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 우화소설 『여우 라이네케(Reineke Fuchs)』
독일 시인·극작가·사상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Goethe,Johann Wolfgang von. 1749∼1832)의 우화소설로 1794년 발표되었다. 괴테는 독일의 가장 중요한 문학가 중 한 명으로 그의 작품은 시·소설·희곡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있다. 이 작품은 중세 독일 문학의 풍자적인 동물 이야기인 <라이네케 포크스(Reineke der Fuchs)>를 근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이 이야기는 중세 문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화 형식으로 주인공은 교활하고 기만적인 여우 라이네케다.
작품에서 사자가 나라를 지배하고는 있으나 곰과 늑대가 고문직에 앉아 있다. 힘이 세거나 술책이 능한 동물(여우)들이 비록 사자가 금지하고 있음에도 그들의 충동이나 모험을 추구하고 있다. 작품에 자세히 언급되고 있는 종교 교권의 횡포는 당시 시대의 살아 있는 현실이었다. 작가는 주인공 여우를 통해 사회의 정의는 무엇이며, 민중은 어떠한 모습으로 착취당하고 있으며, 정치인과 종교인은 민중을 어떻게 핍박하고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우화소설『여우 라이네케』는 독일에서 전통적으로 구전되어온 설화이며 책으로도 전해진 에스오프스 우화나 중세 동물 서사시의 영향을 받았다. 이 작품은 인간 사회의 부패와 권력 구조를 풍자적으로 비판하며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중요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여우 라이네케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황제와 영주, 귀족, 교회의 횡포 등 당시의 사회현실을 그려내고 있다. 게다가 설화적 특징인 조잡성, 희극적 상황, ㅌ박함 등이 적절히 배합된 구성과 문체를 살려 특유의 재미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여러 동물들이 법정에 모여 왕인 사자에게 여우 라이네케의 범죄를 고발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동물들은 라이네케가 저지른 여러 악행을 폭로하며 그가 처벌받기를 요구한다. 특히 늑대 이세그림(Isengrim)은 자신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증언하며 라이네케가 자신을 속이고 불명예를 안겼다고 주장한다. 사자는 이 증언들을 듣고 라이네케를 소환하려 하지만, 교활한 여우는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계속해서 도망다닌다.
이후
라이네케는 소환된 후에도 자신이 무죄라고 주장하며 재판에서 빠져나갈 구실을 찾는다. 그는 자신을 고발한 동물들이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 반박하며 심지어 자신이 사자를 위해 귀중한 보물을 숨겨두었다고 주장한다. 이 발언으로 사자의 관심을 끈 그는 보물을 찾기 위해 사자에게 기회를 달라고 요청하며 잠시 시간을 번다.
한편, 다른 동물들은 라이네케의 교활함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가 또다시 사기를 치려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자는 보물 이야기에 매료되어 그의 말을 믿기 시작한다.
라이네케의 계획은 점차 복잡해지고 그의 거짓말이 누적되면서 상황이 긴박해진다. 여러 동물들이 여전히 그를 고발하려 하고 그는 이제 자신의 목숨을 구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결국, 라이네케는 교묘한 꾀로 자신의 죄를 숨기려 하지만,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는 위기에 처한다. 특히, 그의 과거 범죄들이 다시 부각되면서 라이네케는 사자 왕으로부터 사형을 선고받는다. 이때 라이네케는 자신의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마치 모든 희망이 사라진 듯 보인다.
라이네케는 사형 집행 직전, 마지막으로 기지를 발휘해 사자를 속이기 위한 마지막 꾀를 낸다. 그는 사자에게 자신이 숨겨놓은 보물이 정말로 있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하고 그것이 왕국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득한다. 결국 사자는 라이네케의 말을 다시 믿게 되고 그를 사형에서 구제한다. 이렇게 여우는 자신이 감옥에서 풀려나 다시 자유의 몸이 된다.
라이네케는 사형을 피한 후에도 자신의 교활한 본성을 버리지 않는다. 여전히 다른 동물들을 속이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그는 자신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왕의 신뢰를 다시 얻으며 거짓과 꾀로 살아남는 모습을 보인다. 이야기는 교활한 자가 결국 이익을 본다는 아이러니한 결말로 마무리된다.
괴테의 『여우 라이네케』는 여우가 의인화되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동물설화이다. 여우가 등장하는 동물설화는 이미 중세부터 유럽 전역에 널리 알려져 있었고, 괴테도 유년시절부터 잘 알고 있었던 소재이다. 그러나 그때까지 유럽 각국에서 이 작품 내용들은 도덕적이고 정치적이며 교훈적인 통찰이 주된 주제였으나 괴테의 손을 거치면서 완전히 새롭게 각색된 『여우 라이네케』로 탄생한다.
작가는 동물설화를 통해 그 시대의 정치인과 종교인의 생활과 의식뿐만 아니라 비대한 교회의 권력과 민중들의 의식 및 생활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작업은 민중시가(民衆詩歌)의 건강한 세계 속으로의 침잠이었으며, 훗날 독일을 중심으로 한 세계 각국의 민요와 민중시가에 대한 그의 애착에서 비롯되었다. 뿐만 아니라 괴테 말년의 대작 <파우스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노년에 이를 때까지 그는 옛 민중의 지혜처럼 들리는 작은 격언들을 시화(詩化)했다. 라이네게가 세상을 기만하며 사회의 문제를 폭로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인간 사회의 모순과 부정의를 비판하며 여우가 상징하는 이중적인 도덕성과 기만적인 정치 구조를 풍자했다.
♣
이 작품은 단순한 동물 우화로 보일 수 있지만 그 내면에는 당시 사회에 대한 예리한 비판이 담겨 있다. 괴테는 인간 사회의 탐욕, 기만, 부패 등을 동물 세계를 통해 묘사하며 특히 정치와 권력 구조의 부조리를 드러내었다. 그러므로 라이네케는 인간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의 교활함과 부도덕성을 상징한다.
작가는 동물왕국에서 여러 동물들을 등장시키고 개개의 특성에 따라 후기 중세의 봉건사회 계층과 질서 그리고 인물들을 패러디하였다. 여우의 온갖 악행에 대항하여 많은 동물들이 사자왕에게 여우를 고발하나 그의 영악한 지혜로 말미암아 좌절되고 만다. 여우의 수사학적 변론을 어느 누구도 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우는 위기에 처할 때마다 기발한 거짓말과 엉뚱한 논리로 교묘하게 위기 상황을 모면한다. 누군가는 명백한 죄를 지었음에도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하여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곤 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현대의 사법 현장을 보는 듯하다.
라이네케에 희생당하는 어떤 다른 동물들도 여우의 거짓을 통해서 불행으로 빠지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 자신의 우둔함이나 탐욕 때문에 불행에 빠진다. 구전된 설화의 내용면에서 작가가 변화시킨 것은 전혀 없다. 그러나 작가는 시대적 배경과 상황을 서술하여 전혀 다른 효과를 내고 있다. 시대적 상황과 정치적, 역사적 상황을 그 소재로 첨가하여 사용했기 때문이다. 여러 등급으로 나뉜 신하들이 있는 동물왕국은 봉건제도의 국가를 반영하고 있다. 독일은 소국가로 분리된 절대국가였으며 당국과 신하들로 구성된 근대적인 조직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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