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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김춘수와 이중섭 그리고 이남덕

by 언덕에서 2007. 7. 21.

김춘수와 이중섭 그리고 이남덕

 

종이에 연필로 그리고 색연필로 서명 1955

 

이중섭은 그의 불우했던 생애의 마지막 장소, 청량리의 정신병원에 있으면서 이중섭은 자신의 모습을 자세하게 그린 자화상을 남겼다.  이 그림은 주위 사람들이 그를 향해 미쳤다고 하자 그렇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 그렸다고 전해진다. 거울을 꺼내들고 즉석에서 그렸다는 이 그림은 소설가 최태응이 보관하다가 이중섭 사후에 조카 이영진에게 전해주었고 1999년 초 서울 갤러리 현대에서 이중섭전이 열렸을 때 처음 공개되었다. 고흐의 자화상에 비해 처연한 느낌을 준다.

  ‘꽃’의 주제로 한 시를 많이 쓴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김춘수는 1977년 시집 ‘남천(南天)’에서  ‘이중섭’ 연작시 9편을 발표하는데 이중에 4편이 서귀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는 이 연작시를 통해 화가 이중섭이 일본인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1.4후퇴 후 북한을 탈출, 1951년 봄부터 약 6~7개월간의 서귀포 생활을 다뤘다.  서귀포에서의 이중섭의 절박하고 극도로 빈궁한 생활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야마모토 마사꼬(山本方子) 또는 이남덕(李南德)

 

야마모토 마사꼬(山本方子)라는 이 일본 여인은 한때 이남덕(李南德)이라는  한국식의 이름으로 살았던 적이 있다. 화가 이중섭의 아내로 한국에서 살던 몇 년간이었다. 이중섭의 아내가 되면서 마사꼬 여사는 한국이름으로 개명하였다. 그러나 1950년 한국 전쟁시 이중섭의 가족들은 계속되는 참담한 생활고로 인해 아이들은 영양실조 상태에 빠지고 아내는 결핵으로 인해 각혈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1952년 아내와 두 아들은 일본인 수용소로 들어갔으며 이후 일본으로 들어갔다. 함께 갈 수 없었던 이중섭은 아내와 아이들을 내내 그리워하며 지내다가 그 이듬해 가까스로 일주일간 일본에 머무를 수 있는 선원증을 구하여 다녀왔는데, 그것이 가족과의 마지막 만남이 되고 말았다.

 

시인 김춘수

 

시인 김춘수는 아내와 아이들의 ‘저희끼리 오돌오돌 떨고 있는” 표현처럼 이중섭에게서 아이들과 아내의 떪의 상태를 감지해 내었다.  또 “소리내어 아침마다 아내는 가고/ 忠武市 東湖洞/ 눈이 내린다”라는 표현에서 보듯  흰색은 이중섭의 삶의 허무함, 순간적임, 텅빔과 함께 다시 태어나는 삶의 허무함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1977년 연작시를 발표하기에 앞서 고교 국어교사인 시인 김춘수는 학생들을 데리고 제주에 수학여행을 다녀갔다고 한다. 바다의 물빛이 매우 아름답고, 해안선 도처에 깔려 있는 유채꽃밭이 인상적이었다고 어느 평론집에선가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서귀포에 대한 대한 기억은 깎은 듯한 벼랑이 바다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갈매기떼가 한가로이 날고 있었다고 적었다. 여행 후 그는 한때 서귀포에 살았던 이중섭을 소재로 연작시를 쓰게 된 것이다.  

 

 

알루미늄 박지에 긁어 새기고 유채로 메운 뒤에 채색;1954년, 미국 뉴욕 모던아트뮤지엄 소장

 

 

 

 

 

                                  李仲燮 1                                      

                                                          김춘수
 

 

저무는 하늘
동짓달 서리 묻은 하늘을

아내의 신발 신고
저승으로 가는 까마귀

까마귀는
남포동 어디선가 그만
까욱하고 한번만 울어버린다.

오육도를 바라고 아이들은
돌팔매질을 한다.

저무는 바다,
돌 하나 멀리멀리
아내의 머리 위 떨어지거라.
   

 

종이에 유채와 연필32.5, 49.8cm, 1954년, 개인소장

 

 

 

                                 李仲燮 2                                             

 

                                    김춘수
 

 

아내는 두번이나
마굿간에서 아이를 낳고
지금 아내의 모발은 구름 위에 있다.

봄은 가고
바람은 평양에서도 동경에서도
불어오지 않는다.

바람은 울면서 지금
서귀포의 남쪽을 불고 있다.

서귀포의 남쪽
아내가 두고 간 바다,

게 한 마리 눈물 흘리며, 마굿간에서 난
두 아이를 달래고 있다.
   

 

 

은박지 그림.유화 <도원>의 구도를 그대로 은박지에 옮긴 그림이 있는데 이는 월남 시인 박남수가 소장하던 것이다. 묘한 인연이다. 시인 박남수는 무슨 이유에선지 한국에서의 생활에 포기하고 미국이민을 갔다

 

 

 

                                     李仲燮 3                                            

                                김춘수
 

 

바람아 불어라,
서귀포에는 바다가 없다.
남쪽으로 쓸리는

끝없는 갈대밭과 강아지풀과
바람아 네가 있을 뿐
서귀포에는 바다가 없다.

아내가 두고 간
부러진 두 팔과 멍든 발톱과
바람아 네가 있을 뿐

가도 가도 서귀포에는
바다가 없다.
바람아 불어라.
   

 

 

 

종이에 유채;30*;41.7cm 1953~4년 무렵홍익대학교 박물관

 

 

 

 

 

李仲燮 4  

 

                           김춘수 

 

씨암탉은 씨암탉,
울지 않는다.

네잎 토끼풀 없고
바람만 분다.

바람아 불어라, 서귀포의 바람아
봄 서귀포에서 이 세상의
제일 큰 쇠불알을 흔들어라
바람아.

 

 

 

 

 위의 편지 편지 그림은 1955년 이중섭이 아내와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보낸 편지에 동봉한 그림이다. 방바닥에는 담배대와 펜, 쌓여진 편지가 있고, 그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소 그림이 상단 벽에 걸려있다. 두 아이 그리고 아내와 행복하게 서로 얼싸안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 매우 행복해 보인다. 낙서처럼 그린 그림이지만 적혀진 글자 하나하나 까지도 화면에 활기를 주는 요소이다. 이중섭은 생활고에 쫓기면서도 계속 그렸는데, 종이를 살 돈이 없어서 담배 종이, 은지에 그리기도 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이러한 은지화와 그의 편지 그림은 모두 이중섭이라는 작가의 삶이 묻어나는 작품들이다.   "...어떠한 부부가 서로 사랑한다고 해도, 어떠한 젊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현재 영원히 당신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열렬한 애정 만한 애정이 또 없을 것이오. 일찍이 역사상에 나타나 있는 애정의 전부를 합치더라도 대향, 남덕이 서로 열렬하게 사랑하는 참된 애정에는 비교가 되지 않을게요...."(1953년 편지 글 중에서)
 이러한 애끓는 사랑의 편지는 바다 건너 일본에 있는 아내에게 전해졌다. 이중섭은 편지를 쓸 때에 그림을 동봉하곤 하였는데, 대개 이상향을 그려낸 것들로 판단된다. 무릉도원인 듯 복숭아를 따는 아이들과 부부의 모습이라든지, 발가벗은 아이들이 나무에 매달려 흥겹게 노니는 모습, 가족의 단상 등이다. 

 

 

                                                                                     내가 만난 이중섭

                                                                                                                                                                  김춘수

 

광복동(光復洞)에서 만난 이중섭(李仲燮)은 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었다. 동경(東京)에서 아내가 온다고 바다보다도 진한 빛깔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눈을 씻고 보아도 길 위에 발자욱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뒤에 나는 또 남포동(南浦洞) 어느 찻집에서 이중섭(李仲燮)을 보았다.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 진한 어둠이 깔린 바다를 그는 한 뼘 한 뼘 지우고 있었다.동경(東京)에서 아내는 오지 않는다고,

 

 

은박지 그림 뒷날 대작으로 완성할 것이니 남에게 보이지 말라고 하며 아내에게 맡긴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