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포크너 연작소설 『야생의 정열 (The Wild Palms & Old Man)』
미국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William Faulkner.1897∼1962)의 연작 중편소설로 1939년 발표되었다. 이 소설은 두 개의 독립된 이야기가 교차하며 전개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진 작품이다. 두 이야기는 「야생 종려나무(Wild Palms)」와 「늪지간(Old Man)」이라는 중편소설으로, 각각의 이야기에서 등장인물들이 고통과 자유, 사랑과 절망을 묘사한다. 두 중편소설은 장마다 교차하는 독특한 서술 방식으로 프랑스 문단 내 ‘포크너 신드롬’을 일으켰다. 서로 다른 두 이야기가 엉켜 있지만 삶과 죽음, 자유와 구속 사이를 고뇌하는 인간의 어두운 내면 심리가 하나로 이어져 포크너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그린다.
『야생의 정열』은 전 세계적으로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 작가, 비평가, 심지어 영화감독의 마음마저 사로잡았다. 특히 미국보다도 남미와 유럽 지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출간된 지 2년 뒤인 1941년에 보르헤스에 의해 스페인어로 번역되어 남미 문학계에 영향을 준 작품이기도 하다. 프랑스에서는 신세대 영화감독이 문학을 활용한 기법을 창안하는 데 계기가 되어 ☞누벨바그의 성장에 이바지했다. 아녜스 바르다는 책의 배경과 소재를 빌려 자신의 영화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을 만들었다.
『야생의 정열』을 향한 독자들의 애정은 현재까지도 이어져 2024년 7월 국내 개봉한 빔 벤더스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주인공이 밤낮으로 읽는 책으로 등장한다. 작중 종려나무 잎이 바람결에 나부끼는 장면은 주인공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꿈에도 재생된다. 꿈에서 깨어난 주인공은 다시 삶 속으로 뛰어드는데, 많은 영화에서 이 소설이 인용되고 변주되었어도 본질적인 메시지는 같다. 삶의 흐름에 저항하거나 따라 흘러가면서 인간은 살기를 계속한다. 그러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갈라지는 흐름을 이중소설로 담은 듯한 이 작품은 포크너만의 에너지를 한데 모아 강렬한 시각적 언어와 묘사로 우리를 삶이라는 망망대해로 나아가게 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야생 종려나무(The Wild Palms)
해리 윌버른이라는 의과대학 중퇴자 총각과 유뷰녀 샬롯 랜더스 사이의 금지된 사랑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샬롯은 남편과 자녀를 두고 있지만, 해리와 사랑에 빠져서 결혼 생활을 버리고 해리와 함께 도망친다. 둘은 뉴올리언스에서 시작해 여러 도시를 전전하며 애정 행각에 몰입한다.
둘은 남부와 서부 여러 도시를 떠돌며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비난에 아랑곳하지 않고 관계를 유지한다. 해리는 샬롯에게 헌신적이지만, 이들의 관계는 갈수록 불안해진다. 샬롯은 해리와의 애정 행각이 자신을 파괴하고 있음을 느끼고, 해리 역시 고통과 혼란을 겪는다.
위기는 샬롯이 임신하면서 찾아온다. 샬롯은 아이를 원하지 않으며, 해리는 그녀의 의사를 존중하고 낙태를 시도한다. 그러나 낙태 시술이 잘못되어 샬롯은 죽는다. 이 사건은 해리에게 큰 충격이어서 그는 절망에 빠진다.
샬롯의 죽음 후, 해리는 살인 혐의로 체포된다. 해리는 자기 행동을 후회하며 자책감에 시달리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샬롯을 사랑했음을 확신한다. 법정에서는 해리의 죄와 샬롯과의 사랑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며, 결국 해리는 유죄 판결을 받고 갇힌다.
결말에서 해리는 감옥에서 샬롯과의 사랑을 반추하며, 비록 고통스러웠지만 진정한 자유의 삶을 경험한 시간이었다고 기억한다. 이로써 그는 감옥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조차 정신적인 자유를 얻고자 노력한다. 해리는 고통과 사랑을 동시에 품고, 자기 행동에 대한 깊은 반성 속에서 내면의 평화를 찾아간다.
●늪지간(Old Man)
1927년 미시시피강의 대홍수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은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한 죄수로, 그는 강도 혐의로 수감 중이다. 그는 비교적 조용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데 주로 육체노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홍수가 발생하면서 그는 다른 죄수와 함께 특별 임무를 맡는데 홍수에 휩쓸려 고립된 임산부를 구조하는 일이다.
죄수는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작은 보트를 타고 미시시피강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그리 간단하지 않은 일이다. 그는 거대한 강의 힘과 싸우며 자연의 무자비한 폭력 속에서 많은 장애물과 맞닥뜨린다. 이 임산부를 구조하려는 임무는 그의 마음속에서 단순한 도피처가 아닌, 자신의 내면을 시험하는 고난의 여정으로 발전한다.
홍수로 죄수는 거대한 자연의 힘으로 압도당하며 점차 길을 잃는다. 그는 임산부와 함께 강에서 표류하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싸움을 벌인다. 또한, 임신부가 출산할 시점이 다가오면서 상황은 더욱 긴박해진다. 이 때 죄수는 자신의 임무를 다할 것인지, 아니면 생존을 위해 임산부를 포기할 것인지 갈등한다.
임산부는 결국 보트 위에서 아기를 출산하게 되고, 죄수는 혼란스러운 감정 속에서 산모와 아기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변한다. 자연과 싸우는 가운데 그는 본능적으로 아기를 돌보고 임산부의 생명을 보호하려 애쓰지만 이는 죄수에게도 큰 부담이다. 그는 책임감과 인간적 도리를 포기하지 않지만 자신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에 괴로워한다.
결국 죄수는 홍수 속에서 구조된다. 그는 자신의 임무가 성공했음에도 이전의 자유를 되찾지 못한다. 오히려 그는 다시 감옥으로 복귀한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느꼈던 자유와 그로 인한 고통을 기억하며 자신의 인생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는다. 그는 자신이 자연의 거대한 힘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 존재인지 그리고 인간의 자유와 선택이 어떻게 고통과 얽혀 있는지를 깨닫는다.
작중 야생 종려나무는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첫째, 야생 종려나무는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자라며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난 모습을 떠올린다. 이와 마찬가지로 소설 속에서 해리와 샬롯의 사랑은 사회적 규범과 전통적인 도덕적 질서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사랑이다.
둘째, 야생 종려나무는 고요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나지만, 결코 오래 유지되지 않는 성질의 나무다.
셋째, 야생 종려나무처럼 해리와 샬롯은 다른 사람들과 고립된 상태에서 자기 세계를 만들어 간다. 둘은 자신들만의 이상적인 사랑을 추구하지만, 사회에게서 멀어질수록 그들의 관계는 점점 더 파괴적인 성향을 띤다.
넷째, 야생 종려나무는 생명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상징이다. 샬롯이 임신하면서 사랑은 생명의 가능성을 품었지만, 결국 그 생명은 파멸로 끝나고 샬롯 또한 죽음을 맞이한다. 이처럼 야생 종려나무는 이처럼 생명과 죽음 사이에서의 긴장을 상징한다.
다섯째, 야생 종려나무는 자연 속에서 자라는 존재로 인간이 만든 사회적 규범과 충돌하는 자연의 원초적인 힘을 상징한다. 둘은 외부의 개입 없이 완전히 자유롭기를 원했지만, 결국 사회 규범과 현실의 제약을 피할 수 없다. 이에 따라 그들의 사랑은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는다.
이처럼 "야생 종려나무"는 자유와 욕망 그리고 그로 인한 파멸의 상징이다. 이 나무는 아름답고 강렬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동시에,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충동과 그로 인한 고립과 고통을 담고 있다. 해리와 샬롯의 사랑은 마치 야생 종려나무처럼 자유롭고 충동적이지만, 그 자유는 결국 그들을 파멸로 이끈다. 이 상징을 통해 포크너는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모순을 깊이 있게 토로하고 있다.
♧
‘Old Man’은 원래 "늙은이"로 직역될 수 있지만, 한국어 번역에서는 "늪지간"으로도 번역되었다. 이는 단순한 직역 이상의 문맥적, 상징적 의미를 고려한 선택으로 실제로 '미시시피강'을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이다. 미국 남부에서 미시시피강은 "Old Man River"라고 불린다. 강이란 오랜 세월을 거쳐 흐르는 영속적이고 강력한 자연의 힘을 상징한다. 포크너의 소설에서 미시시피강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의 중심적인 존재로서 인간과 자연 간의 투쟁과 공존을 상징한다.
또한 "Old Man"은 미시시피강에 대한 일종의 인격화로 사용되었다. 미시시피강은 오래되고 거대하며, 인간의 힘으로는 통제하기 어려운 존재이다. 이 강은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을 시험하고 그들을 고난 속으로 몰아넣는 강력한 존재이다. "늪지간"이라는 번역은 단순히 강 자체를 의미하는 것뿐만 아니라, 미시시피강이 범람하면서 만들어진 습지대 그리고 홍수의 힘으로 만들어진 자연환경을 은유한다. 이 이야기는 미시시피강의 범람이 핵심 사건이므로, "늪지간"이라는 표현이 이러한 상황과 공간적 맥락을 더 잘 전달할 수 있다. 홍수로 인해 물에 잠긴 지역, 강변의 습지대를 떠올리게 하는 "늪지간"이라는 표현으로 번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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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작품은 포크너의 문학적 실험 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소설이다. 두 개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배경과 인물들을 다루지만, 둘 다 인간의 고통과 선택 그리고 자유의 본질에 관해 깊이 탐구하고 있다.
『야생 종려나무(Wild Palms)』는 현대적인 금지된 사랑을 다룬다. 해리와 샬롯의 관계는 충동적이다. 이들의 사랑은 사회적 관습을 거부하고 자유를 추구하려는 시도이지만 고통과 죽음을 초래한다. 두 사람은 감정적으로 서로에게 묶여 있으되 그들의 사랑은 대단히 파괴적이다.
『늪지간(Old Man)』은 1927년 미시시피강의 대홍수 동안 강도 혐의로 감옥에 갇힌 한 죄수가 홍수 속에서 임산부를 구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죄수는 사건의 중심에서 강력한 자연의 힘과 맞서 싸우면서도 자신의 인간적인 한계와 내면의 갈등을 실감한다. 이 이야기의 남성은 명령과 의무감에 의해 행동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는 자유와 희생이 결국 그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이 두 이야기는 각각의 인물들이 선택한 길이 그들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는데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모순을 드러낸다. 포크너는 두 이야기를 병렬적으로 배치하여 독자가 각기 다른 환경과 인물들을 통해 같은 주제를 다양하게 탐구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 작품의 주제는 사랑과 자유, 인간 존재의 고통이며 포크너 특유의 상징적이고 복잡한 문체가 작품의 깊이를 더한다.
☞누벨바그(Nouvelle Vague)
1950년대 후반 프랑스의 여러 개성파 영화감독들이 추구한 작품 양식. 그 중 손꼽히는 감독들로는 루이 말, 클로드 샤브롤, 프랑수아 트뤼포, 알랭 르네, 장 뤼크 고다르를 들 수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1950년대 작가이론을 대중적으로 주창한 영화잡지 [영화 노트]와 관련을 맺고 있었다. 작가이론의 주장은 감독들이 영화를 좌우하기 때문에 사실상 이들이 영화작가나 다름없다고 보는 것이었다.
누벨 바그 감독들이 만든 영화는 기교가 너무 지나쳐 주제를 흐리게 만드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 참신하고 재기발랄한 기법이 곧 누벨 바그의 특징이기도 했다. 그 예로서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1960)를 꼽을 수 있다. 여기서는 빠른 시퀀스(일련의 장면) 속에서 장면들이 바뀌기 때문에 급박하고 단절된 듯한 효과를 낸다.
당시 문학에서의 앙티로망, 연극에서의 앙티테아트르 등의 동향과 상관관계에 있으나 특별히 체계적인 이론을 갖춘 예술운동은 아니다. 공통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줄거리보다 표현에 중점을 두고 현실과 카메라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중시하여, 예컨대 즉흥연출, 장면의 비약적 전개, 완결되지 않은 스토리, 영상의 감각적 표현 등에 의하여 종래의 영화개념을 바꾸어 놓은 점이다.
L.말의 <사형대의 엘리베이터>(1957) <연인들>(1958), 샤브롤의 <사촌들>(1959) <이중의 열쇠>(1960), A.레네의 <24시간의 정사>(1959), F.트뤼포의 <어른들은 알아주지 않는다>(1959), 고다르의 <멋대로 해라>(1960) 등이 대표적 작품이다.
누벨 바그는 명백하게 하나의 영화운동으로 정의되지는 않았지만 영화에 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영화가 예술적 성공과 함께 상업적 성공도 거둘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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