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참고자료

백범 김구 암살사건(白凡金九暗殺事件)

by 언덕에서 2007. 6. 18.

 

 백범 김구 암살사건(白凡金九暗殺事件)

 

 

 

 

                      

 1949년 6월 안두희(安斗熙)에 의하여 한국독립당 당수 김구가 암살된 사건. 1949년 6월 26일 일요일 오전, 육군 소위 안두희가 김구를 그의 거처인 경교장(京橋莊)으로 찾아가 45구경 권총으로 사살하였다.

 그는 현장에서 경호원들에 의하여 붙잡혀 헌병사령부로 연행되었다. 안두희는 김구가 남북협상에 응함으로써 정치와 사회를 혼란에 빠뜨렸기 때문에 그를 죽이게 되었다고 살해 동기를 진술하였다. 8월 6일 고등군법회의에 회부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육군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석 달 뒤 형기는 징역 15년형으로 감형되었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김구 암살사건은 안두희의 단독 범행에 의한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안두희는 한국독립당의 비밀당원으로서 당수인 김구를 찾아가 어떤 정치문제에 관하여 언쟁을 벌이다가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라는 것이다. 복역 중 6ㆍ25전쟁이 일어나자 이승만 정부는 안두희를 형집행정지처분으로 석방하여 바로 군에 복귀시켰다. 그러나 그 후 국회에서 그의 석방과 군 복귀에 관하여 문제가 제기되자 정부에서는 그를 소령으로 예편시켰다. 그 후 강원도 양구에서 군납업자로 상당한 재산을 축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4ㆍ19혁명 이후 김구 암살사건의 진상 규명과 안두희에 대한 재처벌 요구가 제기되었다. 그러나 범인인 안두희가 계속 전모를 밝히지 않은데다가 제2공화국 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재처벌은 물론 사건 진상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안두희의 부분 진술이나 지금까지 벌인 조사의 결과 밝혀진 바를 종합해 보면 김구 암살사건은 배후가 있는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범행일 가능성이 크다. 안두희는 증언에서 암살의 배후 조종 세력으로 당시의 포병사령관 장은산(張殷山)과 고위 정치 브로커 김지웅을 지명함으로써 이 사건에 군과 경찰, 그리고 정계 요인들이 연관되었음을 암시하였다. 범행 1주일 전에 대통령 이승만을 만났다는 진술까지 하고 있다.

 안두희는 민족의 지도자로 존경받던 김구 암살범이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백주대로를 활보하는 데 의분을 느낀 여러 사람들에게 계속 피습 위협을 받아왔다. 대표적인 인물은 권중희이다. 1936년 경북 안동 출생으로 평범한 시민으로서 생활하다가 백범암살범 안두희가 잡지 인터뷰에서 진실을 외면하고 변명만 늘어놓자 이에 격분, 직장을 그만두고 추적의 길에 나선다. 1987년 대로상에서 안두희를 몽둥이로 응징하기도 했던 저자는 추적 과정에서 세 차례에 걸쳐 안두희를 응징하고 중요한 자백을 받아낸다. (월간 신동아 참조) 그러나 국회청문회와 법정등에서 안두희는 권중희에게 했던 자백을 모두 번복한다. 1996년 10월 23일 권중희의 진실을 신뢰하던 버스 운전기사인 박기서(朴琦緖)에게 살해되었다.

'참고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맞춤법(틀리기 쉬운 말)  (0) 2007.08.24
김춘수와 이중섭 그리고 이남덕  (0) 2007.07.21
영국의 평론가 존 러스킨  (0) 2007.06.05
소설가 박완서  (0) 2007.04.25
백범 암살범 안두희  (0) 2007.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