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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100편 감상

장기려 박사 / 김규태

by 언덕에서 2010. 8. 11.

 

장기려 박사

 

                                                                        김규태(1934 ~ )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4개월 만인 1950년 10월 19일, 유엔군과 국군은 평양을 탈환했다. 당시 김일성의과대학 의사였던 장 박사는 대학병원과 야전병원을 오가며 부상자 진료에 밤낮이 없었다.

 그 해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는 대전환, 국군은 평양을 철수하게 된다. 이 때 장기려박사는 남으로 가기 위해 환자용 버스에 태워졌다. 부모와 부인, 그리고 5남매를 두고 차남만 데리고 떠났다. 이 순간이 45년간의 긴 이별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가족을 만난다는 일념으로 부산에서 피란생활이 시작되었다. 영도에서 천막을 치고 무료 진료소를 열었다. 절대 빈곤의 시대에 환자들이 밀려들었다. 날이 갈수록 가족을 만난다는 것은 기약 없는 희망일 뿐이라고 여겨졌다. 경성의전에 들어갈 때부터 하느님 앞에 맹세한 대로 가난한 이웃을 돕고 그들의 삶에 작은 촛불 역할이라도 해야겠다는 초지를 되새겼다. 무려 하루 200명씩이나 환자를 돌보면서도 지겹거나 피곤한 줄 몰랐다. 이렇게 지성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다 보면 혹시 북에 있는 가족도 누가 도와주리라는 신념이 생겼다. 아니 바로 그 믿음으로 자신을 바치기로 했다. "의사를 한번도 만나지 못한 채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친다"는 당초의 인술에 대한 철학을 박사는 묵묵히 실천해 나가기로 했다.

 장기려박사는 한국 최초의 의료보험 조합인 청십자 의료보험 조합을 만들었다. 언제까지나 병원 무료진료가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북유럽의 의료보험 제도를 본딴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탄생시켰다. '건강할 때 이웃 돕고 병났을 때 도움받자'는 표어를 내걸고 주변의 몰이해도 감내해야만 했다. 오로지 가난한 환자를 위한 사랑과 기도로 이뤄진 진료의 공동체를 만든 것이다.

 춘원 이광수의 소설 '사랑'의 주인공 '안빈'의 실제 모델이 장 박사로 알려져 있다.

 그는 경성의전을 수석 졸업하고 59년간 대량 절제 수술에 성공하는 등 간 질환 치료에 앞장서 왔다. 복음 병원이 간 치료의 메카처럼 여겨진 것도 모두 장 박사가 끼친 공적 때문이라 봐도 좋을 듯하다.

 병원장이 무료 환자를 너무 많이 양산하다 보니 병원 적자도 그만큼 불어나게 되었다. 결국 병원 회의에서 앞으로 무료 환자 결정은 원장이 아닌 부장회의에서 결정토록 했다. 이렇게 되자 장 박사는 아무리 딱한 환자의 사정이 있어도 재량권을 발휘하기가 어려워졌다. 입원비를 낼 수 없는 가난한 농부환자를 위해 뒷문으로 도망가게 도와주고 그에게 차비까지 찔러준 일화는 유명하다. 부장 회의의 재량권 제약을 받은 이후에 일어난 일이다.

 그 자신의 일상은 낭비를 모르는 청렴한 생활이었다. 평양에 있을 때도 장기려박사는 월급을 집에 갖다 주지 않으니까 부인이 의사 가운과 환자복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어갔다.

 그와 함께 진료에 임했던 외과 전문의 서재관 박사는 그가 영도 복음 병원 시절부터 고신의료원에 이르기까지 병원에 이렇다 할 담장을 치지 않은 것은 숨은 까닭이 있었다고 말한다.

 장 박사는 가족 만나길 그토록 소망했지만 막상 1985년 정부의 방북 권유를 거절했다. 그 때는 요즘처럼 대량으로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 많은 이산가족을 다 두고 혼자만 특혜를 누릴 수 없다는 뜻에서였다. 1995년 성탄절 새벽에 86세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 해 10월 임종을 앞둔 때 가족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 땅에서 지금 만나 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짧게 만나 헤어지는 것보다 차라리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만나자"고 했다. 한이 너무 깊으면 마치 겉으로 보기엔 태연한 것처럼 보이는 법이다.

 그는 평소 재혼에 대해 "평양에서 주례를 서 주신 목사에게 백년해로하겠다고 서약했으니 100년 이후에나 재혼하겠다"고도 했다. 가난하여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있는 이웃들의 영원한 벗이던 장기려박사는 흔한 아파트 한 채도 갖지 않고 고신 의료원 10층 24평 남짓한 사택에서만 살다 갔다.

 국내에서는 이렇다 할 업적에 대한 포상이 없었을 때 아시아의 노벨상이라고 일컬어지는 '막사이사이상'이 주어진 것은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김규태 : 시인,  2004년 설송문학상 대상, 시집 <흙의 살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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