지 않았다. 호랑이는 곧장 뒷산으로 올라갔는데 걸음이 마치 나는 것 같았으나 신부는 한사코 따라갔다. 수없이 바위와 구렁을 오르내리고 가시나무 숲을 지나니 옷이 찢어지고 머리카락이 흩어졌으며 온몸에 피가 흐르는데도 호랑이를 놓지 않았다.
몇 리를 가자 호랑이 역시 기진맥진하여 신랑을 풀 언덕 위에 버리고 가버렸다. 신부가 비로소 정신을 수습하고 손으로 신랑 몸을 어루만져보니 명문(命門: 명치) 아래가 미미하게나마 온기가 있었다. 사방을 살펴보니 바로 언덕 아래에 인가가 하나 있었는데 뒤창으로부터 희미한 불빛이 흘러나왔다. 신부는 호랑이가 이미 멀리 갔으리라고 생각하고 곧장 지름길을 찾아 내려가 언덕 아랫집 뒷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침 대 여섯 사람이 그 집에 모여 낭자하게 술을 마시고 안주를 먹고 있다가 갑자기 신부가 들어오는 것을 봤다. 신부는 온 얼굴에 발랐던 연지(臙脂)와 백분(白粉)이 피와 섞여 응고되어 있었고 몸에 걸친 의상은 곳곳이 찢겨 있어 언뜻 바라보니 여자 귀신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놀라 땅에 엎드리자 신부가 말하였다.
“저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모두 놀라지 마십시오. 뒷 언덕에 사람이 있는데 지금 사생(死生)을 분간할 수 없는 지경에 놓여 있습니다. 바라건대 빨리 구해주십시요.”
사람들은 놀란 정신을 수습하고 일제히 횃불을 들고 뒤 언덕으로 올라가 보니 과연 젊은 남자가 언덕 위에 엎드려 누워 있었는데 숨이 거의 끊겨 죽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비로소 그 남자를 자세히 살펴보니 그는 바로 주인집 아들이었다.
주인은 크게 놀라 신랑을 들어와 방안에 눕히고 약물 등을 목구멍 속에 쏟아 넣었다. 한참이 지난 후 신랑이 비로소 소생하니 온 집안 식구가 처음에는 놀라고 당황하였다가 마침내는 경사이고 다행이라고 여겼다.
신랑의 부친이 혼인 행차를 마련하여 보내고 마침 이웃 친구들을 불러모아 술을 마시고 있을 때였으니 그 곳은 곧 신랑 집의 뒤였던 것이다. 비로소 그 여자가 신부임을 알고 방으로 맞아들여 죽을 주어 마시게 한 뒤, 다음날 신부집에 기별을 하였다. 양가 부모 모두 신부의 지극한 정성과 높은 절개에 놀라고 감탄하였다. 향리의 많은 선비들이 그 일을 관아에 아뢰고 감영에 아뢰어 마침내 정포(旌褒: 효자, 충신, 열녀나 국가에 큰 공이 있는 사람에게 포상으로 旌門을 지어 주는 일)의 은전(恩典)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 신랑을 구한 신부 (96회)
『청구야담』을 읽다 보면 수많은 인간 군상들의 파격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리스 시대의 비극이나 구약성경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노학구(늙어 세상에 쓸모없는 속된 선비)가 어떤 한 선비에게 자신의 첩을 강간하도록 해 아들을 낳게 한다는 이야기, 다른 사람의 첩으로 있던 여인이 정말 자신이 믿을 만하다고 여긴 사람을 본 후로 본 남편과 헤어지고 자신이 선택한 남성을 위해 수절하는 이야기도 있다. 오늘날 신문 사회면에서도 볼 수 없는 엽기적인 내용이다.
『청구야담』은 조선시대의 여러 야담집 중에서 내용이 풍부하고, 세태 묘사가 자세한 것을 특징으로 삼는다. <계서야담>에서는 아직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사대부들의 간단한 일화는 채택하지 않은 대신, 사대부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라도 행동 양상과 사건 설정이 하층민의 생활을 다룬 것들과 그리 다르지 않게 엮었다. 하층민들이 겪는 사회적 갈등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세태 묘사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분명한 것은 이를 통해 야담이 소설에 가까운 경지에 이르도록 하였을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이본 15여 종 가운데 중요한 것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규장각 국역본 : 19책. 7언 또는 8언의 화제(話題)를 음만 한글로 바꾸어 놓았고, 문체가 번역투이며, 세주(細注)가 붙어 있는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한문본의 직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편차는 한문본의 어느 것과도 같지 않다. 수록된 자료의 총수는 262편으로, 이 중 다른 본에 전연 나타나지 않는 자료는 1편뿐이다. 당초에는 전 20책이었으나 제20책이 낙질되어 현재는 19책만 전한다. 각 권에 수록된 자료의 숫자로 보아 만약 20책이 다 전한다면 총 자료 수가 275편 가량 될 것으로 보인다.
② 일본 도요문고본(東洋文庫本) : 8권 8책. 모두 266편의 자료가 수록되어 있는데, 다른 본에서 볼 수 없는 것을 다른 본의 수록 자료와 견주어 보면 결본일 가능성이 짙다.
③ 국립중앙도서관본 : 6권 6책. 책의 크기나 지질이 일정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원래 결책이던 것을 보책(補冊)한 것으로 보인다. 수록 자료 총 181편 중 이 책에만 있는 것은 2편이다.
④ 서울대학교 고도서본 : 5권 5책. 국립중앙도서관본보다 책 수가 적으나 수록 편수는 더 많아 217편이나 되는데, 이는 자료를 축약한 탓이다. 권수의 표시가 표지에는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으로 되어 있고, 속에는 ‘권지일(卷之一)’ 식으로 되어 있다.
총 217편 중 이 본에만 있는 것은 7편이다. 그 밖에 미국 버클리대학 극동도서관 소장본은 10권 10책으로, 현재까지 확인된 <청구야담> 중에서 가장 내용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청구야담』 소재자료 중 30여 편 이상이 1세기 이전의 문헌인 <학산한언(鶴山閑言)>과 중복되고 있다.
『청구야담』의 발췌본으로 보이는 <해동야서>에는 총 48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물론 제목까지 완전히 동일하다. <계서야담(溪西野談)>과 『청구야담』의 상호 영향관계는 명확하여 양자 사이에는 공통된 자료가 80여 편이나 될 뿐만 아니라, <계서야담>의 원문이 거의 그대로 『청구야담』에 재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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