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만 장편소설 『선택받은 사람(Der Erwähl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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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소설가 · 평론가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1955)의 장편소설로 1951년 발표되었다. 토마스 만이 말년에 몰두했던 ‘죄와 구원’의 문제에 대한 고민과 그 대답이 응축된 작품이다. 중세의 서사시 <그레고리우스>를 소재로 한 이 작품에는 남매간에 이어 모자간에 행해진 이중의 근친상간 그리고 참회와 속죄를 통한 구원이라는 무거운 이야기가 토마스 만 특유의 해학적 글쓰기를 통해 형상화되어 있다. 토마스 만은 이 작품에서 심각하고 어두운 죄의 이야기를 오히려 윤리적이고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나치의 집권과 전쟁으로 인간성을 상실했던 절망의 시대, 토마스 만은 이 작품을 집필하며 암울한 현실을 극복하고 죄악과 잘못을 저지른 ‘괴물’도 인간성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장편소설『선택받은 사람』은 중세 전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인물들의 복잡한 운명과 도덕적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서사시적 소설이다. 이 작품은 신과 인간, 죄와 구원의 주제를 다루며 토마스 만의 철학적 성찰과 중세적 종교관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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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그레고리우스의 부모는 우연히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근친상간을 저지르고, 그 결과 그레고리우스가 태어난다. 그레고리우스는 태어나자마자 운명의 굴레 속에 놓이며, 부모는 죄책감에 그를 강물에 떠내려 보낸다. 그러나 그레고리우스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수도원에서 자란다. 그는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지 못한 채 경건하고 순수하게 커가며, 운명의 개입처럼 마치 특별한 사명을 지닌 사람으로 성장한다. 성인이 된 그는 자신이 속한 세상 밖으로 나와, 어느 작은 나라의 공주와 결혼하게 되지만, 여기서 그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다. 공주는 사실 그의 어머니였다.
자신이 저지른 죄와 그 운명의 무게를 알게 된 그레고리우스는 깊은 죄책감에 빠진다. 그는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해 자발적으로 속죄의 길을 선택한다. 그는 한 섬에서 17년간 철저한 속죄 생활하며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아간다. 이후, 그의 극적인 속죄와 구원의 삶이 인정받아 그레고리우스는 교황으로 선출된다. 그가 지닌 죄와 그 죄를 씻기 위한 고행은 오히려 그를 선택받은 자로 만들었던 것이다.
결국, 그레고리우스는 교황으로서 구원받은 존재로 새롭게 태어나며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그의 출생의 비밀과 죄는 더 이상 그를 구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의 뜻에 따라 선택받은 사람으로서의 운명을 완성한다. 신에 대한 무조건적 신뢰와 구원의 가능성을 암시하며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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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소재와 모티브를 중세의 서사시 <그레고리우스>를 빌렸다고 작가 스스로 밝혔는데 기독교적 색채가 더해진 ‘오이디푸스 신화’와 구약성서 창세기의 '모세 이야기' 또는 중세의 기사도 문학을 연상시킨다. 남매의 근친상간으로 태어나 버려진 아이로서 기사가 된 한 청년이 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내 그 나라의 여왕과 혼인한다. 하지만, 그 여왕이 자신의 어머니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17년간의 참혹한 속죄 후 신의 은총으로 교황이 된다. 이후 만인의 죄와 더불어 자신과 부모님의 죄를 용서한다는 것이 그 줄거리다.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해설자 인물을 통해 해학적으로 서술되어 마치 구전설화를 전해 듣는 느낌을 받게 한다. 그러면서도 토마스 만 작품세계에서 지속해서 나타나 온 ‘대립적인 두 세계 사이에서의 갈등’이 이야기 속에 녹아 있어, 『선택받은 사람』은 전설의 현대화이자 토마스 만식의 독창적 변주라 할 만하다. 전통적인 이야기 소재를 능숙하게 활용하면서도 현대적 세련미로 가공하여 작가만의 주제 의식을 담아냄으로써 이 작품은 시공간을 초월한 보편성을 획득했다.
♣
『선택받은 사람』은 중세 문학의 모티프를 바탕으로 쓰인 작품으로, 도덕적 갈등과 구원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인간의 죄와 구원을 철학적, 종교적으로 탐구하며, 중세적인 기독교 세계관과 더불어 신의 뜻에 의해 인간의 죄가 용서받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 소설은 두 가지 중요한 주제를 다룬다.
첫째, 그레고리우스는 근친상간이라는 극단적인 죄악을 지고 태어나지만, 그 죄에 대한 자각과 고행을 통해 교황이라는 신성한 직위에 오른다. 이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죄를 통해서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기독교적 사상을 강조한다.
둘째, 그레고리우스의 삶은 신에 의해 선택받은 존재로서의 운명을 따른다는 점에서 운명과 신의 뜻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신의 섭리로 죄가 구원으로 전환될 가능성은 이 작품의 핵심적 주제이다.
그렇다면 비인간적인 죄악을 저지른 사람이라도 죄와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토마스 만은 이 작품을 통해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이전까지의 토마스 만 작품들이 ‘두 세계의 대립’을 묘사하고 있었다면, 『선택받은 사람』에서 토마스 만은 그 대립을 모두 뛰어넘고 포용하는 인간애를 보여준다. 토마스 만이 이 작품을 집필할 당시 독일은 나치의 집권과 2차 대전의 패배 이후 어두운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소설 속 철저한 참회의 과정과 이를 그리는 해학적 시선을 통해 나타난 따뜻한 인간애의 이념은 현실에서 상실한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작가의 문학적 시도이다. 이렇듯 토마스 만은 이 소설에서 중세 문학의 고유한 특성과 서사구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 인간의 내면적 갈등과 도덕적 문제를 심오하게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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