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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조셉 콘래드 장편소설 『로드 짐 (Lord Jim)』

by 언덕에서 2025. 1. 23.

 

 

 

조셉 콘래드 장편소설 『로드 짐 (Lord Jim)』

 

폴란드 출신 영국 소설가 조셉 콘래드(Joseph Conrad, 1857~1924)의 장편소설로 1900년에 발표되었다. 인간의 도덕적 갈등, 명예 그리고 속죄를 주제로 한 걸작이다. 이 작품은 콘래드의 상징적이고 철학적인 서술 방식과 강렬한 심리적 묘사로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또한 콘래드의 작품들은 모두 현대소설의 실험적 원형이라 할 수 있고, 특히 그중에서도 『로드 짐』은 원형 중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로드 짐』에서 시간은 여러 번 전도된다. 예를 들면 파트나 호가 침몰을 모면했다는 사실을 짐이 심판정에 섰다는 사실보다 뒤에 밝힌다든지, 브라이얼리 선장의 자살을 짐이 배에서 뛰어내린 상세한 경위보다 앞세운다든지 함으로써 콘래드는 이 소설을 처음 읽는 사람들을 상당히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콘래드가 짐의 행위가 지닌 심층적 의미를 캐기 위해 다양한 관점을 통한 도덕적 논평을 가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예술적 요구가 작가에게 시간 전도 기법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즉 짐이라는 현대적 주인공의 종잡기 어려운 정체를 파악하고 그의 행적이 지닌 도덕적 함의를 드러내려는 방편으로서 시간 전도의 기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여러 화자의 입을 통해 짐과 그 조난 사건의 수수께끼를 파헤쳐 가는 한편, 그 사건 이후 씻어 낼 수 없는 치욕을 안고 살아가는 짐의 파멸과 방황, 모험의 서사를 그렸다. 실제 선원으로 일했던 콘래드의 생생한 경험이 녹아든 이 작품은, 짐이라는 한 청년의 파란만장한 삶과 고뇌를 통해 인간의 책임과 윤리, 문명 사이의 이해와 갈등을 첨예하게 펼쳐 보인다. 20세기 영국 문학의 기념비가 된 선구적인 걸작이자 해양 문학의 정수로 평가되는 작품으로, 1965년 리처드 브룩스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영화 [로드 짐], 1965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짐은 젊고 이상주의적인 영국 선원이다. 그는 영웅적인 행위를 꿈꾸지만, 현실에서는 큰 실패를 경험한다. 그는 메카로 향하는 순례자들을 태운 배 파트나(Patna)의 수석 항해사로 일하다 사고로 침몰할 위기에 처한다. 짐은 무책임하게도 승객들을 남겨두고 다른 선원들과 함께 배를 떠난다. 하지만 배는 침몰하지 않았고, 승객들은 구조된다. 이 사건으로 짐은 법정에서 유죄를 선고받아 명예를 잃고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힌다. 그는 도망치듯 여러 항구를 떠돌며 비겁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이후 짐은 동남아시아의 외딴 마을 파투산(Patusan)으로 보내진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을 재발견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마을 주민들은 짐을 존경하며 "투안 짐(Tuan Jim, 로드 짐)"이라 부른다. 짐은 마을의 평화를 지키고 주민들을 보호하며 그들의 영웅이 된다. 그는 과거의 실패에 대해 속죄할 기회를 얻은 것처럼 보인다.

 짐은 해적 브라운과 그의 무리가 마을을 위협했을 때, 평화적인 해결책을 모색한다. 그러나 브라운의 배신으로 마을 주민들에게 피해가 발생한다. 이에 따라 짐은 다시 한번 자신의 결정이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짐은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인정하며 책임을 지기로 결심한다. 그는 주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친다. 마침내, 짐은 마을 주민들의 손에 의해 처형되며,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고 속죄를 완수한다.

 

 모두 45개 장으로 나뉘어 있는 이 소설에서 처음 4개 장은 외관상 ‘전지적’임이 분명한 작가 콘래드에 의해 서술되고 있으므로 재래의 삼인칭 소설의 서술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음 31개 장은 짐을 직접 만나 대화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짐의 행적을 목격하기도 했던 이야기꾼 말로의 입을 통해 서술되며 작가를 비롯한 몇몇 사람이 장시간에 걸쳐 그의 이야기를 들은 것으로 되어 있으므로 이 부분은 거의 모두 인용 부호 속에 담겨 있다. 마지막 10개 장은 말로가 직접 참여하거나 목격하지 못한 파투산에서의 사건들에 대한 기록이며, 그가 여러 증인의 단편적 증언 내용을 뜯어 맞추어 일관된 이야기가 되도록 편집하고 기록한 내용이다.

 콘래드는 다원적인 서술 관점의 활용을 통해 이 소설을 읽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작품으로 만들면서도 짐의 행위 속에 개재된 도덕적 의미의 불확실성에 대한 독자의 인식을 부단히 일깨우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말로 (Marlow)는 이 같은 인식을 촉구하는 데 그칠 뿐 짐의 행위가 지닌 도덕적 의미를 명쾌하게 드러내거나 평가하지 않음으로써, 재래의 전통적 서술자들과는 다른 ‘현대적’ 서술자로서 독자들에게 다가오고 있다.

 

 

 짐은 도덕적 실패와 그로 인한 내적 갈등에 시달리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짐은 과거의 잘못에 대해 속죄하며,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명예를 회복하려고 한다. 콘래드는 인간이 얼마나 쉽게 도덕적 실패를 경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데 소설은 말로(Marlow)라는 화자의 시점에서 회상 형식으로 서술된다. 말로는 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관찰자이자 해설자다. 서술 방식은 짐의 내적 갈등과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제공한다. 그리고 파투산은 속죄와 재생의 장소로, 짐이 과거를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시도를 상징한다.

 짐은 자신의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를 책임지는 실존적 주체로 묘사된다. 콘래드는 인간의 양면성을 탐구하며, 선과 악, 용기와 비겁함 사이의 복잡한 경계를 그린다. 시간 순서가 아닌 회상과 서술이 교차하는 소설 기법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다. 작가는 짐의 내면세계를 깊이 탐구하며, 인간 심리와 도덕적 선택의 복잡성을 서술한다.

『로드 짐』은 20세기 초 문학에서 인간의 내면과 도덕적 갈등을 탐구한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소설은 인간이 완벽할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결점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통해 고귀함을 발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작품은 식민주의 시대의 동남아시아를 배경으로, 서구인과 토착민의 관계와 서구인의 책임에 대한 윤리적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또한 인간의 도덕적 딜레마와 속죄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고전으로, 오늘날에 깊은 철학적 사색과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