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단편소설 『중국행 슬로보트(中国行きのスロウ・ボート)』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1949~ )의 단편소설로 단편집 <TV 피플>(1989년 4월호)에 수록된 작품이다. 역자에 따라 '중국행 화물선'으로도 번역되었다. 단행본에 수록될 때 가필이 이루어졌다. 이후 1990년에도 상당히 가필하여 전집에 실렸으므로 작가의 애정이 느껴지는 작품이라고 추측된다. 노래 'On a Slow Boat to China'에서 제목을 따오고 그 다음에 내용을 적었으니 제목을 떠올리고 그 다음 집필을 시작했을 것이다. 대략적인 내용은 주인공이 살면서 몇몇의 중국인을 만난 경험담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내용이다. 현대인의 고립감과 인간관계의 단절을 우화적으로 그려낸 소설이다.
‘맨 처음 중국인을 만난 게 언제였을까?’ 이 고고학적 의문을 출발점으로 주인공 '나'는 그때까지 만난 중국인의 기억을 더듬는다. 모의고사 시험장에 감독관으로 들어온 교사, 나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인해 단 한 번의 데이트 이후 영영 만나지 못한 여대생,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십 년쯤 뒤 우연히 재회한, 백과사전 외판원이 되어 있는 고등학교 동창. 하나같이 기묘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기억 속 이 세 중국인을 떠올리는 동시에 도쿄의 거리를 바라보며 나는 상념에 젖는다.
단편소설『중국행 슬로보트』는 무라카미 하루키 특유의 간결하고 몽환적인 문체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단순한 서술 속에 깊은 철학적 질문과 인간 내면에 대한 탐구가 담겨 있으며, 전체적으로 고독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루키의 작품 세계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인 "고립", "도피", "자아 탐구"를 응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비록 짧은 단편이지만, 독자들이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만드는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은 도쿄에서 혼자 사는 30대 초반의 평범한 회사원이다. 그는 어느 날 우연히 신주쿠의 한 술집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를 만난다. 이 남자는 스스로를 '중국행 화물선의 승객'이라고 소개하며, 자신이 곧 떠날 화물선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주인공에게도 그 배를 타고 떠나라고 권유하며, 화물선의 여행이 '이 세상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주인공은 이 만남을 기묘하게 여긴다. 이후 그는 점차 자신의 일상에 환멸을 느끼고 화물선에 대한 생각에 빠져든다.
화물선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과 현재의 삶에 대한 권태로움 사이에서 갈등하던 주인공은, 자신이 마치 '중국행 화물선'에 탑승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처한 것처럼 느끼기 시작한다. 그는 회사 생활과 인간관계에서 점점 고립감을 느끼고, 무언가 의미 있는 변화를 찾는다. 그러나 화물선에 대한 실체는 여전히 모호하고 그 배가 정말로 존재하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그 화물선은 단순한 탈출구인가,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 환상인가? 주인공은 혼란 속에서 점점 더 화물선에 집착한다.
결국, 주인공은 자신의 생활을 완전히 정리하고, 남자의 안내를 따라 화물선이 출항한다는 장소'로 향한다. 하지만 그곳은 주인공이 예상했던 화려한 항구가 아니라 황량하고 정적만이 흐르는 장소이다. 그는 마치 자신이 잘못된 장소에 온 것처럼 느끼지만 동시에 자신이 화물선에 탑승하기 위해 왔음을 직감한다.
소설의 결말은 주인공이 화물선에 실제로 탑승했는지 아니면 단지 그곳에서 홀로 사라졌는지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 화물선의 존재와 여정은 끝까지 미스터리로 남는다. 소설은 주인공이 자신만의 선택을 통해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현실에서 도피한 것인지의 판단을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어린 시절 환경은 그의 문학에 줄곧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고향이 상업 무역 지역인 간사이(關西) 지방이었고, 자라난 곳이 국제 무역항을 갖는 도시의 주택가였다는 사실이, 그가 미국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요인이라고 한다면, '중국'에 대한 관심도 역시 그의 성장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본시 간사이 지방에는 재일 한국인이나 재일 중국인(화교)이 비교적 많이 살고 있어 일상생활에서 '중국'과 만나는 일은 극히 평범한 일이었다. 그러나 무라카미의 '중국'에 대한 관심의 대상은 중국의 역사나 혁명 또는 문화 같은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자기 주변에 있던 '중국인'에 대한 것이다.
'차별'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추하고 증오해야 할 만한 것이라는 사고방식이 근저에 깔려 있었기 때문에, "상대가 일본인이건 중국인이건 누구이건 간에 마찬가지다"라고 하는 생각을 하루키는 굳은 신념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물론 무라카미는 자진해서 소리 높이 반차별 사상의 소유자라고는 말하지 않지만, 미국 '문학'에 대해서 아무런 위화감도 갖지 않는 감성과 '중국인'을 하나의 인간으로서 평등하게 대응하는 자세에는 상통하는 면이 있다. 하나의 인간으로서 '세계'에 대하여 등거리를 유지하는 생활 태도는, 무라카미의 내부에 확실한 '민주주의=개인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하지만 무라카미의 경우, 이 '민주주의=개인주의' 사상은 이 '풍요'롭고 '평화'로운 사회 속에서 '니힐리즘'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중국행 슬로보트」는 이 글의 머리 부분에서 말한 세 사람의 중국인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그 마무리는 당돌하게 끝낸다.
(전략) 지구의(地球儀) 상(上)의 황색 중국. 앞으로 내가 그 장소를 찾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나를 위한 중국이 아니다. 뉴욕에도 레닌그라드에도 나는 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나를 위한 장소가 아니다. 나의 방랑은 지하철의 차 안이나 택시 뒷좌석에서 행해진다. 나의 모험은 치과 병원의 대합실이나 은행 창구에서 행해진다. 우리들은 어디에도 갈 수가 있고, 어디에도 갈 수가 없다. (본문에서)
마무리의 전반부에는 '중국'이라는 메타포어에 위탁한 하루키의 상황 인식의 표백이 있다. 물론 이 인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국'은 '미국'이라고 하거나 '소련'이라고 해도 전혀 상관이 없는 메타포어이다. 그리고 '나의 방랑은 지하철의 차 안이나 택시 뒷좌석에서', '나의 모험은 치과 병원의 대합실이나 은행 창구에서'라고 말함으로써, 일상생활이나 '내면=관념'에서 '방랑'이나 '모험'의 범위를 한정하고 있다. 그것은 '나'는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는 결의를 표명한 것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으며, 동시에 하루키가 작가로서 '관념의 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이 아닌가,라고 무라카미 하루키에 관한 전문연구가 구로코 가즈오 씨는 지적했다.
☞구로코 가즈오(古一夫)는 일본 문학계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 연구로 명성을 얻은 학자이다. 특히,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속에 숨겨진 다양한 의미와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구로코 가즈오는 단순히 작품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을 넘어, 작품 속에 숨겨진 상징, 은유, 그리고 사회적, 문화적 배경까지 깊이 파고들어 분석했다. 특히,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숲, 음악, 그리고 도시 공간 등의 이미지를 통해 작가의 내면세계와 작품의 주제를 탐구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잃어버린 세대의 목소리>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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