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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희곡

피터 셰퍼 희곡 『에쿠우스(Equus)』

by 언덕에서 2014. 3. 20.

 

피터 셰퍼 희곡 『에쿠우스(Equus)』 

 

 

 

영국 극작가 피터 셰퍼(Peter Levin Shaffer, 1926 ~ )의 동명 희곡으로 1973년 발표되었다. 실화를 토대로 하여 셰퍼가 2년 반에 걸쳐 창작한 희곡으로, 한때 영국의 법정에 커다란 충격과 파문을 던져준, 6마리 말의 눈을 쇠꼬챙이로 찌른 마구간 소년의 괴기적인 범죄 사실을 소재로 삼은 것이다. 원래 '에쿠우스'란 말은 라틴어로 '말(馬)'이란 뜻이며 이 희곡에서는 상징적인 다의성을 담고 있다. 즉 신이라든지, 숙명의 굴레라든지, 냉혹한 현실이라든지, 원초적인 성의 본능으로 이해된다.

 이 작품의 내용은 이 작품의 내용은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가 말 6마리의 눈을 쇠꼬챙이로 찌른 17세 소년 알런의 비밀을 추적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영화 ‘아마데우스’의 원작자이기도 한 피터 셰퍼는 ‘에쿠우스’로 1973년 토니상 극본상을 받았다. 영국 미국뿐만이 아니라 프랑스 네덜란드등 각국에서 상연되었고 그때마다 절찬 속에 장기 흥행을 이룩한 작품이다.

 라틴어로 말(馬)을 뜻하는 ‘에쿠우스’는 소년 알런에게 신이고, 성(性)이다. 위선적이고 삭막한 현대 사회에서 그가 찾은 희열의 경지이자, 피난처다. 분명 왜곡된 허상이지만, 에쿠우스를 향한 정열은 순수하고 강렬하다. 극 말미 알런을 ‘치료’한 다이사트가 느낀 상실감은 기성세대가 안고 사는 무력감과 허탈감을 상징한다. “결과적으로 내가 한 일은 알런을 유령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란 그의 대사가 이미 정열을 잃고 ‘유령’이 돼버린 관객들에게 긴 여운을 주며 뜨겁게 꽂힌다.

 

국내에서 공연한 연극 <에쿠우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헤스터 판사가 정신과 의사인 마틴 다이사트를 찾아와 말 6마리의 눈을 찔러 멀게 한 형무소로 갈 뻔한 소년 알런스트랑의 치료를 부탁한다. 다이사트는 그녀의 요청을 받아들여 알런을 받아들인다. 알런이 병원으로 오던 날 밤 마틴 다이사트는 자신이 제사장이 되어 아이들을 희생물로 제사를 치루는 악몽을 꾼다. 이상한 눈빛과 의혹을 갖고 치료를 시작하지만 알런의 분노와 두려움에 찬 반응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알런의 악몽에 의혹을 느낀 다이사트는 가정방문을 통해 알런의 배후에 광신도인 어머니와 무기력하지만 위엄을 갖춘 아버지가 있음을 확인한다.

 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알런은 다이사트를 신뢰하기 시작한다. 알런은 생존에 대한 본능적인 집착이 싹트면서도 감출 수 없는 분노와 예민함으로 다이사트와의 한판 전투를 벌인다.

 다이사트의 집요한 추적으로 알런과 말의 세계가 드러나고, 그 베일을 하나씩 벗겨 나가면서 다이사트는 자신만의 실존적 고뇌에 한발씩 깊이 빠져들어 간다.

 아내와의 애정부재, 정상적이라는 모순 덩어리의 세계, 무기력하고 기계적인 자신의 현실을 알런과 그의 신 '에쿠우스'가 벌이는 제의(祭儀) 속에서 발견한다. 그 비밀스런 제의가 이루어지는 마구간에서 질이라는 여자에 의해 섹스를 하게 되는 알런이 자신의 본능적 욕구와 신성시하는 영혼의 충돌에 의해 말의 눈을 찌르게 되는 과정도 재현된다. 그 충격적인 장면을 재현함으로서 악몽의 그림자를 벗는 알런을 향해 다이사트는 절규한다.

 정상의 세계에 대한 분노, 현실로부터 유린되어가는 자신에 대한 두려움으로 다이사트는 소리친다. 최면치료가 끝나고 다이사트는 알런을 동물들이 대우받는 세계로 보내겠다고 선언한다. 이제 다이사트가 말의 신 앞에 무릎을 꿇고 신과의 제의를 벌이며 자유를 향해 긴 여행을 떠날 때가 온 것이다. 

 

피터 셰퍼(1926 ~ )

 

‘왜 말의 눈을 찔렀을까?’라는 궁금증이 해결되는 과정에서 관객은 다양한 충격을 받는다. 강압적인 부모의 왜곡된 사랑에 고통 받고, 사회적 억압에 짓눌린 한 소년의 내면과 마주치기 때문이다.

‘에쿠우스’에서 벗은 몸은 성적 대상물이 아니다. 이 연극을 연출한 많은 연극인들에 따르면 “우리 모두가 현대인이 돼서 놓친 원시의 세계를 표현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에쿠우스』는 실화를 토대로 하여 2년 6개월 만에 탈고한 작품이다. 그러나 셰퍼는 실화에만 집착하지 않았다. 실화에다 알맞게 허구성을 가미시켜 주인공 알런의 괴기적인 행동과 심층심리를, 그의 독특한 극작술의 기법으로 가장 절실하면서도 가장 극명하게 묘파했다. 익히 알다시피 피터 셰퍼는 전통적인 사실주의 극작가는 아니다. 그렇다고 전위적인 극작가의 테두리에 속하지도 않는다. 그는 이미 출발에서부터 독자적인 길을 준비했다. 그 당시 풍미했던 이른바 앵그리 영 맨의 물결에 휘말려들지도 않고 지극히 사실적인 토양 위에 서사극적인 기법과 전위적인 방식 등을 접목시킨 독특한 기법을 창출했다. 바로 그 점에 셰퍼의 작품에 힘과 매력과 의미를 부여해 주었고, 여기에 그의 독자적인 영역이 있고 위대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5년 9월 운니동에 있던 극단 [실험극장] 소극장 개막공연으로 초연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연극 『에쿠우스』는 강태기, 송승환, 최재성 , 최민식, 조재현 등 연극계 스타들이 거쳤다. 괴기적인 소재, 알런과 그의 여자친구 질의 충격적인 마구간 정사신 등 숱한 화제를 낳았고 당시 여주인공의 팬티가 너무 야하다는 이유로 공연이 잠시 중단되면서 외설연극 논쟁의 시발점이 됐다.

 이로 인해 연극계에서는 그때까지 없었던 예매제도가 도입되었고 최초로 관객 10,000명 돌파, 연극사상 최초의 6개월 연속 공연 기록을 세우며 여러 차례의 공연 때마다 폭발적인 호응을 받으며 최장기 공연기록, 최다 관객동원 등 우리나라 연극계에 큰 획을 그은 연극 작품이다.

 

 


 

 

 

 

☞피터 셰퍼(1926 ~ ). 영국의 극작가. 셰퍼는 우리나라 연극 팬들에게는 어느 외국 작가 못지않게 친숙한 극작가다. 1926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희곡 『탐정』을 쓴 앤소니 셰퍼와 쌍둥이이다. 켐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의 더블데이 서점에서 근무했다. 1952년 앤소니 셰퍼와 합작하여 소설 『작은 악어가 어떻게 할 건가?』를 런던에서 출판했고, 뉴욕에서는 1957년에 출판되었다. 1981년 『아마데우스』가 극장에서 개막되어 그로 인해 최우수 희곡상 수상했다. 그의 희곡 『에쿠우스』를 비롯하여 『5 중주』, 『자기의 귀』, 『타인의 눈』, 『블랙 코미디』등은 무대에 올려져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작품 제재의 폭이 워낙 넓고 깊어서 범상한 인물로부터 절대적 신의 문제까지 건드려보려고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