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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향숙 중편소설 『안개의 덫』

by 언덕에서 2025. 3. 27.

 

 

 

김향숙 중편소설 『안개의 덫』

 

김향숙(金香淑.1951∼)의 중편소설로 1990년 3월∼4월에 걸쳐 [한국문학]에 발표되었다. 1990년 제21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이다.

 김향숙은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났으며 이화여자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였다. 197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소설집에 <겨울의 빛> <수레바퀴 속에서> <종이로 만든 집> <물의 여자들> <문 없는 나라> <스무 살이 되기 전의 날들> <떠나가는 노래> 등이 있다. 김향숙의 작품은 상징 감각이 유니크하고,미묘한 심리 현상과 현실에의 예리하고 다각적인 분석으로 유명하다.

 김향숙은 흔히 여류 작가가 빠지기 쉬운 여성적인 존재 양식의 심연 또는 한계를 벗어나서 시대적인 상황의 무게 때문에 망가져 가는 삶의 아픔을 부각시켜, 잘못된 역사의 진행과 개인적인 삶의 괴리 속에 끼어 고뇌하는 젊은이들의 초상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기성세대의 현실주의적인 삶의 양식과 젊은 세대의 도전적인 이상주의적 삶의 양식 사이에 패어져 있는 상호 관계의 단층과 공소(空疎)함, 그리고 몰이해의 벽을 대비(對比)시킴으로써 현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작가적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장준구는 사생아로 태어나 수전노인 생부로부터 입적조차 거부당한 채 불우하게 자라났다. 구사대로 앞장섰던 그가 노동운동에 뛰어든 것은 그가 후려친 각목에 중상을 입은 점순 때문이다. 노동운동에 온몸을 바쳐 희생하는 순수한 그녀의 모습에 이끌려 노조위원장 자리까지 올라온 그이지만 현재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출신 성분의 벽을 넘고 어렵게 결혼하여 구설수까지 오르면서 연립주택까지 마련하였지만 대학 출신의 아내 정원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또한 회사에서는 이념으로 무장한 신진 노조세력이 그를 어용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그런 그에게 병색이 완연한 점순이 누나가 찾아온다. 아내와 편하지 않은 가운데 점순은 떠나버리고 장준구는 회사로부터 강성인 노조의 세력을 꺾기 위한 창구로 이용당하기 직전이다. 의붓딸인 예인의 맑은 눈을 보고 마음을 붙이려 하지만 아내는 다툼 끝에 집을 나간다. 공장에서 전화를 받고 나가려는데 집에 들어온 아내가 할 말이 있다고 한다. 다녀와서 보자며 밖으로 나온 그의 앞에 지독한 안개가 다가오고 있다.

소설가 김향숙 (金香淑.1951∼)

 

 작가는 분단의 족쇄를 다룬 단편 <부르는 소리>와 빈민여성이 겪는 굴레를 그린 <떠나가는 노래> 등의 작품을 통해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나타내고 있으며, 중산층 여성의 허위의식을 파헤친 <우리 파수꾼>이나 <안개의 덫> 등의 작품을 통해 일관된 주제로 선택되는 여성주의를 느낄 수 있다.

 1990년 이질적 계층간의 화해와 공존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한 소설 <문 없는 나라>를 발표하고, 1992년 세대간의 차별성을 구체적으로 그린 중편 <잠들지 않는 바다>를 발표했다. 연암문학상(1989), 동인문학상(1990) 수상했다.

 이 소설은 1980년대 후반 노동운동의 현주소를 밝힌 작품이다. 이 소설은 노동운동이 절정에 달한 이후에 그 절정기에 활약한 주역들이 사라지는 환경을 더듬고 있다.

 

 

 군부독재가 무너지고 임금이나 처우 개선 등 기본적인 투쟁의 대상이 성취된 뒤에 노동운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 했다. 충분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이념도 없는 장준구는 밀어붙이는 힘과 의리 하나로 노조위원장 자리까지 올라왔지만 이제 그같은 인물은 아무 쓸모가 없다. 출신 성분의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무리하게 강행한 결혼은 치수에 맞지 않은 옷처럼 거북스러울 뿐이다.

 그에게 유일한 위안은 정원이 데리고 온 딸 예인이다. 그는 술집에서 들어온 위장한 여대생 노동운동가를 보고 예인이 자라서, 그 맑고 깨끗하고 따스한 눈빛이 변하는 일이 없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그의 주변은 온통 안개뿐이다. 강 위의 안개 감옥에 갇힌 한 사람의 수인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는 현실, 작가는 장준구를 통하여 당시의 해법없는 노동 현장의 현주소를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