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외국 현대소설

루쉰 중편소설 『아큐정전(阿Q正傳)』

by 언덕에서 2009. 8. 4.

 

루쉰 중편소설 아큐정전(阿Q正傳)

 

 

중국 소설가 루쉰(魯迅.1881∼1936)의 중편소설로 1921년부터 베이징의 [천바오(晨報)] 부록판에 연재되었다가, 23년에 제1단편집 <눌함>에 수록되었다. 신해혁명을 전후한 농촌을 배경으로, 정확한 성명도 모르는 최하층의 날품팔이 농민인 ‘아Q의 전기’라는 형식으로 쓴 소설이다.

 혁명당원을 자처했으나 도둑으로 몰려서 싱겁게 총살되어 죽는 아Q의 운명을, 혁명 앞에서도 끄떡없는 지배력을 가지고 마을에 군림하는 지주 조가(趙家)와의 대조로 그려냄으로써 신해혁명의 쓰디쓴 좌절을 나타내고 있다. 모욕을 받아도 저항할 줄을 모르고 오히려 머리 속에서 ‘정신적 승리’로 탈바꿈시켜 버리는 아Q의 정신 구조를 희화화함으로써 철저히 파헤쳐, 당시 사람들이 자기가 바로 모델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을 정도로, 중국 구(舊)사회의 병근을 적나라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 후 이 작품에 대해서는 치엔싱추언 등의 심한 비판이 있었으나, 중국 현대문학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는 아무런 이의가 없으며, 오늘날에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 <아Q정전,>, 1981 제작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아큐는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도 집이며 직업이며 아무런 생활 근거도 없이 동구 밖 사당에서 기거하고 있다. 그는 약간 모자란 듯하고, 바보스러우나 자존심만은 강했다. 서양식 학교와 일본 유학을 다녀왔으며, 마을의 세력가 조영감의 아들을 ‘가짜 양놈’이라 욕하고, 이 소리가 영감 아들 귀에 들어가 아큐는 두들겨 맞는다. 이 일로 아큐는 유명해진다. 또한 평소 매우 싫어하던 ‘왕털보’에게도 시비를 걸다가 얻어터지고, 아큐는 마을 사람들의 놀림감이 된다.

 한편, 장난이 심한 아큐는 정수암의 젊은 비구니를 보자 그녀의 머리를 만지고 볼을 꼬집으며 놀린다. 이런 장면들을 본 건달들이 재미있어 하자 아큐는 뿌듯해 한다. 그런데 여승의 살결을 만져본 아큐는 이상한 감정에 휩싸인다. 여자의 부드러운 피부와 접촉하면서 그 동안 잊고 있었던 여자에 관해서 일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아큐가 조영감의 집에 쌀을 찧으러 갔다가 일을 저지르고 만다. 그 댁의 여자 하인인 우마에게 자기하고 자자며 수작을 부리다가 곤경에 처한다. 우마의 울음소리를 듣고 달려온 조영감에게 아큐는 사정없이 두들겨맞고는 양반댁을 업신여긴 죄로 마지막 남은 솜이불까지 저당잡혀 가며 막대한 대가를 지불한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여자들은 아큐만 봐도 도망갔고, 마을 사람들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어느 누구도 그에게 일거리를 주려하지 않았다. 아큐는 굶주리고 지쳐서 정수암의 무밭에서 무를 훔치다가 달아나기도 한다.

 아큐는 마을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자, 성내로 가서는 좀도둑질로 몇 가지 재물을 모아 중추절 직후 다시 마을로 돌아온다. 아큐가 가지고 온 신기한 물건에 마을 여자들은 관심과 흥미를 가졌으나, 그가 도둑의 앞잡이였다는 소문으로 인해 자연히 관심 박으로 밀려난다.

 이때 혁명의 소식이 전해지고 마을 사람들이 혁명당을 두려워하는 것을 알고 아큐는 혁명당 행세를 한다. 아큐는 혁명당에 가입하려고 조영감 아들을 찾아간다. 그런데 그 날 밤 조영감 집이 습격을 당한다. 아큐는 조영감댁을 약탈한 범인으로 지목되어 영문도 모른 채 병사들에 의해 잡혀간다. 문초를 당한 아큐는 횡설수설한다. 생전 처음으로 들어보는 붓으로 동그라미로 서명을 대신하고는 만인을 위한 속죄양이 된다. 형장으로 꿀려가면서 아큐는 눈을 번득이고 섰는 군중들 속에서 우마를 발견한다. 그러나 우마는 아큐를 보지 못한 듯 오직 정신없이 병사들의 등에 메고 있는 총만 바라보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웨이장」이라는 중국 남부의 한 가상 농촌에 사는 얼간이 날품팔이꾼 아큐다. ‘아(阿)’는 친근감을 주기 위해 사람의 성이나 이름 앞에 붙는 접두어이고, ‘Q’는 청나라말 중국인들의 변발한 머리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성명과 본적뿐만 아니라 이전의 행장마저도 분명치 않은’ 아큐의 20대 후반부터 도적 누명을 쓰고 처형되는 30대 초반까지의 삶과 죽음이 이 소설의 핵심이다.

 루쉰은 ‘정신승리법’으로 이름붙인, 아큐의 무력감과 노예근성을 작품 내내 비판했다. 모욕을 당해도 저항할 줄 모르는 아큐. 남에게 얻어맞고도 자기 아들에게 맞았다고 생각한 아큐는 바로 서세동점의 와중에서 자존심만 비대했던 청과 중국 민족이다.

 여기에 아큐가 혁명에 가담하게 된 이유, 혁명당원 아큐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변화, 그리고 너무도 간단한 아큐(농민으로서의)의 제거 과정을 통해 혁명의 허구성과 불철저성도 따끔하게 꼬집었다.

 루쉰은 소설 마지막에 아큐의 죽음 이후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옮겨놓음으로써 중국민중의 우매함도 싸잡아 비난했다. “총살당한 것은 곧 그가 나빴다는 증거야. 나쁘지 않았다면 무엇 때문에 총살을 당한단 말인가?”

 

 

 이 작품은 중국인의 노예 근성을 샅샅이 그려낸 중편소설이다. 루쉰은 이 작품에서 국민성의 나쁜 점을 그려냈다고 해서 비애국자 대접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아큐는 보편적인 존재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큐의 모습에서 자신의 일면을 발견하게 된다. 이 작품이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어 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청조 말기 신해혁명으로 구질서의 붕괴와 새로운 문화가 유입되는 와중으로, 아큐라는 보잘것없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중국인의 국민성을 질타하고 있다. 아큐는 뚜렷한 작업도 없이 남의 집 품팔이로 살아가면서도 아무 일에나 끼어들어 간섭하고, 잘난 체한다. 사리 판단이 모자라 조그만 일에도 영웅시하면서 자존심만 강하다. 본능적인 충동에 쉽게 흔들리며, 부정직한 방법으로 자기 과시를 한다. 

 이러한 아큐의 행위는 작가의,“우리에게 가장 긴요한 것은 그들의 정신을 개조하는 일이다. 그리고 정신 개조를 가장 잘 이룩할 수 있는 길은 문예다.”란 말에서 보듯이 사대사상, 노예 근성에 젖어 있고, 이기주의가 팽배했던 당시의 민족적 현실을 작품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중국 근대문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아큐정전은 문화혁명 운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 봉건적 체제의 구습을 타파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루쉰 단편소설집 「눌함(訥喊)」 : 중국 작가 루쉰(魯迅)의 단편소설집으로 1923년 [북신서국(北新書局)] 간행되었다. 그의 제1회 창작집으로 1918년 [신청년(新靑年)]지(誌)에 발표한 처녀작 <광인일기(狂人日記)> 이후 1922년까지 발표한 14편의 소설을 수록하고, 유년기부터의 추억을 ‘자서(自序)’로 덧붙여서 출판하였다. <공을기(孔乙己)> <약(藥)> <아큐정전(阿Q正傳)> <작은 사건> <고향> <단오명절> <제례극(祭禮劇)> 등 많은 대표작이 수록되어 있다. 중국 신문학 최초의 창작소설집이기도 하다. 루쉰의 제2 소설집은 <방황(彷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